불교, 人文과 通하였는가- ①인문학으로서 불교

인문학 열풍, 불교계에도 영향
출·재가교육에 인문학 강좌 도입
시민행성 등 전문 아카데미 설립

‘삶의 근본 탐구’ 불교·인문학 요지
통섭의 여지 많으나 전문성 부족해

전문 학자 양성·연구 환경 보완 필요
“불교학, 삶의 영역 전반 관심가져야”

그림=박구원 화백
현재 한국사회는 인문학 열풍 중이다. 인문학 대중서가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리고, 강신주 등과 같은 스타 저자들도 생겨났다. 각 대학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교도소까지 앞 다퉈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새롭게 도입되는 초·중·고교 문·이과 통합 과정에서도 인문 교육을 확대하는 것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는 기업의 인사 면접에서도 인문학은 평가 지표로 활용된다. 실제 현대자동차는 역사 에세이를 평가 과제로 적용했고, LG 그룹은 인·적성 검사에 한자와 한국사를 포함시켰다. 이 같은 인문 평가에 대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면접을 준비한다면 행여 어디를 입사 지원을 해도 계속 다른 면접을 봐야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폰 인문학’ 불교에도 영향
사실 기업들의 인문학을 통해 창의적 리더십과 경영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를 실효성 있게 보여준 것은 애플의 아이폰 신화를 만든 故 스티브 잡스다. 선불교에 심취했던 그는 아이패드를 선보이는 자리에서 “기술과 교양과정, 인문학의 교차로에 애플이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공학과 인문학의 융·복합을 통해 신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인문학 열풍은 애플과 같은 기업에서 출발했고, 전문가들은 이를 ‘아이폰 인문학’이라고 평가한다. 사실 학제 간 통섭은 시대의 흐름이다. 이미 인접학문 간의 통섭에 대한 연구는 10여 년 전부터 진행돼 왔고, 이를 통한 인문학 열풍은 기업들의 관심을 이끌며 개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인문학 열풍은 불교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 잠실 불광사 부설 불광연구원에서는 지난 2012년에  ‘동양과 서양의 생각의 차이’라는 주제로 대중 강좌를 진행했고, 조계사 등 도심 사찰들도 사찰 불교대학에 인문학 강좌를 별도로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승가교육 과정에서도 인문학 강좌가 이뤄지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이 운영하는 ‘E-러닝’ 동영상 강좌에는 동양철학자 강신주 등이 진행하는 인문학 강좌가 포함돼 있으며, 연수교육프로그램에도 동양철학, 서양철학의 이해 등이 마련돼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20대 청년층에게 출가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출가학교에서도 다양한 인문 강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전문 아카데미들도 개원하고 있다. 조성택 고려대 교수를 중심으로 한 설립된 인문학 실천 공동체 시민행성은 종교, 철학, 역사, 사회학 등을 아우르는 대중 강좌를 열고 있으며, 정의평화불교연대는 ‘불교인문학강좌-눈부처학교 1기’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인문학 열풍의 빛과 그림자
불교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이 인문학 열풍 중이지만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너무 짙다. 대학 울타리 너머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지만, 정작 대학 안에서는 인문학은 고사 상태다.  적지 않는 대학에서 인문 및 예술학과에 취업률을 들이대며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인문계열 학과는 2011년 1591개에서 2012년 1574개, 2013년 1548개로 3년 사이 43개가 줄었다. 올해도 10개 대학이 인문학과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불교 대표 종립대학인 동국대도 비슷한 사례가 추진돼 물의를 빚었다. 지난해 5월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지방소재 대학 위기 극복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학제개편 및 학과 조정을 단행한다”는 이유로 종립학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불교문화대학을 폐지하고 관련 학과들을  인문과학계열로 통폐합하기로 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불교계는 즉각 반발했고, 통·폐합은 백지화됐다.

본교에서도 올해 초 불교 관련 교양을 축소하기로 해 본지와 교계 언론에 기사화되는 등 논란이 됐다. 동국대는 결국 ‘다르마칼리지’를 신설하고 불교교양강좌를 대폭 늘리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대학 내 인문학 홀대 현상에 대해 관련 학자들은 “인문학의 열매만 따먹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불교학계 역시 대학 내 응용불교학 전공이 있고 인문한국(HK)과 같은 대형 국책사업을 수주했지만 불교와 인문학의 통섭을 위한 연구 환경 조성이 아직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HK사업은 10년 한시 사업으로 연구인력의 100%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즉, 대학에 머물 수 있는 연구 인력 정원이 한정적이다보니 전문 인력이 활용될 곳이 적다는 것이 문제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불교 사상과 철학이 한국 인문학에서 가지는 비중은 유교와 노장사상에 비할 수 없다. 하지만 함께 동양철학으로 분류되면서 그 위치가 적어졌다”면서 “불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교수 요원들이 적고 불교 인력을 수용할 대학 정원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교 종립대학에서 역할이 중요하다”며 “실력있는 교수가 등용되고 이를 따라 좋은 학생들이 들어와 연구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불교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불교종립 동국대학교 전경. 불교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종립대의 역할이 중요하다.
불교·인문학의 근본은 ‘人本’
불교학자들은 불교와 인문학의 통섭은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불교가 가지는 인문학적 가치는 다른 종교와는 비교할 수 없고,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불교와 인문학의 통섭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평가했다.

조성택 교수는 “불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 인문학과의 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서 “개신교 등은 신(神)을 중심으로 한 절대자의 신앙이다. 인문학의 근본은 삶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에 인간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을 중심에 둔 종교인 불교는 인문학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사회에서의 인문학 수요 증가는 좋은 현상이다. 불교가 사회 저변에 흘러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안주해 있다”고 지적하며 “인문학 소통과 이에 맞춘 글쓰기를 홍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문학적 힘을 가지려면 불교는 다양한 고전과 접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불교가 인문학으로서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한문학적 울타리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의 삶에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불교평론> 22집에 기고한 ‘21세기 인문학으로서 불교 철학의 가능성과 전망’ 제하의 논문에서 “새로운 시대의 인문학이란 무명을 걷어내고 내 밖의 수많은 다자들과 서로 소통하고 사랑하려는 마음, 나보다 더 약한 것들에 대해 슬퍼하는 마음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안내하는 학문이어야 한다”면서 “불교철학은 21세기 사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몸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는 “불교와 인문학의 소통은 불교학이 자신만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된다”면서 “불교 자신도 인문학과 만나면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고 인문학도 불교의 넓은 콘텐츠를 받아들여 풍부해질 수 있다”고 평했다.

이어 “무엇보다 불교는 현대 사회의 정치, 사회, 철학에서 무엇을 이야기할 지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세상과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지평을 넓혀야 불교는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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