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를 길러라 ①

우리는 숱한 번뇌 망상의

구름을 일으키고 있다.

분별심으로 허공 될 수 없어

‘정정’, ‘바른 가라앉음’은

눈·귀·혀와 타협 하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게한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면 도력을 얻지 못합니다. 어제 얘기했죠. 어젯밤에 얘기한 것. 망심이 없어서 정도(正道)를 써야 된다. 망심이 있어서 정도를 쓰면 그 정도는 사도(邪道)가 돼 버려. 그와 마찬가지로 정정(正定), 바를 정자 정할 정자. 정(定)자를 우리말로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정자를 가라앉는다 이런 식으로 내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라앉은 자리다. 정할 정자거든요. 이건 바를 정자, 이거는 여러분들 다 아는 것이고. 그런데 이 정정, 바로 가라앉는 것, 정정을 얻지 못하면은 바로 삿된 마음이 아니고 바른 마음, 아무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그러면 차분하게 가라앉을래야 가라앉을 것이 없어요. 그 마음에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안 해. 번뇌 망상.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망상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 정정입니다.

그러니까 한문자로서 바를 정자하고 정할 정자하고 이래 써 놨으니 말이죠 아, 이거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절대로 그런 거 아닙니다. 그만 내 마음이 어디 머물지 안 해. 밉다 곱다 이런 데 머물지 안 해. 분별을 일으키지 안 해. 번뇌를 일으키지 안 해. 요것이 정정입니다. 이거 우리말로 억지로 새길라 하면은 '바로 가라앉음' 이래야 될 겁니다.

그러면 가라앉는다는 말이 또 붙어버리네. 가라앉을 것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가라앉는다는 식으로 이렇게 내가 말은 하고 있습니다만은 그 말이 맞지 않거든요. 왜 그러냐면 말이죠. 근사(近似)하지만은 내 마음이 분별을 일으키지 안 해. 가라앉힐래야 가라앉힐 것이 뭐 있어요? 내 마음이 분별을 일으키지 안 해. 분별은 어디서 오느냐. 분별을 일으키면 번뇌가 나와. 가지고 싶다 버리고 싶다 번뇌가 생겨. 그러하니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고것이 아까 말한 성태, 그 자리 그것이 바를 정자 정할 정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력을 갖다 기르려면 정정이 없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마음이 턱 가라앉음으로써 그만 삼매정중에 들어서 한 생각을 턱 일으켜. 마음대로 도력이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가 간난이 집에 갔을 때에, 언제라도 부처님은 정정이거든요. 언제라도 정정이라. 그런데 아난 존자가 그 자리에 안 왔다 말이죠. 안 왔으니까 그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 '지금 어디에 있는고' 하고 한 마음을 일으켰단 말이죠.

정정에서 한 마음을 일으켰어요. 일으켜 놓고 보니 아난 존자가 간난이 집에서 야단을 만났다 말이죠. 이걸 보고 그래서 그 자리로 온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하니 성태를 기른다 하는 것은 정정이 되자는 것입니다. 아까 여기 쓴 성태, 거룩한 태. 이것은 정정이 되자는 겁니다. 그러면 정정이 되는 그 방법은 무엇이냐. 눈하고 타협을 하지 안 해. 귀하고 타협을 하지 안 해. 입하고 혓바닥하고 타협을 하지 안 해. 눈으로 보긴 봐. 보지만은 그대로 볼 뿐이여. 귀로 듣긴 들어. 듣지만은 그대로 들을 뿐이여. 거기서 시시비비를 따지지 안 해. 아 이건 잘 한다 좋다 나쁘다. 이걸 따지질 안 해. 요것이 바로 성태를 기르는 것이고 거룩한 태를 기르는 것이고, 그것이 다른 이름으로 말하자면 정정, 바른 가라앉음, 이걸 뜻하는 겁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부처님도 요 문제에 있어서, 너희가 한 식경이라도, 밥 한술 뜨는 사이라도 이렇게 정정이 돼. 성태가 돼. 이러하면은 그 허공중에 칠보탑을 쌓는 그 공보다는 훨씬 많느니라 말씀하신 것이 그겁니다. 왜 그러느냐. 우리의 본래 소식은, 본래의 진짜 나는,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그 자리거든요. 바로 그 자리가 정정이거든요. 바로 그 자리가 성태거든요. 우리 중생들은 뭣이냐 할 테면 말이죠 부처님이나 똑같은 그것이지만은, 우리는 숱한 번뇌 망상의 구름을 막 일으키고 있어요. 아 이건 좋다 저건 나쁘다 이래해야 되겠다 저래해야 되겠다. 조금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이래해야 된다는 불견을 일으켜. 저래해야 된다는 법견을 일으켜. 이래놓으니 허공은 하나같은 허공인데 그만 거기에 시커먼 구름이 꽉 끼어서 허공이 안 돼. 이와 마찬가집니다.

그러하니 본래 여러분들은 정정자립니다. 바로 거룩한 태의 자리라. 본래로부터. 원래 해말쑥한 그 자리에요. 원래 여러분들이 해말쑥한 그 자리기 때문에 이 자체성이 없는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눈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뭘 보기도 하고 귀라는 기관을 통해서 뭘 듣기도 하고 혓바닥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말도 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하니 눈 자체가 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들이 잘 아셔. 거울의 역할밖에 안 하거든. 귀 자체가 듣는 것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들이 아셔. 마이크 역할밖에 하는 거 아니거든요. 마이크 자체는 모릅니다. 뭘 모릅니다.

그와 마찬가지거든요. 혓바닥, 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라. 혓바닥 이거 자체성이 없는 것이거든요. 이런 도리를 알아. 이런 도리를 알아버리면은 아 그렇구나. 모든 것이 다 한 여김 일으켜서 먹구름을 일으키듯이 이렇게 해서 그만 하늘을 덮는 거나 한가지구나. 이렇게 턱 알아버리면은 먹구름이 그만 없어져 버립니다. 어느 사이에 없어졌는지 몰라요. 아이고 이런 번뇌 망상들 이거 없애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질 필요가 하나도 없어요.

만약 내가 '번뇌 망상을 없애버리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은 번뇌 망상을 없애겠다는 요 마음 요것도 번뇌라요. 그러니까 번뇌 하나를 더 짊어지는 거나 한가지라. 그러니 여러분들이 공부를 지어가는데 망상이 오거든 망상 그대로 받아 버려요. 응 니 왔드나 이 정도로 해서 관심을 더 가지지 말아요. 내가 번뇌가 일어나. 아 니가 번뇌가 왔드나 이런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니는 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차차차차 번뇌 망상의 당처가 빈 줄도 알 뿐 아니라, 그대로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내의 성품자리가 환하게 드러납니다. 요것이 정정입니다. 그러하니 정정이 돼야 도력이 인자 발동을 하는 겁니다.

여기서 도력은 무엇을 뜻하는 거냐. 도의 힘, 도력(道力)인데. 그런데 이거는 제이의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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