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漢岩) 선사의 편지 〈20〉·끝

경봉鏡峰스님에게 답하는 편지 2통
 

〈1〉
삼가 편지를 받고서 요즈음 법체가 만안(萬安)하심을 알았습니다. 우러러 위안이 되며 송축합니다. 나는 줄곧 칩거하고 있을 뿐입니다. 도홍(道洪) 수좌는 지난 가을에 원주 소임을 그만두고 떠났습니다.(해설-다음은 경봉 스님의 법거량에 대한 답이다).
운수 납자는 무엇으로 양식을 하느냐구요?--막(莫)
무슨 말로써 제접을 하느냐구요?-- 막(莫).
아우(경봉)도 가서 있을 처소가 있느냐구요?-- 막(莫).
이 세 개의 ‘막(莫)’ 가운데 하나의 막(莫)은 하늘도 덮고 땅도 덮음이요(蓋天蓋地), 하나의 막(莫)은 밝은 달 맑은 바람(明月淸風)이며, 하나의 막(莫)은 산이 높고 물이 흐름(高山流水)이니, 이 소식을 아신다면 버들 꽃을 잡고 버들 꽃을 잡음(摘楊花摘楊花)이 올시다. 이만 줄이고 답서의 예(禮)를 갖추지 않습니다.
을해(1935년) 4월 초5일
한암 배사(拜謝)

쓸데없는 알음알이 피우지 말것
공안 ‘적양화…’… 무애자재

 

경봉 스님이 세 가지 법거량에 대하여 한암선사는 모두 ‘막(莫)’ 자를 써서 답하고 있다. ‘막(莫)’은 금지사이다. 즉 쓸데없는 알음알이는 피우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막(莫)’ 자를 써서 답하고는 다시 부연설명을 하고 있는데, “세 개의 ‘莫’ 가운데 一莫은 천지를 덮고(蓋天蓋地), 一莫은 밝은 달 맑은 바람(明月淸風)이며, 一莫은 산 높고 물 흐름(高山流水)이니, 만일 이 소식을 아신다면 ‘적양화 적영화(摘楊花 摘楊花)’, 버들 꽃을 잡고 버들 꽃을 잡다)”라고 말하고 있다.
적양화 적양화는 조주(趙州)선사의 공안이다. 어떤 납자가 조주선사에게 하직을 고하자 조주 스님이 “부처님 계신 곳에도 머무르지 말고, 부처님 안 계신 곳은 빨리 지나가서 3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잘못 이야기하지 말라.” 하였다. 그 납자가 “그러면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니, 조주선사가 “적양화 적양화(摘楊花 摘楊花)”라고 한 것이다. 버들 꽃(楊花)은 봄바람에 날아다니는 수양버들의 솜(柳絮)을 가리킨다. 옛날 중국에는 봄이 되면 어린 아이들이 봄바람에 날아다니는 버들 솜(柳絮)을 잡는 재미,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적양화란 자유자재함, 무심(無心)함, 무애자재(無碍自在)함, 무속박(無束縛)을 뜻한다고 보여 진다.

〈2〉
오래 그립던 차에 서찰을 보내주시니 어둠 속에서 밝은 촛불과도 같았습니다.(생략)
세 가지 법거량 대하여 답하겠습니다. 하늘을 찌르는 기상[衝天氣]에 두 가지가 있는데, 사(邪)와 정(正)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사(邪)인가? 장부가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기상이 있으니, 불조(佛祖)가 간 길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정(正)인가? 장부가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기상이 있으니, 불조(佛祖)가 간 길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나에게 묻기를, “그대가 오히려 사(邪)와 (正)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하면, 나는 “내가 걸렸는가, 네가 걸렸는가.”라고 말하겠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물음은 첫 번째의 물음 중의 소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번거롭게 말씀드릴 필요가 없사옵니다. 모쪼록 자세히 살피십시오. 답서(答書)의 예(禮)를 갖추지 않습니다.
음 2월 25일 (1929년)
한암(漢岩)

‘사’와 ‘정’ 분별심 관문 제시
첫번째 답속에 둘째 셋째 답도


이 편지 역시 경봉스님에게 보낸 답서이다. 경봉스님의 법거량에 대하여 한암선사는, 하늘을 찌르는 기상[衝天氣]에는 사(邪)와 정(正) 두 가지가 있다고 구분해 놓고는, 답은 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똑같은 답을 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모순인 것 같지만, 그러나 이것은 모순이 아니고 ‘사(邪)와 정(正)’이라고 하는 관문(關門), 즉 분별심의 관문을 제시하여 그 관문을 통과해 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함정의 관문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첫 번째 답 속에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