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사찰 건축 16. 신 사찰건축의 나아갈 방향

종교건축은 다른 건축들과 여러 가지로 다른 면들이 있다. 그 ‘다른 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종교적 상징성이 건축의 중심을 이룬다는 것일 것이다. 때문에 양식 변화의 속도가 다른 건축에 비해 느리다는 것이다. 한국 불교건축 역시 종교적 상징성을 중심에 둔 건축이다. 1600년이라는 역사를 생각할 때 다른 건축이 변화해온 속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변할 수 없는 종교적 상징성을 반영한 양식이기 때문에 변화의 이유와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다. 최근까지도 한국 사찰의 모습은 ‘기와와 단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새로운 형태의 사찰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양식의 건축이 필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불교’라는 대전제를 안고 있는 사찰건축이다.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모두의 고민이 거기에 있다. 그 고민에서 함께 출발했던 본 연재 ‘신 사찰건축’을 마치며 담양 정토사 주지 혜광 스님과 건축가 김개천 교수(국민대 조형대학 스페이스건축디자인과), 김홍일 교수(동국대 건축학과)에게 한국의 사찰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김개천 교수
현대 사찰건축의 설계 방향
-김개천 교수

“시대적 기능 반영한 설계 필요,
명분 없는 현대성 추구는 지양”

현대적 사찰건축은 전통적 사찰건축과 마찬가지로 불교적 정신과 세계관의 물리적 표현인 동시에 예불, 수행, 포교의 기능이 포함된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화하고 종교건축으로서의 시대성을 함께 나타내어야 한다. 그와 함께 도시 사찰은 도시적 입지성에 따라 건축물의 대형 복합화와 중층화가 요구되며, 예식ㆍ장례ㆍ강연ㆍ지역봉사활동 등 시대적으로 변화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야 한다. 특히 불교 의식의 변화 등은 건축물의 기능, 형태 및 공간에 있어 여러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 특히 실내 공간적 변화 요구는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이에 현대 사찰건축은 외형적 전통의 모방 및 차용이나 전통과 현대의 도식적 해석을 적당히 혼합한 형태적 현대성을 추구하는 것을 지양하고 전통의 사찰건축에서 전달되는 상징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도시사찰에서 불교적 조형 관념의 상징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단지 건축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 정신의 문제이며, 건축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가의 정신은 그러한 공간을 이루어내는 근간인 것이다.
전통의 문화는 현대의 시간과 공간 속에 결부되어 새로운 현대적 가치를 지닐 때 미래의 삶에도 의미와 효율을 지니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사찰건축 문화는 앞선 개념들과 더불어 현대적 공간 개념을 이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상황을 해석함으로써 현대성과 국제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들을 동시에 이룩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홍일 교수
재료의 선택과 불교 정신 표현
-김홍일 교수


“사찰 ‘기능’에 충실한 설계하면
불교적 상징성은 저절로 해결 돼”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네 절집은 우리의 건축 언어와 재료로 지어졌다. 주춧돌 위에 올라 선 배흘림 기둥, 기와 얹은 지붕, 겹겹이 빛을 받아들이는 창호와 흙벽, 그리고 장엄한 기운을 표현하기 위한 공포, 화려한 단청장식이 있다. 이러한 모양은 그 시대 사대부집이나 궁궐건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람들은 여전히 집을 지었고, 그렇게 집을 지으며 조금씩 건축의 형태가 변화하고, 새로운 재료가 등장하고 공간이 바뀌어 갔다. 그러나 절집은 종교건축으로의 상징적 의미 때문인지 겉으로나 안으로나 그 모습과 공간이 바뀌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강화도 ‘온수리 성공회 성당’은 1906년에 한옥으로 지어졌다. 정면 3 칸 측면 9 칸의 크기에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종루는 문루의 2층을 사용하여 높은 솟을대문처럼 만들었다. 세월이 지나 그 쓰임이 다하여 그 옆에 2004년에 새로 지은 성당은 현대건축의 기술과 재료로 지어져 확연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성공회 성당의 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시대의 건축재료와 형식이 바뀜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한 것이다. 쓰임에 문제가 없고 건축을 짓는 비용에 문제가 없다면 그 형식이 계속되어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우리 전통 건축은 그 비용이 현대식 건축에 비해 많이 들고, 쓰임에 있어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점들이 있다. 상징성을 지키기 위한 대가로는 너무 커다란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시대의 모양을 한 건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래 사찰건축의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 시대가 제공 가능한 재료를 사용하여, 가장 경제적이고 편리한 집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미래적인 재료와 형식으로 이 시대의 틀마저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불교건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사찰건축의 상징성에 대한 우려도 기우에 불과하다. 사찰의 기능은 이미 사무실이나 주택과 다른 것이다. 이 ‘다름’을 표현해 가면 다른 형식의 건축이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다. 건축가가 사찰기능에 대한 성찰과 해석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건축, 그것이 여느 건축과는 다른 현대적 사찰건축의 모습으로 표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옛 형식에 얽매여 부감각하게 끌려가고 걱정하기보다는 이 시대의 감각으로 불교적 상징성을 해석해 나간다면 이 시대에 맞는 사찰건축이 될 것이다.


