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6〉 능가산 내소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천정 중앙에 경영한 우물천정에서 좌우 가장자리에 베푼 악기벽화. 총 10칸 모두에는 저마다 다른 악기를 그렸다.

천정 중앙 10칸 각 다른 악기그려
대흥사, 통도사 등 비슷한 사례
종묘제례악의 장중함 느껴져
시대정신인 ‘예악사상’반영 흔적

17~18세기 서민적 불교색채 대두
전란 이후 17세기에 이르면 조선사회에 치명적이었던 전란과 흉년, 역병 등으로 수륙재와 천도재의 서민적 수요가 급증하면서 숭유억불의 사회에서 사찰중창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서민의 영가 천도와 기복신앙 수요를 불교가 수용하면서 서민적, 대중적 불교 색채를 띄게 된다. 일종의 불교에서 ‘브나르도 운동’이라하겠다.

전란 후 차즘 사회경제체제가 안정되고 상품교역과 생산력이 확대되면서 부를 축적한 평민이 등장하게 된다. 그같은 경향은 강경포구 등 조운과 해상교역세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바, 17, 18세기 불전중창에서 새로운 시주계층으로 평민 속에서 대두하게 된 것이다. 중창불사를 위해 스님들 스스로 마련한 계(승계:僧契), 그 중에서도 일차적인 갑계(甲契)를 통해 재정기반을 마련하거나, 아니면 천도재, 수륙재 등을 통해 평민의 경제력을 불교 속으로 끌여들여 불사를 일구어 나갔다. 이러한 흐름은 상품교역이 활발히 전개되던 서남해안에서 특히 활발하였던 바, 미황사, 대흥사, 불회사, 불갑사, 내소사, 논산 쌍계사 등의 중창불사가 그러한 사례다.

천정에 장엄된 대표적 문양들. 천정에 물고기,게 등 수중생물이 그려져 있다.

생동감 있는 낭만주의 불전 장엄

영남의 범어사, 통도사, 불국사가 고전주의에 바탕을 둔 바로크적 장엄함을 추구하였다면, 서남해안의 미황사, 대흥사, 내소사 등은 보다 서정적이며,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낭만주의적 불전장엄을 조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경기지역과 팔공산 중심의 영남지역에 국가왕실의 비호를 받는 원당사찰이 많았던 반면에, 서남해안지역에는 일반평민들의 불전참여가 보다 능동적이었던 까닭에 서남해안 불전장엄에서 민중적 취향이 반영될 수 밖에 없었다.
천도재 등이 활발해지면서 대웅전 등 사찰의 핵심불전이 스님 중심의 예배공간에서 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의식공간으로 바뀌고, 대웅전 한 공간에서 예불과 의례행사가 동시에 이루어져, 신중단, 영가단이 함께 통합된 삼단형식의 불전이 경영되었다. 대중이 참여하는 의례를 위해 불전은 3×3칸의 크기로 보편화되고, 불단은 장대하게 커졌으며, 후불벽은 더 뒤쪽으로 물러났으며, 천정은 보다 높이를 추구하게 되었다.
 

대웅보전 내진영역의 우물천정 장엄. 한가운데 팔엽 연화좌는 팔방금강연화좌를 상징한다.

불전조영에 유, 불, 선의 습합

게다가 건축조영 책임제에 있어 변화가 일었다. 건축에서 모든 것을 총괄하던 대목제도가 퇴색하고, 부문별 책임제인 편수제도가 경향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분업화와 전문화의 과정이다. 건축역량의 중심에는 승인공장(僧人工匠), 곧 ‘승장(僧匠)’이라 불리는 스님들이 있었다. 승장은 당대에 가장 조직적이며 숙련된 역량이었다.

