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12〉 정족산 전등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천정 좌우 빗반자에 장엄된 조형들. 커다란 민화병풍을 펼친 듯하다. 꽃가지를 문 봉황과 연꽃, 물고기, 넝쿨문양 등으로 생명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사진 아랫 부분의 횃대 모양의 가로대는 공간에 흐르는 신령한 기운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영기문이다.

채도 명도 여읜 색채 에너르기의 적멸
천계는 ‘검을 현(玄)’이 아닌, ‘가물 현’
건축 받치는 力士, 고구려 벽화에도 나와
연화문 가운데 卍자, 석가모니불 상징

전등사 대웅보전은 3×3칸 장방형 건물로, 17세기 중엽의 장엄양식을 갖춘 전등사의 중심건물이다. 내부구조는 내4출목 위 내목도리 위에 상벽을 올린 후, 천정을 가설한 구조다. 천정양식은, 외진주 영역은 두 칸의 널판으로 사방벽면을 두른 빗반자이고, 내진주 영역은 평행 우물천정이다. 내부장엄은 고색창연함으로 고전의 우아함과 섬세함, 아름다움이 빛난다. 불단과 닫집, 천정장엄 등에 두루 간직된 고색의 색조가 고요의 두터움과 차분한 분위기를 풀어내서 내면의 깊이로 이끈다. 그 가운데 정중동(靜中動)의 기운이 흐른다. 〈채근담〉에서 이르기를 정(靜) 가운데 동(動)이 있음이 참된 정(靜)이라 하였다.

횃대를 닮은 연속 영기문 건축장치
내4출목으로 솟구쳐 오르는 첨자와 살미는 온통 신령함으로 가득하다. 건축구조를 이용해서 공간에 흐르는 신령의 기운을 절묘하게 운용했다. 계단처럼 층층이 오르는 첨자의 끝은 상벽(上壁)이다. 상벽에는 혜가단비도를 비롯해서 총 22체의 나한도를 베풀었다. 맨 위 첨자와 상벽의 경계에는 보기 드문 건축장치가 마련되었다. 횃대를 닮은 좁은 폭의 널판이 사방으로 가설되어 있다.

부석사 조사전 내부장엄에서 이와 유사한 건축장치를 만날 수 있다. 널판은 단순한 경계의 가로막이 아니다. 넝쿨형 식물에서 새싹이 피어나는 연속문양의 장엄이다. 내부에 신령과 생명력의 기운을 굽이치게 하는 뜻밖의 창의적인 장치다. 이것은 안동 봉정사 대웅전 영산회후불벽화에서 벽화 테두리에 영기문 넝쿨을 베푼 원리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사방 테두리 내부에 흐르는 신성과 거룩함, 진여법계를 드러내는 고요한 상징이다.

내진주 영역의 천정장엄 문양. 안동 봉정사 대웅전 문양과 고스란히 닮았다.
꽃을 문 19개체 봉황, 신령의 법계
상벽으로 톺아 오르는 살미의 끝은 봉황으로 반전시켰다. 그것은 사찰장엄에서 흔한 법식이다. 그런데 날개를 활짝 편 봉황들은 한결같이 꽃을 물고 있다. 서수(瑞獸)의 기상이 순하고 다정해 버렸다. 꽃을 문 봉황의 도상은 이례적이다. 통도사 대웅전 불단에서도 꽃가지를 문 봉황의 도상을 만날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삼족오나 주작이 붉은 열매를 물고 있는데, 그 열매는 주작이 곤륜산의 약수를 건널 때 입에 무는 ‘사당’이라는 열매이지만, 본질은 대자유의 여의보주다. 거룩함과 신령함의 기운은 형상이 없는 형이상학적 추상이다.

