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보살의 인과이야기

친구 모친 보며 어머니상 그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


어머니의 마음이 불성임을 알려준 두 분
나의 은사님이 “당신은 신사임당과 같은 어머니야.”라고 하시면서 훌륭한 어머니가 되라고 격려해주셨다면, 나의 오랜 친구 은선의 어머니는 내가 좋은 어머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하신 분이다.
은선이는 지금 이대 작곡과 교수로 있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 혜화동에 있는 그녀의 집에 가끔 놀러 가면 그녀의 어머니가 찻상을 직접 들고 오셔서는 무릎을 꿇은 채 딸의 친구들에게 차를 손수 따라주셨다. 성치 않은 우리 딸을 찾아주어 고맙다는 마음을 그렇게 드러내셨던 것 같다.
언제 가도 한 결같이 조용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당신 딸의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아이를 낳으면 저런 엄마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은선의 어머니 모습에서 덕행을 갖춘 신사임당의 모습을 보지 않았나 싶다.
세 살 때부터 혼자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심한 소아마비를 앓은 딸을 위해 일하는 아이를 학교에 딸려 보내서 딸을 공부시킨 은선의 어머니는 국산 피아노가 생산되지 않을 때 딸을 위해서 해외에서 피아노를 공수해올 만큼 헌신적인 사랑을 보이셨다. 어머니의 헌신에 답례라도 하듯 페달을 밟을 수 없어 피아노를 칠 수 없었는데도 은선이는 이대 작곡과에 입학해서 이대 음대 사상 첫 장애인 입학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교수까지 되었다.
은선이가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친구 대표로 출연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여원을 열었을 때 사군자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사군자반을 개설해 함께 그림을 배웠다. 혼자 힘으로 2층을 올라올 수 없어서 업혀서 2층에 올라와 그림을 배우던 친구의 열정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은선이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한번은 친구 집에 갔을 때, 은선이가 지금까지 나한테 선물하나 못했다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농지기를 여태 가지고 있는 게 있다면서 모시 한 필을 내놓으며 같이 해 입자고 했다. 이 기회에 옛날 어머니는 모시옷 손질을 어떻게 손질 했는가 물어보니 한꺼번에 손질해서 입고 한꺼번에 세탁을 해서 보관했다고 전해준다. 나도 오십이 넘어 손이 많이 가는 모시옷을 입기는 하지만 은선 어머니가 주신 모시 옷감을 바로 해 입지 않았다.
그러다가 반기문씨가 유엔총장이 되었을 때 텔레비전에서 그의 부인을 보고는 “저분도 남편 못지않게 큰 어머니 역할을 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마침 조계종 포교원에서 정전 60주년 기념으로 유엔본부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은선 어머니가 주신 겨자색으로 물들인 모시로 한복을 지어 지인들 편에 보냈다. 신사임당과도 같았던 친구의 어머니가 주신 옷감을 세계적으로 큰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 분에게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 치수는 텔레비전에 비친 그분의 모습을 보고 어림잡아 지어달라고 옷을 만드는 이에게 부탁했으니 웬만하면 맞았을 것이다.
나에게 여성성을 일깨워준 또 한 분이 있으니, 원불교 교무님으로 계신 분이다. 일본에서 열리는 차 문화 세미나에 갔다가 교무님을 만났고, 그곳에서 종을 사서 선물해드린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교무님께선 내가 가정 법회를 이십 년 동안 지속해온 것을 “아무나 못하는 일을 하셨네요.” 하시면서 칭찬, 격려해주셨던 분이다.
일흔에 가까운 교무님은 지금도 “나의 정체성은 첫째 여성성, 둘째 봉사자, 셋째 교화자입니다.”라고 말씀하실 만큼 여성성을 강조하고 계신 분이다.
세미나를 끝내고 종교지를 순례를 할 때도 교무님은 동참자들을 눈여겨보시곤 “동정 하나 제대로 못 달고 머리 하나 제대로 묶지 못한다면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차를 배우고 공부하는 것 이전에 여자로서 예의를 갖추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교무님이 말씀하신 여성성이란 솜씨, 맵씨, 마음씨, 글씨, 말씨를 포함한 여성의 몸가짐을 살리며 사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보통 알뜰한 분이 아니어서 누가 옷감을 주면 “이건 승복처럼 입으면 좋겠다.” 하시곤 내게 보내오신다. 당신은 거친 밥, 해진 옷을 입어도 괜찮다며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린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도들 위주로 살며 금생에 깨친다는 것은 욕심이고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에 공을 들이지요.” 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사람을 키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서 평소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에겐 무조건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다. 꽃꽂이, 다도, 북이나 가야금, 요가 등을 배우게 해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사람을 발전시키는 일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았다.
여여원을 운영할 때 원불교 교당을 모델 삼아 인테리어도 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배운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무님과 함께 교당이나 교도집을 다녀 보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청정했다. 내가 선방 분위기에 맞게 놓여 있는 회색 방석을 마음에 들어 하자 부산에서 방석 값을 준비해 보낼 만큼 자상하게 보살펴주셨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도 늘 정중히 하셨고, 누가 되었든 상대방을 자신보다 항상 상석에 앉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에게 보내는 철저한 배려와 신의를 배웠다. 그분에게는 세상을 사랑하고, 만나는 사람은 물론 보이지 않는 사람도 배려하는 무한한 사랑이 있었다.
나에게 보탬이 되지 않는 어떤 것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즐거이 받아들여 해결하는 것을 배웠으니, 수순중생을 배운 것이다. 정말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친 교무님이 아니었나 싶다.

돈씀씀이 말씀씀이
옛 사람은 알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고 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몽골 속담도 있다. 버는 자랑 말고 쓰는 자랑하라는 말이 있듯이, 말 한 마디로 백만금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말을 할수록 본전 잃고 빚쟁이가 되는 겨우도 있다. 오늘의 사람들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성공하고 말로 실패하는 말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의 말 씀씀이를 되돌아보고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하고 무거운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내 말(言)은 과연 얼마짜리인가. 말의 중요성은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핵심이다. 오륙년 전에 추석을 지내고 낙산사 홍련암에 갔다가 묵던 방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방 한가운데서 간밤에 함께 묵었던 보살님 한 분이 입속으로 뭔가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으니 ‘나쁜 말 가위로 똑 잘라 주세요.’ 라는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다니는 절의 스님이 말로 짓는 죄가 너무 많으니, 이번 백일기도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대신 ‘나쁜 말 가위로 똑 잘라 주세요.’를 주문으로 외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백일기도 염불을 그렇게 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양반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극단적인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어도”, “절대로”,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등의 말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극단적인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은 자기 감정을 절제할 줄 안다는 것이다. 말을 온화하게 하고 대답을 쉽게 하지 않는다. 말끝마다 맞장구를 심하게 치지 않고 표정이 온화하고 눈매가 부드럽다고 하는데 그것은 마음이 아름답고 평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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