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3〉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

중앙 점점 좁아지는 궁륭형 천정
시문된 문양 7가지 모티브 갖춰
도상은 자기복제 및 순환과정 암시
범자와 학, 꽃씨방 등 세 곳 금니 입혀

미황사 대웅보전 천정문양을 재배열한 사진. 첫 행의 학에 입힌 금니기술은 연금술을 연상하고, 둘째 행에 나오는 연꽃문양의 변화는 ‘개(開)→시(示)→오(悟)→입(入)’의 일승법의 원리를 보여준다. 셋째 행은 천정의 중앙칸에 장엄된 범자문양 30칸 중 부분이다.
천불출현지지의 정토

‘달마산 미황사 사적비명’(1692년)에 미황사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사적비에 따르면 우전국(인도)에서 바다를 통해 해남 땅끝에 닿은 배 한 척이 여러 경전과 함께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40성중, 53선지식, 16나한 등의 탱화를 싣고 와서 법등을 전하니, 그곳이 달마산 미황사다. 그 때가 신라 경덕왕 8년, 서기 749년인데, 전법의 반야용선이 닿은 날에 달마산 사자봉 정상엔 일만의 부처님이 나투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미황사 가람은 부처와 뭇 나한성중, 선지식께서 내영하신 청정가람이며, 반야용선이 닿은 정토이고. 일만의 부처께서 출현하시는 불국토이자 ‘천불출현지지(千佛出現之地)’인 셈이다.

미황사 가람의 중심엔 대웅보전이 있다. 대웅보전은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에 중건되고, 다시 1754년에 중수된 목조건축이다. 건축과 장엄에 250여년의 내력이 담겨있다. 대웅보전의 외부장엄이 빛과 비바람에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무소유의 경지라면, 내부장엄은 색채와 문양, 천불벽화의 만다라다. 어둠은 빛을 품어 자신의 내부에 깃든 무명(無明)을 밝히고, 빛은 채도를 비워 내부로 침잠하는 사찰건축의 윤리적 덕목이 읽혀진다.

빗반자 가설한 천정구조 시선 끌어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방형 건물이다. 기둥의 평방 위에 4출목의 포작을 올려 공간의 깊이를 확장한 후, 그 포작 위에 약 60cm 정도 높이의 흙벽과 판벽을 되올리고는 우물천정을 경영했다. 천정은 다시 높이를 확장하기 위해 사방 벽에서 비스듬히 반자를 밀어올려 빗반자를 가설하고, 빗반자 위 중앙 칸의 천정에 바닥과 평행인 평면반자를 올려 천정구조를 마감했다. 그런 까닭에 내부공간은 중앙 상부 칸으로 점점 좁아지고 깊어지는 궁륭형 천정을 연상시킨다. 대웅보전 내부로 들어서면 저절로 시선이 중앙칸 상부공간으로 향하는 것은 그러한 천정구조 때문이다.

게다가 천정에는 다양한 문양과 다채로운 빛이 베풀어져 있어 천정공간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에 연방 매료된다. 삼존불을 배관하고 고개들어 천정을 둘러보면 그때서야 왜 미황사 대웅보전 천정에 건축공학적, 예술적 역량을 쏟아부었는지 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다. 천불출현지지 희유의 천불벽화가 구현되어 있는 까닭이다.

빗반자로 구현한 궁륭형 천정과 천불도
천불도 벽화는 국내 유일무이한 미증유

중국 돈황의 천불동 벽화가 따로 없고, 인도 아잔타석굴 천불벽화가 따로 없다. 경주 남산의 불국토가,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이, 구례 화엄사 구층암의 천불상이 미황사 대웅보전에 벽화형태로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대웅전 안에 조성된 천불벽화이니 중중무진의 불국토를 경영한 셈이다. 이것은 한국불교미술에서 천불도 벽화로 현존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미증유의 사례다. 인근의 강진 백련사 대웅전에 그와 같은 조형이 개략화 되어 조영되어 있을 뿐이다.

미황사 대웅보전 천정문양은 수리적 작도만큼 엄격한 좌우대칭의 구도를 갖추고 있다. 중앙칸에 부처님과 범자문이 있다. 문양을 베푼 우물반자의 총 칸수는 177칸이다. 네 모서리에 5×3칸씩, 어칸 빗반자에 9×3칸, 양측면 빗반자에 3×6칸씩, 중앙 평반자에 금니로 베푼 범자문 6×5칸, 그 양측면의 백학, 모란문양 2×6칸씩 해서 총 177칸이다. 내부장엄의 색조는 수묵담채처럼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움이 넘친다. 천정하부 공포가구가 담록색이라면, 천정면은 연지와 노랑 금빛이 주류를 이룬다. 연한 녹청과 자주빛이 보색의 효과를 이끈다.

엄격한 좌우대칭 구도와 프랙탈 기하학

시문된 문양은 총 일곱 가지 모티브를 갖고 있다. 연꽃, 모란, 학, 범자에서 모티브를 취하고 있다. 하나 하나의 문양 모티브들은 프랙탈 기하학처럼 반복해서 표현된다. 반복을 통해서 문양은 확장되고 심화되어 조형언어로서 고유한 뜻과 상징체계를 창조한다. 그 때의 연꽃은 늪에서 길러 올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신심에서 길러 올린 처염상정의 불보살이다.

그런데 네 모서리마다 5×3칸씩 조영(造營)한 연꽃문양은 다섯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경영하고 있어 주목된다. 찬찬히 살펴보면 고구려 벽화고분 강서대묘 널방벽화 중에 연꽃에서 보주가 화생하는 연속장면이 연상된다. 연꽃의 모티브에서 신령한 기운이 새싹처럼 뻗쳐나와서→ 보주, 잎이 나오고→중도의 연화좌가 생기고→절대경지인 텅 빈 공(空)으로 순환하는 구조다. 자기유사성을 가진 프랙탈 도형의 자기복제 및 순환과정을 보여주는 놀라운 도상이다.

