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9〉 조계산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 대웅전 천정에 장엄된 두 문양. 학 문양은 가장자리에, 연화문은 내부에 베풀었다.

층층이 쌓아 밀어올린 3개층 우물천정
통도사 적멸보궁, 불국사 대웅전도 비슷
학과 기하학적인 8엽 연화문으로 구성
차별적 농담으로 생명력과 생동감 갖춰


전통사찰 건축은 석굴암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목조건축이다. 건축재료가 목재인 까닭에 화재에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다. 그런데 사찰의 가람배치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밀집도를 가진 유기적인 집합체이므로 화재는 사찰의 존립성마저 위협하는 실재적 마장이 아닐 수 없다. 사찰에서 화마로부터 다양한 비보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예방조치다.

해남 미황사나 여수 흥국사 등에서 초석이나 기단부에 게, 거북 등 바다생물을 조영하고, 완주 송광사, 부안 내소사, 나주 불회사 등 대웅전 천정에 물고기 조형을 베푸는 것도 물의 기운을 빌려 화마로부터 불전을 수호하려는 비보(裨補)성격의 장엄임에 분명하다. 궁궐에서도 마찬가지다.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세운다든지, 경회루 연못에 구리로 만든 용을 묻어둔다든지, 2001년 경복궁 근정전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용(龍)’자 1000여자로 물 ‘水’자를 새긴 붉은 한지 2장과 물 ‘水’자가 모서리에 새겨진 은제 육각형 금속판 5개도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주술적 부적이라 할 것이다.

청량산 해천사에 담긴 뜻… 화재 비보책

순천 선암사는 화재에 의한 상처가 유난히 깊다. 1597년 정유재란부터 1950년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사찰존립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곱 차례 화재 및 방화가 발생하는데, 특히 18~19세기에는 70년도 안되는 세월동안 무려 네 차례의 큰 화재가 연이어서 사찰전체를 거의 전소시키는 지경이었다. 영조 35년(1759년)의 대화재에 이어, 영조 42년(1766년), 순조 19년(1819년), 순조 23년(1823년)의 대화재가 잇따랐다. 1761년 상월스님이 화재에 대한 비보책으로 절 이름을 한때 물의 기운을 품은 ‘청량산 해천사(淸山 海川寺)’로 바꾼 것도 그 무렵이었다.

불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선암사 불전에 장엄한 비보장치들. 아래 현판사진은 ‘고 청량산 해천사’라 새겼다. 조계산 선암사의 옛 이름이다.
불전 판벽에 ‘海’ ‘水’자를 투각

선암사는 자연과 조화로운 한국적 원림조영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절집이다. 계절마다 곳곳에 조성한 연못과 오래된 꽃나무들이 화원의 숲을 이룬다. 화원의 아름다움을 지닌 내면에는 화재를 대비한 지혜로운 혜안도 배여 있다. 곳곳에 조성한 연못과 수조는 화재시 방화수의 역할을 하며, 주변에 식수된 은행나무, 차나무 등도 내화성이 뛰어난 수종들이라 산불의 접근을 지체시키고 화마의 위력을 낮추는 방화림의 역할을 염두에 둔 것이다. 선암사는 또 유난히 담장이 발달해 있다. 매화와 왕벚, 처진올벚 등과 어우러진 봄의 정경은 선암사 고유의 진경수묵화다. 화재시 담장 또한 훌륭한 방화벽의 역할을 할 것임에 분명하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셈인데, 사찰 곳곳에 화재를 대비한 사려깊은 통찰지가 구현되어 있다. 동시에 화재에 대한 경각심도 일상적으로 일깨우고 있으니 대웅전 앞 심검당 판벽에, 또 강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무량수각 판벽에 바다 ‘海’자와 물 ‘水’자를 투각하여 오고가는 사부대중에게 화재예방을 환기시킨다. 선암사엔 석등조차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화재에 대한 경각심의 깊이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선암사 대웅전 지붕 서까래 칸칸에 바다 ‘海’자를 넣어 온통 물의 기운을 넣은 것도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의 기운이 뻗치는 결계(結界) 속에 선암사의 핵심불전을 조영한 것이다. 그 역시 바다의 기운을 빌려 불의 기운을 다스리는 비보책이면서, 신성의 공간을 수호하려는 결계의 종자(種字)라 하겠다.

