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下

산사에서 세속의 먼지 씻기

▲ 화엄사 일주문과 단풍. 우체통과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다.
황현의 ‘약속대로 해학과 함께 화엄사에 가다[赴海鶴華寺之約] 라는 제목의 칠언율시 두 번째 수는 시각과 청각을 총동원하여 화엄사를 느끼게 한다.

 

봉봉류수쇄춘성(蓬蓬流水碎春星)

환패종쟁갱가청(環佩琮更可聽)

화하문승미빈백(花下問僧眉?白)

산중견조우모청(山中見鳥羽毛靑)

흥란주찰빈투현(興?酒札頻投縣)

음고혜성구재정(吟苦鞋聲久在庭)

회수오갱종락처(回首五更鐘落處)

영원도사불증경(靈源都似不曾經)

 

출출 흐르는 시냇물에 봄밤 별빛 부서져라

쟁글쟁글 패옥 소리를 다시 들을 만하네.

꽃 아래서 스님 만나니 눈썹 귀밑털 희고

산중에서 새를 보니 새의 깃털은 푸르구나.

흥 무르녹자 술 받으러 자주 읍내 보내고

괴로이 읊어라 뜰엔 신 끄는 소리 들리네.

새벽 종소리 울리는 곳에 머리 돌리니

별천지가 온통 일찍이 못 보던 곳 같구려.

 

화엄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속진을 씻어내는 일에 몰두하는 황현의 마음이 두 수의 시를 통해 가감 없이 전해진다. 앞에서는 절의 풍경을 통해 무상감을 느꼈지만 뒤의 수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흥을 통해 인간세상의 시름을 잊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출출 흐르는 시냇물과 별빛, 패옥소리, 꽃, 흰 귀밑털, 새, 푸른 깃털 등의 원색적이고 감각적인 단어들이 최대한 동원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흥이 무르익은 봄밤의 정취도 새벽종소리를 통해 정신을 차리게 한다. 바야흐로 새벽종소리 울리는 절집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로 보이는 것이다.

매천이 50세가 되던 해에 지은 시에 다시 화엄사가 등장한다. 중앙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구례에서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던 시절이다. 〈매천집〉 제4권에 전하는 시의 제목은 ‘저녁에 화엄사에 들르다[暮投華嚴寺]’이다.

 

노흑난분백안천(路黑難分百眼泉)

수초요견탑등현(樹梢遙見塔燈懸)

음음류벽경비서(陰陰溜壁驚飛鼠)

알알계림기단선(??溪林記斷蟬)

전의청소쌍각올(殿倚晴?雙角兀)

산함만월반규원(山含滿月半規圓)

일정상원등라외(一程尙遠藤蘿外)

차입동료차탑면(且入東寮借榻眠)

 

캄캄한 길 백안천을 구분하기 어려운데

나무 끝 걸린 탑등 멀리서 보이네.

축축하게 젖은 벽에선 날다람쥐에 놀라고

콸콸대는 시내 숲에선

끊어진 매미 소리 떠올리네.

전각은 갠 하늘에 솟아

지붕 양끝이 우뚝하고

산은 만월을 가려 반쯤 둥글어 보이네.

등라 저 너머로 갈 길이 아직 멀어

우선 동쪽 요사에서 침상 빌려 잠드네.

 

시의 말미에 ‘봉천(鳳泉)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밤이 깊어서 승당에서 머물렀다’라는 첨언이 한 줄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곳으로 가는 길에 잘 곳을 찾아 화엄사에 들린 듯하다. 이 시는 37세 때 쓴 시와는 달리 매우 관조적인 자세가 드러난다.

수련의 ‘백안천’은 눈물이 솟구치는 샘 즉 눈을 뜻한다. 저무는 길에 사방 분간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로 시를 시작하고 있는데 멀리 탑등이 보여 절집으로 가는 방향이 잡힌 정황이다. 그래서 절에 이르는 동안 다람쥐를 만나고 매미울음소리를 기억하는 등 자연과 하나 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시의 후반부에서는 이미 절에 당도하여 달 빛 아래 고즈넉한 산사를 묘사하고 있는데 등라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갈 길 멀어 우선 화엄사에서 머무는 정황도 담담히 그려내며 시를 맺는다. 여기 등장하는 등라는 ‘산 위에 있는 절’이라는 뜻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등라 저 너머에 절이 분명히 있을 텐데, 아무래도 깜깜해야 꼭대기까지 오르겠군〔諸天合在藤蘿外 昏黑應須到上頭〕”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추사 김정희가 본 화엄사 풍경

황현보다 앞 시대를 살았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문집에는 화엄사와 관련된 칠언절구 한 수가 보인다. 〈완당전집(阮堂全集)〉 제10권에 나오는 시의 제목은 ‘화엄사에서 돌아오는 길에[華嚴寺歸路]’이다.

 

불만추산영취미(佛?秋山映翠微)

수전백첩학승의(水田百疊學僧衣)

종성욕단사양원(鐘聲欲斷斜陽遠)

천점한아일객귀(千點寒鴉一客歸)

 

부처 머리 가을 산에 푸른 안개 비치는데

백첩이라 수전은 스님들의 옷을 배웠구려.

종소리 끊기는데 석양은 아슬하고

천 점의 갈가마귀 외론 길손 돌아가네.

 

전반부에 시인의 눈에 비친 화엄사는 매우 찬란하게 묘사되고 있다. 가을 산의 울긋불긋한 모습이 부처님의 머리 즉 화려한 장식으로 장엄된 화관에 비유되고 있다. 그렇게 화려한 산에 안개가 비치어 더욱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내는 것인데, 곡식이 익은 논은 스님들의 옷자락처럼 백 겹으로 펼쳐져 일렁이고 있다고 그려내고 있다. 절창이다.

종소리 끊어지는 석양 무렵, 시간은 아득하게 느껴지고 하늘 가득 나는 갈가마귀는 돌아가는 외로운 길손을 더욱 외롭게 만들고 있다. 물경(物景)에 빗대어진 사람의 심사가 매우 서정적이지만 그 속에는 중생의 근원적인 고독이 묻어 있다.

모름지기 시란, 사물에 빗대어 사람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더러는 풍경 속에서 더러는 이치 속에서 무상한 인간의 존재감을 확인하는데 시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한편의 시로 화엄세상을 드러내려는 시인의 마음도 화엄세상의 한조각 구름 일 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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