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사찰 건축 14.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구 전통불교문화원)

시대적 요청의 건축관 수용
2009년 6월 준공·설계 승효상
우리 건축의 ‘마당’ 기본틀로
나무, 돌 사용 주변과 조화

▲ 2009년 6월 완공된 한국문화연수원은 우리 건축의 기본인 ‘마당’을 중심에 둔 건축으로 ‘비움’의 미학을 담고 있다.
“불교건축이 현대건축에서 공백으로 기록된 까닭이 조선시대 숭유배불 정책의 사유가 크긴 해도 현대에 이르러서도 불교계의 옛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오히려 불교의 본질에서 어긋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를 이 건축의 건축가로 선택하느냐 마느냐는 그 족쇄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2009년 6월 11일 충남 공주 태화산에 한국문화연수원이 세워졌다. 불사는 건축가를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건축가를 선택하는 일이 건축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라는 것은 단순히 건축의 형태를 ‘고르는’ 작업이 아니라 ‘시대적 요청’에서 출발한 한 건축가의 ‘건축관(建築觀)’을 받아들이는 문제였다. 건축가는 2002년 건축가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건축가 승효상(62ㆍ이로재 대표) 씨였다. 그의 건축관은 ‘진보’와 닿아 있는 것이었으며, 그 진보는 ‘옛 것’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려는 ‘생각’이었다. 건축의 의뢰자인 대한불교조계종은 불교건축이 현대건축에서 공백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말하는 건축관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의 건축을 받아들였다. 한국문화연수원(이하 연수원)은 현대건축에 기록되기를 발원한 불교건축이다.

▲ 마당을 중심으로 한 ‘ㄷ’자형 건물의 교육행정동
‘마당’, 우리 고유의 건축언어
“나는 불교 건축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비움이었으며, 불교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비움은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의 중요한 개념이 되어야 했다.”
대지면적 14,867.00㎡, 건축면적 5,745.93㎡, 연면적 9,600.45㎡의 연수원은 크게 교육행정동과 숙박후생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교육행정동은 중앙의 마당을 중심으로 한 ‘ㄷ’자 형태로 지어졌고, 일곱 개의 동으로 구성된 숙박후생동은 동과 동 사이를 길이라기 보다는 마당이라는 느낌의 공간으로 잇고 있다.
연수원은 건축가의 말대로 ‘비움’으로 시작된 건축이다. 그 비움의 실천은 ‘여백’이고, 그 여백의 구체적인 이름은 ‘마당’인 것이다.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개념이다. 연수원은 마당을 건축의 중심에 놓았던 우리 건축의 전통적인 구조를 기본 틀로 한 건축이다. 각 건물들은 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됐다.
우리 전통 건축을 서양처럼 기둥이나 지붕 같은 요소의 양식으로 분석, 분류하여 한국건축의 특성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건축가는 말한다. 물질적 풍요보다 청빈낙도를 동경한 우리 선조들의 건축은, 국악이나 전통회화가 음과 음의 사이나 화면의 여백을 가볍게 다루지 않았던 것처럼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또 하나의 공간으로 생각한 것이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이유로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움의 공간 마당은 우리 건축의 ‘키’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건축의 마당은 서양인들이 건물과 대립적 요소로 사용한 정원과도 다른 것이며, 기후에서 비롯된 중동의 중정과도 다른 것이고, 관상의 의미가 큰 일본의 정원과도 다른 차원의 것이다. 주거에서 뿐만 아니라 사찰, 서원, 궁궐 등 모든 건축에서 그 중심에 자리하는 우리의 ‘마당’은 때로는 작업공간으로, 때로는 공용공간으로, 혹은 축제의 공간으로, 심지어는 사유를 위한 공간으로 그 의미와 기능의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마당은 우리의 고유한 건축 언어이며, 문화적 가치인 것이다.
연수원 부지로 책정된 사곡면 마곡사로 1065번지 일대는 조선시대 가마터였다. 설계 전에 기와가마 56기와 그와 관련된 부속시설인 수혈수구 30여기들이 발굴됐다. 부지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많은 부분이 건축금지 지역으로 고시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당을 중심에 놓은 비움의 건축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시작됐다. 부지 중앙의 많은 부분을 어쩔 수 없이 비워야 했다. 자연스럽게 건물들이 여백의 끝에 놓이면서 마당을 중심으로 한 건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연수원 안에는 많은 마당들이 독립적으로, 혹은 이어지면서 건축의 대마를 이룬다. 여기에서 건축물들은 그 마당을 한정하는 요소이고, 많은 마당들은 스스로 존재방식을 가지고 연결되면서 주변의 풍경과 거주의 일면을 담는다.