용과 봉황, 기린, 현무 등은 그 기운의 심미적 형상화에 다름 아니다. 본질은 형상 너머에 있다. 꽃을 물었든, 열매를 물었든, 보주를 물고 있든, 형상은 달리 표현되더라도 담긴 본질은 같다. 그것은 우주법계에 흐르는 생명력과 신령의 기운이다.
대웅보전에는 닫집에 있는 두 봉황을 포함해서 총 19 개체의 봉황이 날개를 펴고 있다. 법계에 충만한 영기의 세계가 장관을 연출한다. 표현의 변주가 다채로와 인상적이다. 닫집에 있는 두 봉황은 늠름하며 눈에서 뿜어 나오는 기상이 주위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에 비하면 나머지 봉황들은 순해 빠졌다. 북서쪽 천정에 있는 봉황은 백조처럼 아예 제 얼굴을 깃털 속에 묻었다. 조형에서 장단과 긴장의 고저를 맺고 푸는 발상이 대단하다. 용의 표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립면을 상생관계로 담은 미의식
내부의 신성불가침의 결계(結界)는 용과 봉황의 집단성으로 그 의지를 드러냈다. 대웅보전 내부는 용과 봉황의 세계라 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용 역시 대웅보전 안팎으로 존재성을 드러냈다. 건축의 사방 처마 밑에, 네 모서리 귀공포에, 불단 하층 둘레에, 닫집에, 대들보 위 충량에, 천정에 저마다 다른 표정, 형태, 크기로 표현하고 있다.

표현방식이 놀랄만치 다양하고 풍부하다. 특히 불단 아래와 충량의 용은 일반적으로 용이 주는 긴장감을 재치로 살짝 비틀어서 입가에 웃음기를 번지게 한다. 어떤 용은 총명해보이고, 득의가 느껴지는가 하면, 어떤 용은 어리숙하고 멍청하며 장난기가 가득하다.

긴장과 이완의 대립면을 유기적인 상생관계로 반전해 한국 고유의 미의식을 드러냈다 그것은 한쪽으로 지우치거나, 모나지 않는 삶의 품성이 구현된 중도의 가치라 할 것이다. 고(苦)와 낙(樂)의 양변을 다 취하고 여읠 수 있는 궁구에 이르러서야 우러나오는 득의의 경지다.

조형의 채색원리에서도 중간톤의 색채로 중도를 추구하고 있다. 대웅보전 내부에서 우러나는 차분한 분위기도 채도와 명도를 여읜 색채 에너르기의 적멸에서 얻어지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미의 중도적 가치를 실현하는 안목이 차물을 우러내 듯 은연중에 드러나게 하는 비범한 데가 있다. 민화나 분청자기에서 묻어나는, 고졸함에 깃든 수승함이라 할 것이다.

윗줄은 처마밑, 대들보 위의 용과 닫집의 봉황. 가운데 줄은 불단 하단에 배치한 용의 다양한 표정. 아랫줄은 추녀 끝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부.
빗반자엔 민화병풍을 펼쳐 놓은 듯
전등사 대웅보전의 아름다움은 빗반자에서 두드러진다. 빗반자는 생명력으로 넘쳐난다. 꽃가지를 문 봉황과 연꽃, 물고기, 넝쿨문양 등으로 생명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커다란 민화병풍을 천정에 펼쳐 놓은 듯 하다. 하지만 화폭의 프레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유로움의 바탕에 신묘함을 펼쳐 놓았다. 그것은 우주만유의 생명력의 세계이며, 대자대비의 법계다.

바탕은 검은 천계다. 하늘은 ‘검을 현(玄)’이 아니라, ‘가물 현’이다. ‘가물 현’은 가물거리듯 아스라한 현묘함이다. 텅 비어 있는 듯 하면서도 기(氣)로 가득 차 있는 현묘함이다. 검은 바탕에 나선형으로 뻗어나가는 넝쿨문양은 그 생명력의 파동 에너지를 드러낸 것이다. 생명의 본질은 물이다. 물의 위대함은 인류의 시작에서, 삶이 있는 모든 곳에서 설파되고 강조되었다. 물은 물리적 육체의 생명력이다. 만유는 물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 영혼의 생명력은 무엇인가? 부처께서 설하신 진리 법이 곧 번뇌의 불을 끄는 생명력이다.

