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10〉 천축산 불영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외진주 영역 천정에 장엄된 영기문과 천문별자리 문양이다. 좌우협칸 63칸에 장식된 氣와 별자리문양의 세계로 현묘하기 가이없다.
영기와 별자리, 고구려 고분벽화 전통
검은 천공에 핀 화엄의꽃은 ‘세계일화’
화엄사 원통전 천정 영기문양과 비슷
유불선 습합된 독창적 장엄세계


쌍귀부가 끄는 반야바라밀의 배

산과 물이 서로를 감싸고 휘돌아 나가는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의 길지에 불영사(佛影寺)가 있다. 불영사 대웅보전은 진리의 바다로 가는 반야용선의 형상이다. 대웅전 기단 아래에 돌거북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법당을 등에 짊어지고 가고 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파격적인 건축장치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창조적인 조형이므로 특별히 주목된다.

거북의 등에 얹었다는 것은 천 년의 시공간에 두루 편재하는 생명력을 갖추게 했다는 뜻이다. 건축의 조영순서를 떠올려보면 두 마리 돌거북 장치는 건축의 처음부터 분명한 의도를 가진 상징물임을 알 수 있다. 경주 땅 폐사지 숭복사지나 창림사지, 무장사지 등에 남아있는 쌍귀부 비석받침의 조형원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쌍귀부에 비석을 얹은 것이나, 법당을 얹은 의미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청도 운문사 관음전에서도 그와 같은 조형을 만날 수 있다. 단지 운문사 관음전의 쌍거북은 목조각인데, 불단을 떠받치고 있다. 여러 조형에서 거북의 등을 빌린 일차적인 뜻은 시간의 임계점을 여읜 무량한 생명력의 유지일 것이다. 불전일 경우에는 여수 흥국사나 청도 대적사, 해남 미황사처럼 반야용선의 상징적 의미마저 두루 갖춘다.

반야용선은 물리적인 배가 아니라 마음 속 깨달음의 배다. 사바세계의 고해(苦海)를 건너 번뇌의 불이 끄진 피안으로 가는 배다. 불영사 대웅보전은 상구보리의 반야바라밀의 배이고, 영산회상의 법열이 환희심으로 충만한 법의 집이다.

가운데칸의 천정에 그려진 문양들. 앞칸은 세 종류의 기하문이고, 중앙칸은 여섯자 범자종자가 새겨진 연화문이다.
연화문과 별자리, 사신도…고구려벽화 요소

대웅보전은 3×3칸이고 내4출목의 18세기 조선후기 건축이다. 천정양식은 외진주 영역은 빗반자이고 내진주 영역은 평행반자이다. 반자틀 모두는 우물 정(井)자로 짜맞춘 우물천정이다. 천정의 문양은 어느 불전보다도 다채롭기 그지없다.

두드러진 특색이라면 내부장엄 곳곳에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통이 1200여년의 시간간극을 뛰어넘어 놀랄정도로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화문과 별자리, 구름영기문, 사신도(四神圖) 양식의 서수들, 주악비천 등 고구려고분벽화의 장엄요소들이 총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웅보전에 베푼 사신도 벽화는 엄격한 방위의 개념에서 자유롭다. 유가의 사회에서 도교적 요소를 흡수한 불교장엄을 고려하면 자유로움의 개연성이 충분하다. 창방, 대들보, 천정 등 불전 내부 곳곳에 용과 백호, 현무, 주작의 사신을 베풀었다.

단지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백호는 민화풍으로 묘사되었고, 쌍으로 표현되는 주작은 머리에 붉은 점을 가진 유가적 선학, 단정학(丹頂鶴)의 쌍으로 변화되었다. 불전의 사신도는 벽사 장치임과 동시에 공간에 흐르는 신령의 기(氣)를 드러내는 회화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생명력의 기(氣) 충만한 우주적 필드

동아시아에 공유되는 기우주론은 유안의 <회남자(淮南子)>에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다. <회남자>에 의하면, 천지만물의 생성과 변화는 모두 기(氣)의 분화 및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가 가진 무형의 에너지에서 유형의 만유가 만들어진다. 소위 ‘기화우주론(氣化宇宙論)’으로서 동아시아 자연철학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 제40장에 그 구절이 나온다. “천하만물은 유(有)에서나오고, 유는 무(無)에서 나온다.” 불영사 대웅보전의 천정은 기의 세계다.

특히 외진주 영역의 빗반자 우물천정의 칸칸은 생명력의 에너지로 충만한 태허(太虛)의 우주를 그리고 있다. 기화우주 세계관은 좌우 협칸의 63칸의 천정에 구현되어 나타난다. 그 표현양식이 지리산 화엄사 원통전 천정과 유사하다. 기(氣)는 생명력의 에너지다.

생명력은 내재적 운동성에 따라 끊임없이 확산하고 순환하며 회전한다. 모든 우물칸의 세계는 서로에게 상즉입하며 운동하고 있다. 칸칸이 붉은 기운 속에, 혹은 심오한 암흑의 천공 속에서 유성이 지나는 금빛 궤적처럼 신령의 기운들이 굽이친다.

마치 현대물리학의 초끈이론이나 초대칭이론의 회화적 표현을 보는 듯 하다. 생명력의 에너지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방위에 이르러 중핵을 이루며 화엄의 꽃을 피우고 있다. 천정은 건축요소의 개념을 초월하여 생명력의 기가 충만한 우주적 필드, 거시적 장(場)으로 펼쳐졌다. 그 장은 서로 관계하며 소통하는 유기체적 세계일화(世界一花)다.

