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5〉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

총 우물칸 수는 정사각형 214칸
웅장함과 섬세함 갖춘 바로크 요소

문양은 궁구한 무진장 진리 상징
나선형 표현 변환에너지 그 자체

위의 4컷은 범어사 대웅전 천정에 베푼 대표적인 문양이다. 아래는 중앙과 빗반자에 장엄된 우물천정이다.
범어사 대웅전 우물천정 전형

 

부산의 진산은 금정산(金井山-801m)이다. 산마루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 물이 가득차 있는 금샘이 있다. 금샘은 ‘금빛 우물’이다. 그 샘에 범천에서 내려온 금빛의 하늘 물고기가 산다. 범천에서 내려온 물고기니 ‘범어(梵魚)’다. 금정산 범어사는 ‘금샘을 유영하는 범어의 집’이다.

범어사 대웅전 천정엔 하늘의 우물, 금정(金井)이 사방연속으로 경영되어 있다. 금정산 범어사에 깃든 설화를 자내증으로 내보이듯 전형화된 우물천정의 규범을 보여준다. 범어사 천정은 한국의 사찰천정이 갖는 독특한 짜임과 구조, 경영방식 등에서 전형적인 아름다움, 또는 완결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그것은 한국의 석탑양식이 불국사 삼층석탑 석가탑으로 귀납된 것과 같은 이치다. 우물천정의 조영에서 구조적으로, 의장적으로 최적화되어 거의 완결적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웅전 내부로 들어서면 고전의 규범이 지니는 두터운 신뢰감과 거룩함이 충만하고, 고요의 무게가 묵직하다. 천정은 궁륭의 형태로 깊고 나선형의 은하처럼 빛난다.

범어사 대웅전은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중건된 조선중기 건축이다. 홍보스님이 주관하고, 도편수와 화원 모두 전적으로 승인공장(僧人工匠)에 의한, 스님들의 손으로 조영된 건물이다. 목조건축의 바탕이 되는 초석과 석축들은 광해군 6년 (1614년) 건립 당시의 것으로 알려진다. 1900년대 초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고적도보〉 제 13권에 실린 범어사 대웅전 내부단청을 보면 지금의 내부단청을 보듯 고색창연하다. 그 점을 미뤄볼 때 대웅전 내부장엄의 빛은 300년에 이르는 고전의 빛임을 짐작할 수 있다.

구조미와 의장미 두루 갖춰

범어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방형 건물이다. 서까래를 받치는 공포구조는 다포계양식인데, 지붕은 맞배지붕이라 특이하다. 내부천정은 빗반자와 우물천정을 결합한 양식이다. 그런데 빗반자도 널판으로 짜맞춘 것이 아니라, 격자칸으로 짜맞춘 우물천정이라 주목된다. 마치 범어가 유영하는 금샘의 금정(金井)세계를 의도라도 한듯 천정전체가 온통 우물칸이다. 절집의 천정 중에서 우물칸이 가장 조밀한 밀도로 경영된 셈이고, 구조적으로도 벽돌을 쌓아나가듯 흐트러짐 없이 치밀하게 결구한 까닭에 조영의 구조미와 의장미가 돋보인다.

