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11〉 천봉산 대원사 극락전

극락전 좌우협칸과 어칸 중앙에 경영한 천정장엄. 중앙을 더 높이 경영한 2층 평행층급 우물천정이다. 선학, 모란, 연화, 범자문이 심층적으로 전개되는 중중의 구조다.

선학, 모란문 등 문양 수 7가지
문양과 색채… 향토적이고 서정적
모란문에 범자, 부처 세계 상징
범자 조형에 구도와 색채미 담아
화엄경 변상도 표현원리 닮아
범자진언, 불보살 생명력 부여


3×3칸 건물에 경영되는 두 양식
일반적으로 불전의 천정구조는 기둥 축선으로 구획된다. 3×3칸 건물의 천정 역시 기둥 축선을 따라 구획되어 자연스레이 우물(井)자 형식의 아홉 개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井자의 한가운데 중앙은 내진주(內陣柱) 영역이고, 그 밖은 외진주(外陣柱) 영역이다. 3×3칸의 정방형 건물에서 경영되는 주요불전의 천정양식은 대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2층의 평행층급 우물천정 양식이거나, 혹은 외진주는 빗반자, 내진주는 평행 우물천정을 갖춘 일종의 궁륭형 양식이다.

앞의 양식이 반듯한 직선적인 규격 속에 단순미, 절제미, 고전적 정형미를 갖추고 있다면, 빗반자와 결합한 층급천정은 부드럽고 우아하며 낭만주의적 자유로움을 드러낸다. 2층의 평행층급 천정은 타일을 깔듯이 사각형 천정평면을 수리적 등분으로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신, 율동적인 리듬을 갖추기가 어렵다. 반면에 빗반자 양식의 천정은 네 모서리 귀접이면을 채우는데 공정이 까다로운 대신에 널판 등을 이용해서 천정벽화와 같은 다채로운 화면을 조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남해안 불전천정 문양의 집합군
보성 천봉산 대원사 극락전은 18세기 중엽에 중건된 3×3칸의 정방형 건물이다. 맞배지붕의 건물이지만 앞뒤 벽면의 각각 기둥 사이에 주간포 2기씩 포작한 다포집이다. 안으로 뽑아 낸 포작 수는 내4출목이다. 내4출목은 연꽃, 연자, 봉오리들의 중중(重重)으로 일체형의 구조를 이루었다. 신령한 영기문이 넝쿨처럼 뻗치고 오르는 층층의 살미 위로 상벽(上壁)을 올렸다. 상벽에는 드문드문 화조도 등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천정은 상벽이 끝나는 하중도리 위에 1차로 천정을 올리고, 종보 위에 다시 두 번째 천정을 올린 2층의 평행층급 우물천정이다. 1층 천정은 외진주 영역이고, 60cm 정도 더 깊이 밀어올린 2층 천정은 내진주 영역이다. 212칸의 정사각형 우물반자로 천정을 빈틈없이 채웠다.

전체구도는 바둑판처럼 전후좌우로 완전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천정은 아름답고 다채로운 문양의 화엄세계다. 조선중후기 서남해안 다포계 불전의 천정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양의 집합 군을 보는 듯 하다. 천정에 시문된 문양의 수는 일곱 가지다. 선학(仙鶴)과 연화문, 모란문, 범자종자불(梵字種子佛)이 주류를 이루고, 구름영기문, 악기, 구름 별자리 문양 등은 몇 몇 칸에 시문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 대칭과 조합의 변주가 남도 땅 봄, 가을의 들녘을 보듯 향토적이고, 서정적이다.

선학,연화,모란문의 삼중 만다라
1층의 천정장엄에는 조계산 선암사 대웅전처럼 사방으로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놓았다. 학익진 밖은 마음 밖이다. 마음의 경계가 부처의 경계이고, 삼매의 경계다. 만법유심(萬法唯心)이니 마음 밖에선 법을 구할 수 없다. 천정 가장자리에 펼친 선학들은 붉은 보주를 취하려는 자세다. 붉은 해를 닮은 보주는 다르마의 증표다. 선학의 날개짓은 깨달음을 증득하려는 발보리심과 입보리행의 표징일 것이다. 선학으로 둘러친 마음의 경계 내부는 관념화된 오각형 연화문을 베풀었다.

오각형 연화문은 4중의 중중이다. 프랙탈 도형처럼 자기닮음과 복제를 거듭하고 있다.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화엄사상이 드러난다. 부분 속에 일체가 있으니 꽃은 보통명사의 차원을 넘어선 거룩한 화엄의 꽃이다.

붉은 꽃잎은 마치 낱낱의 촛불처럼 그라데이션으로 해무리 지으며 퍼져나간다. 범종을 통해 일승원음이 천지간에 퍼져나가는 이치와 같다. 오각형 연화의 꽃잎 하나하나가 천지간에 매달린 북으로 다가온다. 선학의 무리들은 그 법고의 울림에 일제히 솟구쳐 붉은 다르마를 취하려 한다. 선학은 성문, 연각들의 아라한을 연상케 한다. 연화는 곧 진리의 법일 터이다. 연화문 안쪽은 모란문이다. 양 협칸의 좌우 문양은 선학과 연화문, 모란문의 띠로 삼중 나이테를 지닌 만다라 형태다. 좌우는 서로의 테칼코마니인 듯 대칭적이다. 짐짓 모란문은 깊이의 끝간 데로 보인다. 하지만 모란문은 보다 심층적인 차원으로 옮겨져서 깊이를 더한다. 어칸 중앙부로 더 높이 옮겨져서 심화된다.

