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5 보개회향

행동으로 과오 범할 때

‘차계’(遮戒)라고 하고

마음으로 지은 죄를

성계(性戒)라고 한다.

십악업을 극복해 나가고

참(慘)을 행해 바로 잡으면

십선업이라고 한다. 

 

11. 보위사승부모급선지식법계중생단제삼장동득왕생아미타불국귀명참회

(普爲師僧父母及善知識法界中生斷除三障同得往生阿彌陀佛國歸命懺悔)

 

至心懺悔

南無懺悔十方佛 願滅一切諸罪根

今將久近所修善 廻作自他安樂因

恒願一切臨終時 勝綠勝境悉現前

願覩彌陀大悲主 觀音勢至十方尊

仰願神光蒙授手 乘佛本願生彼國

至心歸命阿彌陀佛 懺悔廻向發願已

 

이제까지는 보현십원(普賢十願)이었고 이것은 별원(別願)이다. 특별히 원을 세우고 참회한다는 뜻이다. 보현십원은 보통 일반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별원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분들, 널리 스승님과 부모님과 우리에게 좋은 지식을 일러주는 모든 선각자와 지도자들 즉 선지식(善知識)과 모든 사람들, 우리에게 직접 간접으로 은혜를 베풀어 준 이런 분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들 자신이 탐진치(貪瞋癡)의 삼장(三障)을 끊어야겠고 또 동시에 그분들에게도 그 삼장이 끊어지도록 해 주십사, 하는 것이다. 같이 끊고 같이 저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계시는 나라로 가서 깨친 자의 생활을 함께 영위합시다 하는 것이다.

‘널리 스승인·부모님·선지식·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삼장을 끊어지게 하시고 함께 아미타불의 나라로 가게 하소서. 목숨을 돌이켜 반성합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대사회 의식을 깨닫고 그런 생활을 함께 영위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목숨을 돌이켜 모든 지난 일을 참회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반성한다.

그런데 이 참회(懺悔) 두 자를 풀이한다면 참(懺)은 먼저 제 잘못을 드러내어, 나는 무엇 무엇을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고친다는 것은 참이고,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 각별히 그리 안 하도록 수행을 닦아 나가자는 것이 회(悔)다. 범어(梵語)로는 참회를 참마(懺摩 Chamma)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회개한다, 과실을 뉘우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회향(廻向)과 신심(信心)을 얘기하며 참회를 들먹였지만 여기서도 다시 지심참회(至心懺悔)를 하여 근수이익(勤修利益)한다. 부지런히 닦아서 이익을 가져온다. 어떤 이익인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올바른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래(如來)의 깊은 경계에 찾아 들고자 한다면 먼저 그릇된 신앙(邪信)이 아닌 바른 믿음(正信)을 가져야 한다. 중생들이 바른 믿음을 갖는 법은 무엇보다도 바른 믿음을 구해야 되고, 이를 구하는 데는 첫째 허약한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글쎄 어떻게 내가 그런 것이 되어질까, 이런 의구심이 생긴다. 지밋하고,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 결정이 안 되어 허둥지둥해져 버린다. 이래서 더욱 구애되는 것이 많아지고 또 여러 가지 여의치 않은 조건에 얽매이게 된다. 인간고(人間苦)에 허덕이는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우리는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하지만 과연 이런 지경에서 부처님을 만나게 될 수 있을까? 무슨 복으로 우리가 부처님의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 생각으로 우리는 지레 실망해 버리고 의욕을 포기하여 타락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행동으로 어떤 과오를 범하였을 때 이를 차계(遮戒)라고 한다. 누구를 쳤다든지, 훔쳤다든지, 간음을 했다든지 하여튼 뚜렷한 결과로 나타난 이 차계에 대해서는 각기 정해진 멸죄법에 따라 참회한다. 행동화되기 이전의 마음으로 어떤 모진 생각을 하였다든지, 누구에게 원한을 품었다든지 누구를 헤치려고 별렀다든지 하는 등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수가 있다. 이를 성계(性戒)라고 하는데 이를테면 자기의 천성(天性)에 심성에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다스리는데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첫째는 사참(事懺), 둘째는 이참(理懺)이라 하는 것이 있다.

사참은 방등불명경(方等佛名經)에 있는 말인데 일체의 만 가지 행동을 통해 다시는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이 일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각기 생각의 성징에 따라 연비를 한다든지, 팔을 뜬다든지, 보상하기 위해 벌을 받는다든지 하여 자제한다.

이참은 유마경(維摩經)에 있는 말로 제성(諸性)은 본래부터 안과 겉으로서, 그러니까 내용(內容)과 외형(外形)으로 그 자체(自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가 사리에 비추어 판단하여 뚫고 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차계와 성계를 들었지만, 성계에는 술이 든다. 술을 마시면 정신을 흐리게 하여 심성을 어지러뜨린다. 심성이 어지러우면 일체 만 가지가 혼란되어, 거짓말도 하게 되고, 싸움도 하고, 음란해 지고, 온갖 잡스러운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오계(五戒) 가운데 술은 성계에 들고 살(殺)·도(盜)·음(淫)·망(妄) 모두 차계(遮戒)에 들어간다. 죄(罪)의 성질은 계(戒)와 대비해보면 곧 알 수 있다.

업(業)의 성질을 잘 살펴 보건데 이것이 십방에서 온 것이 아니라 마음을 놓아, 방심(放心)하는데서 전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물고 거처하는 그런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주착이나 체색(滯塞)이 없도록, 그런데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참이다. 그리고 사참은 사건 하나 하나에 즉응하여 그 업장을 제거하는 일. 이참은 뿌리째 뽑아 없애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참(懺)이 잘되도록 하는 일은 결국 열 가지 나쁜 생각, 십악업(十惡業)을 극복해 나가게 한다. 살생·도둑질·음탕한 짓·거짓부렁·술을 먹는 것 등 오계(五戒)인데 이를 부연하여 몸으로 하는 짓, 살·도·음·망(殺盜淫妄), 입으로 네가지(綺語·兩舌·妄語·惡口), 뜻으로 탐·진·치 (貪瞋癡)등 모두 열 가지다. 이 열 가지 어긋나는 짓을 바로잡는 일을 십선업(十善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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