혜광 스님
이제는 콘크리트도 활용해야
-혜광 스님


“사찰은 수행과 전법 의미 담아야,
근본 충실하면 형식 관계없어”

우리는 1980년대 경제성장은 사찰 건립에도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전국에 수많은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불사가 진행되면서 사찰건축이 외형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하지만 그 많은 불사들이 철저한 구도심과 시대정신을 품은 정진의 결과물이었는지, 건축불사를 통해 아름다움의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부처님의 간곡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과거의 훌륭한 전통을 버리지 아니하고 재해석하여 현대인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는지, 그리고 사찰건축이 물리적 환경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불사였는지 등 이시대의 불사의 결과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 한다.
한국불교의 매력은 다양성 속에서 하나의 궁극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연기(緣起)를 삶의 내용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러한 매력을 잃어버리고 획일화로 일관된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도량에 가면 무얼 배울 수 있는지 어떤 정진을 모시는 곳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은 큰 문제다. 굳이 선재동자의 구도의 정신을 말하지 않더라도 불교의 생명은 다양성의 포용과 통합에 있다. 사찰 건축은 수행과 전법의 의미가 반영되어야 한다. 경주 남산의 수많은 불상과 마애불 그리고 불탑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천년의 세월을 지탱해 오면서 지금도 한결 같은 메시지를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선조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돌과 나무와 흙 등의 재료를 가지고 그 메시지를 온전히 담아 왔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방편으로 메시지를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현대인이 친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매개체를 적극 활용하여 그곳에 메시지를 담아야 된다고 본다. 즉 오늘날 대중적 건축 재료인 콘크리트와 같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통에 얽매여 한옥만을 고집한다면 디자인과 종교적 정체성(상징성)은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과 많은 유지 관리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시대와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이에 따른 상생과 공존의 조화를 건축을 통해서 모색해야 할 때이다. 윈스턴 처칠은 “처음에는 우리가 건물들을 모양 짓지만, 그 다음에는 건물들이 우리를 모양 짓는다.”고 말했다.
이는 물리적 주위환경과 사람의 행위 및 태도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이해하고 한 말로 받아들여진다. 즉 어떤 의도와 가치를 담아서 건축을 하면 그 건물에서 사람이 살면서 그 건축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서를 인간이 배우고 느끼고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사찰건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는 어떻게 믿고 이해하고 올곧은 정진을 모시고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해야 된다고 본다. 근본을 바로 세웠을 때 어떤 방편으로 법을 펼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무궁하며 또한 결과 또한 아름답게 회향될 것이라고 본다.


‘신 사찰 건축’ 연재를 마치며

새로운 ‘전통’을 기다린다
절(寺)은 많은 ‘의미’들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특히 전통적인 사찰 건축은 불국정토의 극락세계의 구현으로, 여러 경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극락정토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전통적인 사찰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돌과 나무를 쌓아올린 ‘건축’이 아닌, ‘불사’의 개념이다. 그렇듯 ‘절’이라고 하는 건축의 한 형태는 오랜 세월 그 형식이 바뀔 수 없었던 것이다. 의미를 담고 있는 형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의 건축불사는 오랜 세월 동안 전통의 형식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적 요청은 피해갈 수 없는 것. 바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도심 사찰의 모습은 새로운 생각을 필요로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생각으로 지어진 절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생각으로 지어진 절이란 단순히 기와를 얹지 않고 단청을 하지 않은 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절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상징성 안에서 시대적으로 새롭게 요구되는 사찰의 기능을 고민한 ‘새로운 생각’을 말하는 것이며, 그러한 생각으로 지어진 절을 말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 그것이 깊은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면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형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은 오랜 세월을 지켜온 예전의 형식처럼 앞으로 오랜 세월을 지켜낼 새로운 형식이 될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생각’의 의미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생각으로 지어진 불교 건축물들의 의미를 찾아 나선 본 연재의 취지와 의미도 거기에 있다 하겠다.
새로운 불사의 현장을 찾을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전통과 현대’였다. 이제 현재의 사찰건축은 오랜 세월 유지되어 온 전통적 건축과 시대가 요구하는 현대적 건축의 경계에 서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될 수 있는, 문명과 분명하게 부합될 수 있는 새로운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칫 고민 없는 ‘새로운 생각(변형)’으로 인해 종교적 상징성을 이어가야 하는 ‘내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모든 이들의 숙제이다. 자칫 잘못하면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절은 많은 ‘의미’들로 지은 집이다. 어느 것 하나 의미 없이 그냥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바로 절이다. 겨우 열다섯 편의 텍스트로 앞으로의 전통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게 연재를 마치면서 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열다섯 편의 새로운 생각들 속에는 많은 고민들이 들어 있었으며,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 본 연재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먼 훗날 또 하나의 논제가 될 새로운 ‘전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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