사찰불전의 3×3칸의 전형적인 공간에 작정하고 의도한 듯한 대범함과 섬세함이 두드러진다. 중세적 신성공간의 거룩함을 장엄하기 위해 다양한 의장장치들을 대범하게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불단, 닫집, 천정장엄에서 기념비적 굵직굵직한 양감과 섬세한 조형이 돋보인다. 그것은 같은 시기 중세서양의 바로크 양식과 일정한 궤를 같이한다. 범어사 대웅전은 17, 18세기 한국사찰건축의 내부장엄에서 웅장함과 섬세함을 갖춘 바로크적인 요소를 가장 극적으로 경영하였다고 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그것은 숭유억불의 정치이념체제에서 불교내부의 힘, 즉 승인공장(僧人工匠) 스님들의 힘으로 일꾼 거룩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대웅전 내부공간을 조영해나간 큰 틀은 높이를 추구하면서 공간을 중앙집중적으로 좁혀나가는 방식이다. 공간을 중앙으로 결집시키는 방도로는 두 가지 건축장치를 이용하고 있다. 하나는 4단의 내출목을 이용해서 고구려 벽화고분의 천정구조처럼 안으로 평행들여쌓기를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빗반자를 이용해서 중앙으로 공간을 집결시키는 방식이다. 빗반자로 사방에서 결집시킨 공간은 가로로 긴 장방형을 이루는데, 그 공간을 다시 30cm정도로 위로 밀어올려 바닥과 평행한 감실을 마련했다. 마루바닥에서 보면 건축의 공간위상은 수직(기둥높이)쭭평행들여쌓기(내4출목)쭭수직(약 60cm)쭭평행천정(우물칸 2칸폭)쭭빗반자쭭수직(약 30cm)쭭평행감실 순으로 마감되고 있다. 공간운용에서 다채로운 변화와 역동성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범어사 대웅전 천정장엄. 천정장엄 결구방식을 두루 살필 수 있다.
장대한 힘과 숭고한 아름다움 돋보여

그렇게 역동적인 힘의 방향으로 결구된 구조체들은 빛을 거르는 체로 작용해서 대웅전 내부는 어둠과 밝음이 먹의 농담처럼 미묘하게 어우러지고 풀어진다. 빛의 차별적 농담은 두터운 깊이로 적막과 고요를 불러내서 인간의 내면을 침잠케 한다. 결국 공간의 깊이는 종교적 거룩함의 깊이에 다름아니다. 공간의 깊이와 높이는 종교건축장엄이 지향하는 비가역적인 숙명적 전개다. 깊이와 높이는 조형미술을 통한 서사와 색채의 옷을 입고서 마침내 거룩한 생명력의 힘을 갖춘다. 수직의 벽면에는 약사삼존불과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해서 시방삼세에 나투시는 여래를 빠짐없이 표현하였고, 모든 수평면의 천정에는 칸칸이 우물천정을 경영하였다. 그 장엄들은 빛과 어둠에 미묘하게 풀어져서 때론 드러나고, 때론 잠기면서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범어사 대웅전은 장대한 힘과 숭고한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국보급 화엄의 건축이라 할 것이다.

후불벽 뒤 천정에는 구름과 별자리

천정에 경영된 총 우물칸 수는 정사각형 우물칸이 214칸이고, 빗반자 평면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자투리 영역을 채운 삼각형 반자가 16개다. 우물반자가 사용된 곳은 세 층위다. 4출목 위 앞뒤 벽면에 경영한 평행반자는 앞 뒤 각각 48칸의 우물칸을 가설했다. 후불벽 뒷면 우물천정에는 해남 대흥사 응진전의 천정벽화처럼 구름 사이에 별자리를 그려 넣어 천정장엄의 세계가 우주적 생명력의 세계임을 밝히고 있다. 이 층위에 베푼 대표적인 문양은 단청용어로 소위 ‘고리줏대솟을금문’이라 부르는 육각형 사방연속문양이다. 우물칸 테두리 조형에서 붉은 생명의 새싹이 뻗치는 가운데 육각형의 빛줄기가 퍼져나간다. 육각형의 한가운데는 둥근 붉은 빛이 있고, 흰 글씨로 범자 卍자와 ‘옴’, ‘훔’ 등을 새겼다. 만유의 진리법은 연기법이다. 진리법의 처음과 끝이 만유에 두루 미치는 빛임을 조형언어로 드러내고 있는데, 관념은 깊어질대로 깊어져 기하적 추상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단청에서는 저토록 핵심적인 가운데 범자를 생략해버리고 기하적 문양만 단청한다. 본질을 버리고 현상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달은 취하지 않고 손가락만 그리고 있는 것과 같다. 300년 동안 간직해온 고전의 빛 속에는 문양의 본질을 여전히 직지하고 있다. 그 문양의 직지들은 불립문자로 전하는 진법묘유의 다라니이다. 게송의 환희심으로 가득한, 궁구한 진리들의 무진장이다.

