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를 길러라 ③

눈·귀·혓바닥하고

타협하지 않는 것이 ‘삼매’

그 자리가 정정이고 도력

마음 쓰는 방법이 ‘중요’

 

상대성을 우리가 쓰긴 써. 선이다 악이다 상대성이다. 밝다 어둡다 상대성이다. 남자다 여자다 상대성이거든. 그러기 때문에 제일 알아듣기 쉬운 것이 사람으로서의 남자고 사람으로서의 여자다 말이에요. 사람은 절대성 자리라면, 남자다 여자다 상대성이거든요. 선이다 악이다 그런 건데, 우리 보림선원에 오래 나오는 분들은 벌써 절대성 자리에 앉아가 있습니다. 어쩔 때는 잊어버릴 때도 있어요. 앉아가 있으니 그 절대성 자리는 밝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도 아니다. 착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거든요. 절대성 자리에. 그러하니 그 자리에 앉아야 바로 그것이 정정인데, 그러면 도력이란 건 어떤 거냐. 선과 악을 써. 밝고 어두운 걸 써. 남자다 여자다를 써. 길다 짧다를 써. 이것이 도력입니다.

오늘부터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이거 오늘 들어가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정정이 되어야 한다는 이 말인데. 항상 삼매 중에서 한 생각을 일으킬 줄 알아야 됩니다. 삼매는 또 무엇이냐. 어디 눈하고 타협 안하는 것, 귀하고 타협 안하는 것, 혓바닥하고 타협 안하는 것, 이것이 삼매입니다. 타협을 하지 안 해. 그러기 때문에 생주이멸(生住離滅)이 전부 삼매입니다. 죽는다, 다르다, 좋다 나쁘다. 뭐 사실로 술 먹고 지랄하는 것도 삼맵니다. 본바탕 삼매 자리가 있기 때문에 말이죠. 상대성으로, 물론 몰라서 그러는 거죠. 그래서 업만 짓는 거지만은 말이지. 업 짓는 것도 삼매가 짓지 누가 짓는 겁니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가만히 생각을 해 보세요. 그러니. 참 이 설법을 조금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러하니 아까, 말한 대로 이거 여기서 끝내도록 합시다. 삼매를 놓치지 마세요. 삼매 그 자리가 바로 정정이고, 정정 그 자리가 바로 도력이라. 아까 말한 성태, 거룩한 태라. 이래서 어떻든지 여러분들이 거룩한 태를 키우는 방향으로 나가세요. 이래 나가면은 부처라는 불자를 몰라도 됩니다. 이거 부처님 하신 말씀입니다. 부처 불자, 쓸 줄도 몰라. 말을 옮길 땐 그리 해도 됩니다. 부처 불자, 이건 깨달음을 뜻하는 글자인데, 이건 대명사 아닙니까? 몰라도 생사문제가 해결되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부처 불자를 알아. 부처라는 그 사실을 알아. 그래서 거기다 얽붙어. 얽붙어 놓으면 부처님 얼굴에 사마귀 하나 나는 거나 한가집니다. 부처님의 그 정정 자리가 내하고 다를 것이 뭐 있습니까. 부처님의 정정 자리나 부처님의 도력이나 부처님의 성태자리나 내하고 꼭 한가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그걸 잊어버리고 부처님에 얽혀서 얽붙는다 하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벌써 자기 자성 자리에 하나의 오점을 딱 하나 찍는 거나 한가지입니다. 이렇게 어렵습니다. 이거 좀 엉뚱하다는 이런 말도 있을 겁니다만, 어떻든지 여러분들은 발심해서 인연이 있어서 이러하니까, 앞으로 이거 할 때는 꼭 나오도록 하십시오. 그러면은 오늘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 공부란 그렇습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그 바탕 자체를 확실히 모르면은, 그렇다 해서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거긴 거기 따라서 어떤 인연관계를 맺겠지만 말이죠 생사문제는 해결되는 거 아닙니다. 절대 그건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 벌써 이거는 빤한 일이거든요. 빤한 일인데 빤한 걸 두고 다른 걸 해봐야 무엇이 되겠는가.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하기 때문에 올바른 사람이 나쁜 일을 해. 사도를 행해. 정인이 사도를 행하면은 사도가 바로 정도가 돼 버려. 또 삿된 사람이 좋은 일을 해. 좋은 일 하는 것이 바로 사법이 돼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마음 하나에 달린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요게 삼마지인데 요거는 정을 뜻하는 것이고, 마는 가라앉을 정자, 정할 정자 가라앉는다 이렇게 하는 게 낫습니다. 가라앉음. 이걸 뜻하는 것이고 삼마지라 해도 되고, 따지 자라 해도 되고 타라 해도 좋은데, 이건 구멍을 뜻하는 것인데. 자 어떻든지 여기에 들어가려면은 바른 그 본분사, 본분사 여기에 들어가려면은 이걸 닦아야 되거든요.

그럼 이건 뭣이냐. 이건 구멍입니다. 바른 구멍이 탁 트여야 됩니다. 바른 구멍이 안 트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이론 가지고서 자기의 조그만한, 아무것도 모르는 그거 가지고서, 아 이러하니 이러하니 어쩌니 그래서 자기 스스로가 거기다 합리화 시켜. 그건 만날 해봐도 자기 지옥 자기가 파는 거나 한가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멍은 그걸 뜻하는 것인데 옳은 소견을 탁 세워. 탁 세워. 그래서 숨을 마음대로 쉬어. 사람은 숨을 쉬어야 살거든요. 하기 때문에 말이지 그 옳은 소견을 하나 딱 세워서 그래서 그대로 나가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전에도 그랬습니다만 공부하는 사람이 물론 견성을 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하지만은 제일 중요한 것은 뭣이냐 하면은 어떻게 공부를 해야 되느냐. 어떻게 내 마음씀이를 가져야 되느냐.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말은 안 해도 전부 공부를 열심히 할라 하는 사람들은 거기다 무척 애를 썼습니다. 말 표현만 아이구 빨리 견성을 해야 되겠지 이래 했지 말이죠 어떻게 내가 마음가짐새를 잘 가져야 되겠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면 마음가짐새를 딱 가져 놓으면은 시일에 상관이 없어요. 왜 그러냐. 마음가짐새를 내가 딱 정해 놓으면은 말이죠. 그 당처는 육신으로 봐서는 시공간이 있어. 그러나 법신분으로 봐서 무슨 놈의 시공간이 있나요. 그런 데 관심을 안 가집니다. 실에 있어서는.

그러니까 늘 하는 말이 어떻든지 말이지 이 바탕, 바탕만 준비합시다 이거에요. 바탕만 준비를 해 놓으면 문제는 다 해결된 거나 한가지거든요. 왜 그러느냐. 바탕만 준비해 놓으면 그 당처에 있어서 그 당처에 있어서 말이지 시공간이 끊어진 자리거든요. 그러니까 시공간이 끊어졌다는 것은 어떻게 입증이 되느냐 하면은 말이지. 여러분의 색신, 모습 이거는 말이지 물건이 있어. 어떤 모습이 있어. 하기 때문에 여긴 시공간이 반드시 따르거든요. 일년 이년 일초 이초, 이거는 시공간이 그대로 따르지만은 그러나 모습이 없어. 모습을 딱 부인해 버려. 부인이 아니라 거기 들어앉질 안 해. 들어앉지 않으면 거기 시공간이 붙을 여가가 있나요. 시공간 안 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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