불전장엄은 자연스레 민중적인 취향과 다소 분업화된 전문능력이 결합하여 다양하고도 자유로운 조형미술, 또는 건축장식으로 표현되었다. 몇몇의 장엄은 독립적인 영역을 과시라도 하듯 두드러진 인상으로 표출되었다. 화사하고 유려한 꽃살문의 창호가 조영되었고, 천정 빗반자에 선교적 분위기의 주악비천과 공양비천이 베풀어졌으며, 불단에는 도가적 길상이, 천정에는 삶의 향기와 구체적 생명들이 묘사되어 나타났다. 불전조영에 유,불,선이 통합된 우리나라 특유의 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공포부재에서 유례없이 다채로운 장엄이 조영되었다. 내출목의 포작은 더없는 현란한 아름다움으로 중중무진의 숲을 이루었다. 전통적 불전조영의 통일성 위에 다양성과 독특한 인상을 자유로이 경영하여 생동감 있는 새로운 전형의 사찰장엄을 일구었던 것이다.

햇살 머금은 기둥…36.5도 체온 느껴져

내소사 대웅보전은 그같은 17세기 불전조영의 흐름을 고스란이 보여준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인조 11년(1633년)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방형 불전이다. 대웅보전의 외부 벽체에는 단청의 빛이 남김없이 육탈하고 본연의 뼈대가 드러나 있다. 건축의 질감은 아무런 들뜸이 없는 중도의 차분함으로 다정하기 그지없다. 어머니 품같이 따스하고 온유하다. 햇살을 머금은 기둥에는 36.5도의 사람 체온이 가이없이 느껴진다. 거드름과 위압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위로 경영한 천의무봉의 건축이 따로 없다.

8짝 창호에 경영한 꽃살문은 자연 그대로다.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자연주의 한국 미의 한 전형으로 다가온다. 창호의 꽃은 흔들리거나 지우침이 없는 부동의 꽃이다. 부처는 꽃과 다르지 않다. 진리는 둘이 아니고 두 가지 모양을 갖지 않는다. ‘법계일상(法界一相)’이다. 중생과 부처를 잇는 불이(不二)의 꽃이다.
내5출목 포작, 생명에너지 전해

대웅보전 천정은 빗반자와 우물천정이 결합된 양식이다. 내출목은 무려 5출목이다. 17, 18세기에 조영된 불전의 절대다수는 외2내3출목, 또는 외3내4출목이다. 내5출목을 경영한 곳은 대구 동화사 대웅전,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정도로 몇 되지 않는다. 내5출목의 평행층급을 따라 살미의 부재들이 층층이 높아 오르는데, 그 모습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장관이다. 일렁이는 듯한 운동성이 집합적 위상공간을 이루어 공간에 흐르는 신성의 기운들을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부재의 끝을 8개의 붉은 연꽃 봉오리로 마감한 까닭에 불잉걸의 숯불을 보는 듯이 생명의 에너지가 활활 타오는 것만 같다.

서남해안 사찰의 쌍연꽃과 물고기

내5출목 포작 위로는 빗반자를 가설하였다. 외진주 영역에 올린 빗반자에는 칸칸이 연꽃줄기가 서로 꼬인 4쌍의 쌍연꽃을 조영하였다. 연꽃 봉오리는 붉은 빛을 입혔고, 연꽃 줄기는 연한 청색이다. 꼬인 쌍연꽃 문양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서남해안 지방의 독특한 문양이다. 나주 불회사와 해남 대흥사 천불전, 고흥 금탑사 등에서만 나타난다.

특히 이들 불전에 경영된 쌍연꽃 사이에는 물고기와 거북, 게 등이 공통적으로 표현되는 바, 지역의 해양성과 밀접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바다가 아니라, 신령의 기운이 흐르는 법계다. 그 본질은 걸림이 없는 무애원융의 화현이다. 일체만유는 법신불의 화현이자, 권화(權化)다. 특히 대들보 위 충량의 용이 물고 있는 물고기는 여의보주와 같다. 물과 얼음이 둘이 아닌 이치와 같다. 그 본질은 윤회로부터 자유로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곧 무상정등각의 성취일 것이다. 고전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민중적 자유로움이 읽혀진다. 장엄의 세계가 보다 다채롭고, 자유로우며, 생동감이 넘치는 낭만주의적, 자연주의적 경향성이 엿보인다. 그를 통해 이 시기 불교가 지향하고 있는 대중성을 간파할 수 있으며, 시대정신의 도도한 흐름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빗반자와 우물천정 결합된 대웅보전 천정.