맨 왼쪽 범자문은 천정중앙에 베푼 8자 준제진언이고, 달마와 백의수월관음 벽화는 동서 벽면에 그려진 것이다. 벽화 사이의 사진은 악기와 구름 영기문, 선학 문양이다.
천정 동심원 형상… 보현행 내포
모란문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범자(梵字)가 있다. 진리의 이법(理法), 곧 부처의 세계다. 부처님의 신구의(身口意) 삼업의 공덕은 불가사의로 행하신 삼밀(三密)이다. 불가지로 행하신 신묘함이니 드러낼 방도를 찾을 수 없다. 범자와 모란과 연화는 부처께서 신,구,의로 행하신 삼밀의 조형언어다. 그 때 천정장엄의 뜻이 비로소 풀린다. 범자는 부처님의 법신이며, 연화와 모란은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이자 법이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왜 천정장엄은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동심원의 형상으로 겹겹이, 켜켜이 내부로 깊어지는 형상을 취하는 것인가?

천정의 가장자리에서 부처님의 머리 위 중앙부로 들어가는 심오의 과정은, 마음의 경계에서 해인삼매의 무상정등각에 이르는 심행처멸(心行處滅)의 조형적 표현이다. 그것은 의상 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의 해인도와 다르지 않다. 믿고(信), 머무르고(住), 행하며(行), 하화중생으로 끊임없이 회향해서 십지(十地)에 이르는 보현원행의 바라밀의 과정을 내포한다.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십지의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으로 부처에 이르는 길을 상징한다. 그 길은 보현행원을 일으켜서 자리이타의 자비행을 끊임없이 행하는 입보리행이다.
그것이 선학의 경계에서 연화문, 모란문의 무문관을 거쳐 마침내 범자문에 이르게 하는 까닭이다. 견성성불의 범자문에 이르러 큰 흰 소가 끄는, 차별없는 일승의 수레바퀴를 드러낸다. 조형에 화엄의 일승법계가 담겨 있다. 천봉산 대원사 극락전 천정에 수승한 화엄일승법계도가 심인(心印)으로 펼치었다.

생명력의 영기공간서 나투는 진언범자
극락전 어칸 천정의 중앙부 문양은 모란문 속의 범자(梵字)다. 중앙칸 중중(重重)의 자리에 범자가 있는데, 화엄일승법계도에서 210자 마지막 ‘불(佛)자’가 자리한 중도의 그 자리, 법계의 옴파로스다. 베풀어진 범자는 모두 8자다. 범자조형에 구현된 구도와 색채경영은 아름답고 자비롭기 그지 없다. 검은 바탕의 네 모서리에서 붉은 연꽃 형태의 기운이 뻗친다. 꽃의 화심에서 초록색 보주가 나오고, 보주에선 새싹 같은 생명력이 돋아난다.

그 한가운데에 법신인 대일여래의 붉은 빛이 큰 원으로 가득하다. 대일여래의 붉은 빛 속에 노랑, 또는 흰 색의 범자가 극적으로 나투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 표지 변상도에서 경전이 신령의 기운 속에 나투는 장면과 고스란히 닮았다. 범자 한 자(字) 한 자(字)가 생명력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영기공간에서 거룩하게 나툰다. 그 장면은 극적인 구도와 다정한 색감이 뒤섞여 지순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한 칸 한 칸이 경전이고, 불화이고, 부처이시다.

대원사 극락전 전경.
범자 8자는 천수경의 준제진언
범자진언을 천정에 새김으로써 천정에 베푼 조형들은 인격화된 불보살의 생명력을 갖춘다. 범자는 그 어떤 상징조형보다도 대상에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힘을 지녔다. 불화나 불상을 조성하고 난 뒤 마지막 단계로 불상과 불화의 눈에 붓으로 눈동자를 점찍는 점안의식에 상응한다. 범자 8자는 밀교적 진언 다라니다. 후대에 손을 대면서 범자배치의 원형을 잃어버렸다. 범자 8자는 밀교경전 〈천수경〉에 나오는 다라니 진언인 ‘준제진언(准提眞言)’으로 알려진다.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대비신주
준제진언은 준제관음보살의 위신력으로 모든 죄업과 고(苦)를 멸하고 일체공덕을 성취하게 하는 진언이다. 갈항사지 3층석탑에서 나온 8세기 중엽의 진언다라니가 준제진언이다. 준제관음은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의 변화신 중의 한 분으로 모든 부처의 어머니인 불모(佛母)이시다.

해남 대흥사 유물전시관에 초의선사께서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준제관음보살도가 진열되어 있다. 준제진언은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아홉자의 대비신주(大悲神呪)다. 그런데 천정의 범자는 8자여서 의아하다. 통도사 용화전 천정 8엽연화문에 새겨진 준제진언과 비교해보면 준제진언임에는 분명해보인다.

8자로 축약해서 새기는 것도 빈번한 전례임을 유추할 수 있을 듯 하다. 이 준제진언은 극락전 천정에 장엄된 것으로 고려할 때, 〈천수경〉에서 관음보살과 아미타부처님을 독송하기 전 자리에 청하는 계청(啓請)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모든 진언은 비로자나 법신불의 불가사의한 심인(心印)이다. 그러니 극락전 천정의 중앙칸에 새긴 8자 준제진언은 언제나 법당에 울려 퍼지는 진언의 독송으로서 삼라만상에 미치는 자비의 파장이며, 제불존상의 현현이라 할 것이다. 불전에 진언의 독송이 끊이지 않는다. 천정장엄을 따라가면 일승불로 가는 보살의 보현행원의 자비행이다. 보현행에 의한 보살의 삼매가 있어 부처님의 세계는 아름답고 거룩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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