상중하 3개 층의 층급 우물천정

조계산 선암사는 9세기말 도선국사가 국토의 남방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지리산 부근에 세운 ‘남방비보 삼암사(南方裨補 三岩寺)’의 하나로, ‘1철불, 2보탑, 3부도’의 기본틀로 조영되어졌다. 1147년의 기록으로 전하는 〈조계산 선암사 대각국사 중창건도기〉에 의하면 대웅전은 원래 미륵전이며, 2층 중층건물이었으나, 지금처럼 1층으로 된 것은 정유재란 이후 17세기 중창과정 때로 추정한다. 지금의 대웅전은 1823년 대화재 이후, 1824년 6차 중창불사 때의 모습으로 간주한다. 대웅전은 3×3칸의 내4출목 건물이다. 천정은 층층이 들여쌓아 밀어올린, 3개 층의 층급 우물천정이다. 중앙부 내진영역의 천정을 가장 높이 경영한 형태다. 상중하 3개 층을 가진 층급천정은 통도사 적멸보궁과 불국사 대웅전,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등에서 간혹 나타난다.

중앙 내진영역의 상층천정. 20칸의 우물반자에 팔엽연화문을 입혔다.
두 가지 문양의 중층적 역학구조

우물천정에 베푼 문양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학(鶴) 문양이고, 다른 하나는 기하적인 패턴으로 도식화된 8엽연화문이다. 학 문양은 우물반자 세 칸 폭으로 사방면에 조성한 하층천정의 가장자리 한 줄에만 경영했다. 후불벽 뒤 천정에는 우물반자만 있고 문양이 없어 학 문양이 베풀어진 우물칸 수는 모두 55칸이다. 그러니까 사방 가장자리 우물반자에는 마치 범자로 결계를 치듯 학 문양으로 신성한 사각 틀을 이룬 후, 그 내부에 8엽연화문으로 연화장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도는 단순한데, 천정의 건축적 연출에서 각 층급의 깊이와 폭의 변화가 불규칙적이고 수리적 비례를 갖지 않아 보다 중층적인 역학적 구조미가 두드러지며, 미묘하면서도 기운 생동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하층천정과 내출목 순각반자와의 높이차는 88cm를 이루는 대신, 하층과 중층천정과는 33cm로 미미하게 줄였고, 다시 중층과 중앙부 내진영역의 상층천정과는 1m에 이르는 큰 높이차를 둠으로써 중앙부에 소실점적 효과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상,중,하 각 층급에 할당한 폭도 높이 차만큼이나 불규칙해서 폭과 깊이의 다변성에 의해 공간의 입체적 양감을 풍부하게 살려내고 있다. 기하적인 정형으로 단순화되어 자칫하면 주목되지 않는 일상의 오브제로 전락하기 쉬운 천정문양들에 어둠과 빛이 차별적 농담으로 풀어져 보다 생명력과 생동감을 갖추게 된 것이다. 폭의 탄력적인 운용에 의해 각 층에 문양을 입힌 우물칸 수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하층에 경영된 우물칸 수는 닫집의 우물반자를 포함해서 177 칸이고, 중층은 72 칸, 중앙부 내진영역의 상층천정에는 20 칸, 해서 총 269칸을 펼쳤다.