사진의 윗줄은 대웅보전과 내부, 기단부의 돌거북, 비천벽화 등이고, 사진의 아랫줄은 천정에서 영기화생하는 희유의 장면이다.
현묘하고도 현묘한 ‘현지우현(玄之又玄)’

천자문의 첫구절처럼 우주는 ‘천지현황(天地玄黃)’한 법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우주질서는 <도덕경> 제1장의 표현처럼 ‘현지우현(玄之又玄)’으로 깊다. 현묘하고도 현묘하다.

‘현(玄)’은 단지 ‘검다’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검고도 붉은 심오함의 깊이를 이른다. 검은 것은 ‘무(無)’이고, 붉은 것은 ‘유(有)’다. ‘현’은 마치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신새벽처럼 무와 유가 통일되어 있는 신묘함이다. 신령의 기가 흐르는 대웅보전 천정의 바탕은 검거나 붉다. 그래서 심오하고, 현묘하다. 조형장엄의 바탕과 뜻이 합당한 문질빈빈(文質彬彬)의 전형을 갖추었다.

그런데 바탕과 질의 본말이 상응하는 기우주(氣宇宙)의 세계에다 목화토금수의 오행을 천정 곳곳에 베풀어 두었다. 천정장엄으론 유일무이한 희소성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사찰천정 장엄에 벽화형태로 우주천문도가 나타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단지 서너곳의 사찰천정에서 둥근 별을 그려놓은 장면이 보인다.

화엄사 원통전과 여수 흥국사 응진전, 범어사 대웅전 천정 등에서 조우했을 뿐이다. 그런데 불영사 천정의 천문도는 고구려고분벽화에서처럼 별자리의 도상이 풍부하고, 조형의지가 보다 분명하다. 우물칸 군데군데 오행에 따라 28수 형식의 별자리를 넣었다. 북두칠성과 삼태육성, 궁수자리 남두육성, 일렬로 늘어선 삼성의 오리온 별자리 등이 묘사되었다.

사찰천정에 오행에 따르는 28수 천문 성수도(星宿圖)가 그려진 경우는 그 예를 찾기 힘들다. 영기의 세계에 별자리를 그려넣은 장엄양식은 5세기에 조성된 고구려벽화고분 덕흥리 고분이나, 덕화리 2호분 등의 천정에서 조형 모티브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회남자>의 언급처럼 우주만유에 깃든 도(道)를 펼치면 온 우주를 덮지만, 오므리면 한 줌도 되지 않는다. 우물천정 한 칸에 영기와 천문의 우주, 연기법계가 충만하다. 유불선(儒彿仙)이 습합된 독창적인 장엄세계다.

금빛 보주는 법신불의 삼매야형

가운데 칸의 천정장엄 문양은 앞칸, 중앙칸, 후불벽 뒤 천정에 저마다 달리 나타난다. 앞칸은 24칸의 빗반자 우물천정이고, 세가지 종류의 기하문을 입혔다. 일종의 연기법을 구현한 그물망 문양이다.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으로 관계의 총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후불벽 뒤 천정에는 널판판벽에 쌍룡을 그렸다.

그 쌍룡벽화 역시 필력에 신묘한 힘이 묻어나는 역동적인 대작으로 구도와 골법운용 능력이 탁월하기 그지없다. 단지 어둡고 천정 높은 곳에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운데 칸 중앙부분은 불교 색채의 화장세계다. 40칸의 우물칸 중에서 36칸은 육자진언이 새겨진 6엽 연화문이고, 4칸은 붉은 바탕에 금니의 영기문을 베풀었다.

붉은바탕의 금니 영기문은 의도된 핵심장엄임을 눈치챌 수 있다. 금강계만다라의 오대오불(五大五佛)의 세계관을 영기문으로 구현한 듯 하다. 연화6엽에 새긴 6자 범자종자는 제불과 보살들의 공덕을 총섭한 존상의 상징이라 하겠다. 중앙부 연화의 씨방부분에서 금빛 보주가 솟아 오르는 바, 법신이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삼매야형으로 합당하다.

40명의 사람 영기화생하는 놀라운 도상

그런데 불단 위 중앙칸 천정 가장자리엔 놀랄만한 파격적인 도상을 베풀었다. 단청에서 ‘반바탕 반머리초’라 불리우는 연속 영기문 사이사이에서 저고리 차림의 사람들이 영기화생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맨눈으로는 그 존재성마저 파악하기 힘들다.

도상을 보려면 카메라에 담아 확대해서 볼 수 밖에 없다. 낱낱이 세어보니 40명에 이른다.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이 단정치 못하고 개구쟁이 아이들 머리모양이다. 보다 어리고 젊은 삶으로 영기화생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불화에서, 혹은 벽화에서 연화화생의 장면은 종종 있지만, 이렇게 신령의 기운이 뻗치는 영기공간에서 영기화생하는 도상은 극히 드물다.

무형의 기에서 천지만물이 생겨나는데 사람인들 그 자연법의 밖에 있겠는가? 대웅전을 생명력의 에너지로 충만한 영기의 세계로 장엄하였으니 영기화생의 응공은 뿌린대로 거두는 선근의 이치다. 곳곳의 장엄이 ‘현지우현(玄之又玄)’으로 깊고도 현묘하다. 검을 ‘현(玄)’을 관하고 절집 뜨락에 서는데 어느덧 천지간에 가을 기운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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