개(開)→시(示)→오(悟)→입(入)의 일승법

이것은 석가모니 세존께서 어떤 인연으로 세간에 출현하시는가에 대해 설하신 <법화경>의 제2 방편품을 떠올리게 한다. 석가모니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세간에 나투셨는데, 그 이유는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고(開), 보여주고(示), 깨닫게 하여(悟), 중생이 무량삼매에 들어가기(入) 위함이시다. 순환하는 연꽃문양 도상은 바로 그 ‘개(開)→시(示)→오(悟)→입(入)’의 근기에 따른 일승법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미술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문양가치를 지닌다 할 것인데, 미술사에 문외한인 한 개인의 오버이거나 넋두리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웅보전 천정법계의 소실점은 닫집이 있는 중앙칸에 위치한다. 중앙칸의 문양은 비구상적인 산스크리트어 범자다. 여섯자 오행의 범자 만다라다. 범자는 卍자처럼 그 자체가 문자이면서 조형적 상징을 지닌다. 경험세계인 색계너머의 절대적 진리, 여래를 상징한다. 30칸에 시문된 범자는 몇 겹의 원 속에 있는데, 원의 테두리는 붉은색과 초록색이 농담으로 풀어져 있다. 그것은 무명을 밝히는 빛, 곧 불변의 진리가 파동형식으로 확산되고 있음를 암시하고 있다. 금니의 빛은 무명, 곧 내 안의 무지와 미혹함을 밝히는 빛이다.

향우측 대량에 베푼 천불부처. 연보라빛과 옥빛의 색상이 다정다감하다.
연금술 구사하듯 화학적 치밀함 입힌 금니

금니의 금빛은 고려불화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수승한 외경에 입혀져 거룩한 신성을 부여하는 색채의 힘을 갖고 있다. 금니가 지닌 종교적 색채의 힘이다. 미황사 대웅보전 천정장엄에는 세 곳에 금니를 입혔다. 범자와 학, 그리고 관념화 된 꽃의 씨방 부분이다. 금니의 금빛은 <관무량수경>에서 비유해서 설하듯 ‘잠무강의 황금’으로도 견줄 수 없는 부처님의 광명이다. 곧 금니의 범자와 학과 꽃의 씨방은 불성이자 부처다. 특히 학에 입힌 금니채색은 단언하건대 금니를 입힌 벽화중 이 나라에서 최고의 예술적 품격을 지닌 것이라 자평한다. 금니 색채조영에 마치 연금술을 구사하듯 화학적 치밀함을 입히고 우아함마저 갖춘 까닭이다.
미황사 대웅보전에는 연기설화에서 전하는, 곧 달마산 사자봉에 나투신 일만 부처님을 대웅전에 증명이라도 하듯 희유의 천불벽화를 베풀어 ‘대웅전 속의 천불전’을 경영하고 있다.
부처님은 시방삼세에 시공을 초월하여 항하사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이 존재하신다. 그런데 <현겁경> 경전에 의하면 현겁의 시기에는 천 분의 부처께서 출현하신다. 고창 선운사 천불탱이나, 해남 대흥사 천불전, 김천 직지사 천불전 등은 그의 방편설로 경영한 탱화이자 불전일 터이다. 미황사는 반야용선의 배가 닿은 천불 인연의 땅이다.

행과 열 정형속에 구현한 만다라

천불 부처님은 대웅보전 대들보와 사방 공포 위 벽면 곳곳에 모셨다. 천불의 도상은 일반적으로 행(行)과 열(列)의 정형 속에 규칙적으로 배열되는 경향이 있다. 대량생산과 자기유사성이 반복되는 일정한 모듈의 특성을 갖고 있다. 그에 따른 조형미술은 집단이 주는 거대한 공명의 파급력을 갖춘다. 만다라적 불국토가 현현하는 것이다.

공포 위 벽면의 부처님들은 구름 형상의 신령한 기운 속에 입상으로 나투시는데 반해, 대량 위의 부처께선 하얀 대연화좌에 저마다의 수인을 자내증으로 보이시며 결가부좌를 트시거나, 합장한 모습에 입상으로 나투신다. 부처님의 법의에 베푼 색조는 파스텔톤으로 더없이 부드러우며 상냥하다. 옥빛과 연한 보랏빛이 보색의 대비를 이루는 까닭에 천불벽화는 선연하고 맑다. 그 투명하고 청정한 색조로 인해 미황사 천불벽화는 우리로 하여금 미증유의 소중함을 각성시킨다. 배열과 군집의 밀도에서 밀고 당기고, 결집시키고 풀어낸 방식이 마치 학년별, 반별, 모둠별 기록으로 남은 졸업사진첩을 보는듯 하다.

불현전의 친근한 부처님 상호

벽화의 군집들은 조선민화의 병풍첩처럼 유기적이면서 독립적이다. 벽화 칸칸이 혼자로도 되고, 전체로도 예술작품이 된다. 그 예술성에 희소성, 역사성을 두루 갖춰고 있으니 나라의 보물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할 것이다. 천불 부처님의 표정들은 만면에 푸근함이 흘러 참으로 인자하신,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상호이시다. 고향 고샅에서 한번쯤은 뵌 듯한 향안이다. 중생이 부처임을 깨치는 ‘관상(觀想)’ 수행의 근기에 안성맞춤이다. 눈 앞에 나투신 불현전의 친근한 상호를 보고 내 안의 부처를 관(觀)하게 되는 것이다.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 보는 법이다.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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