일승법의 진리는 물의 자비력을 갖추었으니 감로수라 부른다. 외진주 빗반자의 세계는 그 실상을 불립문자로 직지(直旨)한다. 법이 구족한 자비력을 물고기와 연꽃이 피어 있는 물의 생명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묘한 불가사의의 법계에서 온갖 생명들이 길러지고,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불단이 색채나 조형에서 서민적이며 민화풍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갖췄다면, 닫집은 귀족적이며 궁중화원풍의 엄격한 절제미를 갖췄다. 일종의 미학에서 예악(禮樂)의 구현이라 하겠다. 지나친 절제와 긴장은 경직되어 아와 타가 분리되고, 배타적인 경향을 가진다. 음양의 원리처럼 한쪽을 강하게 하였을 때, 다른 한쪽은 부드럽게 처리하여 조화로움과 균형을 꾀한다. 외진주 영역의 빗반자는 민화를 보듯 고졸하고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우물천정의 내진주는 기학적인 문양으로 엄격하고, 높이에도 차등을 두어 위계를 드러냈다. 불단과 닫집, 내진주와 외진주 영역의 천정장엄에서 예악의 조화로움과 중도의 멋이 빛난다.

내진주 천정문양, 봉정사 대웅전과 닮아

천정의 내진주 영역은 엄숙하다. 문양은 관념적인 연화문 형태를 갖추었다. 24칸의 우물칸을 배열한 낮은 곳엔 6엽연화문을 시문했다. 문양의 가운데엔 석가모니불을 상징하는 卍자를 넣고, 6엽에는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을 새겼다.

그 보다 조금 높게 경영한 중앙칸의 6칸 우물천정엔 붉은 바탕에 밀교적 오부오불(五部五佛)의 꽃을 금니로 그려 넣었다. 두 가지 조형원리는 안동 봉정사 대웅전 천정의 문양과 고스란히 닮았다. 오부오불은 금강계만다라의 도상으로 중앙에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이 정좌하고, 그 사방에 아축불, 보생불, 아미타불, 불공성취불의 존상을 표현한 법계 만다라이니,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의 극적인 구성이라 하겠다.

전등사 대웅보전 내부천정.
추녀 밑 나부상은 건축 받치는 力士

하지만 전등사 대웅보전 장엄에서 보다 극적인 장면은 내부 곳곳에 낙서처럼 새겨진 사람의 이름과 추녀 밑의 나부상에 있을 것이다. 추녀 밑의 나부상은 조형을 해학적으로 풀어 놓았을 뿐, 본질은 하늘을 떠받친 그리스 신화 속 아틀라스와 같으며, 고구려 벽화고분 장천1호분과 삼실총 등에서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역사상과 동일한 모티브다. 중국 전한시대 마왕퇴 1호분 벽화에 등장하는 역사(力士)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한결같이 거의 옷을 벗은 몸으로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건축 곳곳에 건축의 신화적 소재들을 다양하게 구사해서 건축의 서사와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약사전과 대웅보전 내부 곳곳은 마치 한 당대의 지역인명사전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 하다. 벽면과 기둥은 물론이고, 벽화와 천정의 문양 위에도, 심지어 닫집 속 용의 보주에도 어김없이 이름 석자들이 새겨져 있다. 조선말 병인양요 등 서구열강과의 전쟁에 나서는 조선병사들의 절절한 심정들이 그대로 각인된 흔적이다. 부처님의 가피에 생명을 의탁한 심정을 헤아려보면 이름 석 자에 남은 운명의 무게와 두려움, 간절함들이 만감으로 교차한다. 한 시대 사람들의 행렬이 육필로 남긴 마음의 화석이라 할 것이다. 불전 건축에 부처와 법과 사람의 마음이 씨줄 날줄로 엮이었으니 그에 저민 무늬를 굽이굽이 펼치면 세간의 가엾음과 눈물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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