11가지 악기 표현한 희소성

그러한 민중적 구체성과 자유분방함의 의지는 내진주 영역의 천정 중앙칸에도 일정하게 유지되어 표출되고 있다. 천정 중앙칸은 우물천정이다. 중앙의 양 끝 5칸씩, 총 10칸 모두에는 저마다 다른 악기를 그려 넣었다. 한 곳에는 동시에 두 악기를 그려서 총 악기 수는 11가지다. 장구, 북, 해금, 비파, 바라, 태평소, 생황, 피리, 아쟁 등의 악기다. 악기에 입힌 색채는 빨강, 청색, 노랑, 검정, 흰색의 오채색이지만, 고전적 오채의 원색을 피하고, 중간톤을 입혀서 색감이 맑고 다정하다. 악기의 집합에서 삼현육각의 신명적 에너지와 종묘제례악 같은 정악의 장중함이 느껴진다.

악기벽화의 본질은 예경과 찬탄

17, 18세기 불전조영에서 일반적으로 천정의 빗반자엔 주악비천이나 공양비천, 고사인물도 도상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에서 처럼 다양한 악기만 표현한 경우는 흔하지 않은 사례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과 양산 통도사 북극전 등에서 희소하게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그 조형미술의 원형질을 찾아 거슬러 오르면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5호묘에 이를 것이고, 보다 가까이는 15세기 조선불화 <관경16관변상도>에서 조형의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 지온인 소장 조선불화 <관경16관 변상도>( 1465년)는 내소사 대웅보전 천정에 장엄한 악기의 본질을 조형언어로 직지하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공덕에 대한 예경이자, 찬탄의 공양이다.

음악성의 조형은 유교지배체제의 핵심내용, 그러니까 시대정신을 일정하게 반영한다. 그것은 ‘예악사상(禮樂思想’)이다. ‘예(禮)’는 신분과 계급처럼 엄격한 사회질서다. 그래서 예는 이것과 저것을 분별한다. 그에 반해 ‘악(樂)’은 음악처럼 즐거움으로 조화롭게 통합한다. 악(樂)의 본질은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이다. 그래서 예악(禮樂)은 조화로운 질서다. 불교장엄에서 음악은 부처님의 공덕에 대한 예경이면서, 동시에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일승임을 환희심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중앙에 영산회 팔방연화좌

중앙의 우물천정은 8×6=48칸의 우물칸을 조성했다. 가운데 4×3칸은 팔엽연화좌를 마련해 놓았다. 범종의 조형에서 몸통 사방에 베푼 아홉연화좌를 연상시키며, 동시에 불국사 석가탑 주변에 경영한 팔방금강좌를 연상케 한다. 중앙의 석가탑을 연화좌로 치환하면 그 역시 아홉연화좌다. 그것은 석가모니께서 영산회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백호에서 광명을 놓아서 팔방에 금강연화좌를 만들고는 삼천대천에 상주하시는 부처님의 분신을 앉게 하여 다보여래를 친견할 수 있도록 하신 상서와 연결된다. 천정의 한가운데에 팔엽연화좌를 내어 팔엽에 육자진언을 새겨 넣은 뜻은 바로 그 영산회의 희유한 상서를 조형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범종을 울렸을 때 천지간에 일승원음의 진리법이 가득 차는 것과 같은 이치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말했다. “진정한 발견의 항해는 새로운 땅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데 있다.” 우리에게도 절집의 천정장엄을 보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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