동일한 문양, 동일한 색상에도 불구하고 중앙의 집중성으로 시선이 결집하는 까닭은 그같은 맺고 푸는 공간역학의 변주에 따른 것이다. 〈순천부 조계산 선암사 제6창건기〉(1828년) 목판기록에 의하면, 1824년 대웅전 중건에 주변의 송광사, 흥국사, 구례 화엄사 등에서 승장들을 파견해 중창불사를 도왔는데, 당시 도편수 등 장인 대부분이 승장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운반노동에 동원된 선암사 승려만도 300여명에 이르렀다니, 그 중창불사의 신심이 능히 헤아려지는 것이다.

내4출목의 장치와 들보 위에 건 충량의 용, 3층 층급 천정구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장자리엔 학, 안쪽엔 팔엽연화문

대웅전 천정의 가장자리에 보주를 입에 문 학 문양으로 한 바퀴 두르고, 그 안에 연화문을 장식하는 기법은 조선 중후기 서남해안 지역의 사찰에서 두루 나타난다. 나주 불회사 대웅전, 내소사 대웅보전, 선암사 원통전에서도 나타나고,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에서도 눈에 띈다. 천정 가장자리 우물반자 청판에 그린 학은 머리에 붉은 점이 있는 단정학(丹頂鶴)이다. 단정학은 저마다 붉은 보주를 입에 물고 있다. 깨침을 증득한 표징이다. 때때로 학은 아라한의 깨침을 상징한다. 〈삼국유사〉 권3 탑상 제4 ‘(오)대산월정사오류성중’편에 다섯 학 이야기가 나온다. 다섯 학은 곧 다섯 분의 아라한으로, 관음보살의 화현들이시다.

그러니까 궁구의 진리를 증득한 아라한들이시니 부처의 세계 가장자리에 모셨다. 중심부에 무시무종으로 반복해서 베푼 연꽃은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차용한 방법가설이다. 그것을 일러 ‘차사문의(借事問義)’라 한다. 어떤 사물을 빌려서 세계의 진리를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무문(無門)의 문을 두드리는 기와조각과 같다. 본질은 ‘묘(妙)’다. 미묘하고 수승한 진리, 묘법연화의 꽃이다. 진리 그대로 현현하는 여래이며, 진여법계다. 팔엽연화문의 몇몇에 그 뜻을 드러내고 있다. 연화문의 씨방자리에 범자 ‘옴’자 한 자를 새겼다. 〈벽암록〉 19칙에서 구지화상이 한 손가락 법문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의 방편설이다. 만법귀일의 일심(一心)의 뜻이 담담히 조영되어져 있다. 꽃 한 송이 피어나니 그 속에 세계가 열린다고 했던가.

‘水’와 ‘海’, 감로의 화수분

선암사 대웅전 천정의 층급구조로 보이는 종적 세계는 중중무진의 불국토이고, 횡적으로 펼친 세계는 무진연기법계다. 가지가지 인연과 가지가지 방편으로 나누고 쪼개어서 부처의 세계를 보이는 곳, 그곳이 불전의 천정장엄 세계다. 천정의 칸칸을 씨줄날줄로 내어서 꽃과 범자를 칸칸이 모신 것은 경주 남산 곳곳에 부처를 나투시게 하고, 탑파를 쌓아 불국토를 조성한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화엄국토의 장엄이다. 단지 조형새김의 장소가 천정의 평면이고, 산의 바위이며, 비단의 화폭일 따름이다.

조형원리는 불이(不二)다. 부처님은 오고 감이 없고, 머무르는 곳도, 머물지 않는 곳도 없다. 마음의 지혜로 열고 보면 소동파의 시에서처럼, 푸른 산도 청정법신일 것이고, 시냇물 소리도 부처님의 장광설이 되는 것이다.

〈선암사 대웅전 중수상량문〉(1824년)에 그 구절이 있다. “ 이 가운데 더 없는 법의 진리가 있다. 머무름이 없는 인연이다.” 숱한 화마 속에서도 법등의 인연은 이어져서 조계일적(曹溪一滴)의 물길을 내었다. 조계산의 ‘水’와 ‘海’는 결코 마르지 않는 감로의 화수분으로 뭇 생명을 기르고 있다. 기룬 것은 다 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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