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a in Comic & Ani - 아라카와 히로무의〈강철의 연금술사〉

형제 연금술사의 여정 속에서 
‘불로불사’ 등 인간 탐욕 비판
연금술이라는 서구식 판타지에
순환의 진리 가미해 성찰 이끌어

▲ 〈강철의 연금술사〉 애니판 포스터. 〈강철의 연금술사〉는 연금술이라는 판타지에 생명과 죽음이라는 성찰을 가미했다.
2000년대 시작과 함께 만화 왕국 일본에는 신진 만화가들의 역작들이 대거 등장했다. 현재 일본 만화를 이끌고 있는 〈원피스〉를 비롯해 〈블리치〉, 〈나루토〉 등이 지금까지 연재되고 있다. 지금은 연재를 마무리했지만, 첫 작품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만화가 바로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2001~2010)다.

〈강철의 연금술사〉지금은 〈은수저〉와 〈백성귀족〉 등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작가의 첫 장편 연재작으로, 소년만화 답지 않은 시니컬하고 암울한 전개 속에도 언제나 주어지는 희망의 길을 나아가는 소위 ‘소년 만화의 왕도’를 절묘하게 병치해 인기를 끌었다.

총 27권으로 연재가 마무리됐으며, 누적 발행부스는 일본에서만 5700만 부를 넘어선 히트작으로 당시 마이너 잡지였던 연재처 ‘소년 간간’을 단숨에 메이저로 부상시켰다. 또한 각각 2개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소위 ‘레전드’급 작품이다.

충격의 오프닝과 죽음의 성찰
앞서 이야기했듯 우정, 용기, 도전을 이야기하는 소년만화와는 다르게 암울한 전개로 눈길을 끌었던 〈강철의 연금술사〉는 첫 장면부터가 압도적이다. 서양 신비주의 마법에서 보일 법한 마법진 위에 한 소년이 자신의 없어진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는다. “가져가 버렸어….”

〈강철의 연금술사〉는 이 같이 충격의 오프닝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잘려나간 다리와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복선의 회상을 보여주면서. 그러면서 이야기는 두 형제의 여정으로 집중된다.

에드워드 엘릭(이하 에드)과 알폰스 에릭(이하 알) 형제의 아버지는 뛰어난 연금술사였으나 이들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홀로 두 형제를 키운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전염병에 걸려 숨지고, 형제는 연금술을 배워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금기 ‘인체연성’에 도전하려 한다.

결국 스승을 만나 연금술을 배운 형제는 어머니를 연성해 내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실패의 대가는 컸다. 연성의 실패로 인해 형 에드는 한쪽 다리와 팔을 잃게 됐고, 동생 알은 육체를 잃어버리고 혼만 남게 된다. 형제는 국가연금술사가 돼 자신들의 몸을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이 같이 〈강철의 연금술사〉가 던지는 첫 질문은 ‘생명과 죽음’이다. ‘불로불사’와 ‘생명 창조’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꿈꿔왔던 꿈이었고, 지금도 과학을 통해 이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변주곡
스승마저 금기한 ‘인체연성’이라는 자연 법칙에 대한 도전은 마치 19세기 메리 셸리의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과 흡사하다. 젊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어머니를 잃은 충격 때문에 인간의 생로병사라는 자연법칙에 강한 의문을 갖게 되고 급기야 그 법칙에 도전하게 된다. “인간을 죽지 않게 하겠다”라는 것의 그의 목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입증된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변주곡이다. 어머니를 잃은 형제는 생로병사의 법칙에 도전해 어머니를 부활시키려 한 ‘탐욕’으로 인해 자신들의 육체를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되돌리기 위한 다른 ‘탐욕’을 가지고 형제는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의 여정에서 적으로 등장하는 호문클루스 집단도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려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움직였다. 호문클루스들의 몸에 새겨져 있는 우로보로스 문양(자기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뱀. 본래 의미는 순환하는 시간이다)처럼 탐욕과 악업의 고리가 영겁의 순환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
〈강철의 연금술사〉를 이끌고 나가는 가장 중요한 축은 연금술에 대한 것이다. 서양 신비주의 중 하나인 연금술사란 새로운 소재를 차용한 것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순환의 진리가 담겨있다. 이는 불교의 연기와 화엄사상과도 맞닿는다.

실제로 주인공 형제에게 연금술을 가르치는 스승 이즈미는 인체연성을 묻는 형제에게 이렇게 답한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육체는 다해 흙으로 돌아간다. 그 위에 풀이 나고 꽃이 피게 되며, 영혼은 추억이라는 양식이 돼 사람들 마음 속에 계속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르고 순환하고 있다. 사람의 삶 또한 그렇다.”

작품에 나오는 연금술은 순환이라는 대자연의 섭리를 강조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면 가지고 있는 ‘생로병사’라는 순환의 고리와 법칙을 이해하고 물질을 재구축하는 것이 연금술이라는 것이다.
이는 화엄사상과도 맞닿는다. 스승이 형제에게 던진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라는 화두는 작품 내내 강조되는 텍스트이다.

세상을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과 그 관계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만물의 순환은 자연이라는 고리에서 이뤄지지만 ‘나’라는 주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결국 작품에서의 연금술은 우리 자신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존재하고 죽어가는 진리를 알아 가는 과정이다.

자연은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른 생명에게 희생을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자연은 선악의 분별을 넘어서 삶과 죽음이라는 순환 고리를 통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순환의 고리를 이해해야 우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단편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형제가 보여주는 여정의 마지막에 작가는 이렇게 강조한다.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교훈에는 의의가 없다. 인간은 희생없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으므로.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 사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철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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