▲ 숙박후생동은 여러 마당으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들의 특징
건물들은 박공형태의 여러 매스들이 기단 위에 얹혀있는 형태다. 건물의 외부재료는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돌과 나무로, 흙에 묻힌 옹벽부분은 자연석, 기단부분은 화강석으로 마감했다. 교육행정동의 강의실은 마당을 중심으로 주위 둘레를 따라 배치됐고, 강의실과 강의실 사이사이를 비워 그 틈새로 주변 풍경을 볼 수 있고, 빛과 바람이 흘러들 수 있게 했다.
마당은 멀리 태화산 줄기와 가깝게 마곡천 계곡으로 열려있고, 마당 한 쪽 끝의 수반 위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마당은 안과 밖, 자연과 건축,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교육행정동은 강의와 교육, 토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다목적홀, 대강의실 소강의실, 분임 토론실과 선방으로 구성되어있다. 선방은 흙벽으로 마감되어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해 선체험 및 불교 관련 공간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약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후생동은 각종 프로그램의 운영을 위한 숙박과 식사를 포함한 후생 및 편의 시설로서 숙소와 식당, 다실, 관리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숙박후생동은 많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러 건축물 사이로 길게 경사진 마당은 담장으로 구획된 숙소의 크고 작은 마당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사진 지형의 흐름에 따라 크지 않은 건물을 배치하여 주변 풍경과의 조화를 이루도록 했고, 최저층 부분에 서비스를 위한 공간을 두고, 마곡천 계곡을 따라 식당을 배치하여 넓은 조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숙박후생동의 객실은 전통 한실 이미지의 공간으로, 1층에 위치한 객실은 각 동마다 변화 있게 가꾸어진 마당을 중심으로 배치했고, 2층의 객실은 먼 풍경까지 조망할 수 있게 배치해 각 동과 방마다 서로 다른 조망을 갖는다.
숙박후생동의 각 마당은 마사토마당, 박석마당, 이끼마당, 연지, 화계 등 각 마당마다 특색을 지니고 있다. 조경에 사용한 수목은 배롱나무, 단풍나무, 연, 불두화 보리수 등 사찰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종을 택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도량
세계적으로 문화가 ‘힘’이 된 지 오래다. 때문에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는 ‘문화’를 키우는 일에 노력하고 있다. 자기문화, 자기사상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우리의 문화를 알고 키우는 일에 소홀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 문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온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한국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통과 화합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수원은 ‘한국문화의 세계화’, ‘불교문화의 대중화’, ‘전통문화의 현대화’를 위해 건립된 연수원이다. 한국문화연수원 건축불사는 우리의 문화를 ‘알고 키우는’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연수원 건축은 외형적인 면에서는 ‘옛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진보적인 현대건축을 선택했고, 그 밑그림은 우리의 전통 건축의 문화적 가치에서 시작했다. ‘옛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이 문화를 키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면, ‘옛 것’을 잊지 않은 일은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고 보존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수용한 본 건축은 연수원 건립의 취지와도 부합되는 것이라 하겠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의 도량인 것이며, 그 도량이 시대적 요청을 수행해 나가는 일은 우리 문화의 힘을 키우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불교’가 우리 문화를 알리고 키우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국문화연수원’이라는 불사는 그런 우리의 문화적 소임을 펼치기 위한 도량의 마련인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을 졸업했다. 비엔나공과대학에서 수학했고, 15년간의 김수근 문화를 거쳐 1989년 이로재를 열었다. 수졸당, 수백단, 웰콤시티, 대전대 혜화문화관 등으로 여러 건축상을 수상했다. 파주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로 새로운 도시 건설을 지휘한 그는 2002년 미국건축가협회 명예펠로우의 자격을 부여받고, 같은 해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1998년 북 런던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한국중합예술학교에서 강의 하고 있다.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과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 〈Works:10×2〉, 〈건축, 사유의 기호〉, 〈비움의 구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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