장대한 닫집과 우물천정
빗반자 베푼 문양은 여섯잎 연꽃

두 칸 폭의 평행반자 위에는 빗반자를 가설했다. 보통 빗반자는 널판자로 짜맞추고, 조성된 넓은 빗반자의 판벽 위에는 공양비천 또는 주악비천 벽화를 베푸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륙사 대웅전이라든지, 김룡사 대웅전, 범어사 팔상전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범어사 대웅전의 빗반자는 드물게도 우물천정이다. 전후좌우에 조성된 빗반자의 우물칸 수는 정사각형 우물칸이 66칸이고, 자투리를 채운 삼각형 반자가 16개다.

빗반자에 베푼 문양은 여섯잎 연꽃문양이다. 여섯 꽃잎에는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을 새겨 부처님의 대자대비의 감로수를 표징하고 있다. 꽃잎에 새긴 범어의 빛은 그라데이션 기법으로 파장의 빛으로 퍼져나간다. 문양에 입힌 색채는 중후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검정과 녹청, 주사, 황토빛에 시간의 더께가 어우러진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빛이다.

격자마다에는 활짝 핀 연꽃, 모란, 국화문양의 조형을 얹었다. 비단에 꽃을 얹는, 금상첨화의 형국이다. 특히 하얀 꽃은 화룡점정의 일순을 보는듯,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갖게한다. 무심하게 공간 한 편에 던져놓은 듯한 한 송이 하얀꽃은 음악의 스타카토 기법처럼 또렷하고도 선연하다.

상층 중앙의 우물칸 수는 52칸이다. 중앙칸의 문양은 나선형의 넝쿨문양이다. 나선형의 기하학은 제행무상의 동역학적 변화를 상징하며, 변환의 에너지 그 자체다. 각각의 순환문양은 완벽에 가까운 균형과 조화로움을 보인다. 채색원리는 붉은 주사로 바탕을 마감한 후, 나선형으로 돌돌 감아나가는 넝쿨에 청백색을 두텁게 입혔다. 넝쿨에 입힌 청백색 안료에서 금으로 바꾸려는 납의 연금술적 질감이 느껴진다. 지상에 떨어진 운석처럼 채색에서 신비감이 흐르고, 몇 몇 꽃잎에서 금니의 흔적이 역력하다. 금빛의 우물, 금정(金井)에 피어난 꽃이다. 꽃은 금샘에 유영하는 범어(梵魚)처럼 나선으로 순환한다. 고도로 관념화 되고 이상화 된 화엄의 꽃이다.

금은 변화의 엔트로피를 갖지않는 유일한 금속이다. 시간의 잠식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고유한 빛의 항구성을 지닌다. 무량수의 빛이다. 부처님의 대자대비도 결코 마르거나 다함이 없는 감로수이고 빛이다. 그 마르지 않는 감로수로 대웅전 천정은 생명력과 환희심으로 충만하다. 생명의 범어가 유영하던 금빛 샘물이 천정에 가득하다.

범어사 대웅전 불전을 조영한 스님들은 탁월한 기량으로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아름다움을 여여히 보여주기로 작정했음이 분명하다. 케플러는 말했다. “자연은 가능한 한 최소의 재료만을 사용한다”고. 300년전 승인공장 스님들은 나무와 흙의 최소한의 질료들로 진공묘유의 연화장세계를 조영했다. 범어사 대웅전 천정(天井)에 금정(金井)이 있다. 금정은 대생명력의 ‘하늘우물’일 것이다.

범어사 대웅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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