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 선사의 편지 18회

“조사들의 활구 스승ㆍ벗 삼아야”
<서장><간화선결의론><절요> 추천
“문자보다 ‘활구’ 깨달아야”

경봉스님에게 답하는 편지
만약 일생(一生)의 일(깨닫는 일)을 원만, 구족하게 하고자 한다면, 옛 조사 선지식들이 말씀하신 방편적인 어구(語句)로써 스승과 벗을 삼아야 됩니다. 우리나라 보조국사께서는 일생토록 <육조단경(六祖壇經)>으로 스승을 삼고, <대혜서장>으로 벗을 삼았습니다.
조사의 언구 가운데서도 제일 중요한 책은 대혜선사의 <서장(書狀)>과 보조국사의 <절요(節要)>와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입니다. 이 어록들은 모두 다 활구법문이니,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고 수시로 점검해서 자기에게 돌리면 일생의 일은 거의 어긋남이 없을 것입니다. 나 또한 여기서 힘을 얻은 것이 있습니다.
또한 <서장>과 <간화결의론>과 <절요>의 끝 부분을 의지하여 활구(活句)를 참구 거각(擧覺)하는 것이 매우 좋고 매우 좋습니다. 나의 이 말이 비록 번다한 것 같지만, 그러나 나 역시 일찍이 헤매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나그네(수행자, 납자)의 심정을 잘 아는 것이니, 부디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일시적인 깨달음에 만족하여 깨달음 뒤에 더 닦음을 지속하지 않는다면, 영가(永嘉)스님이 말한 “모두 공(空)이라고 여기면서 인과(因果)를 무시하고 어지러이 방탕한 행동을 한 결과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이니, 절대로 식견이 얕은 자들이 잘못 알고서 떠드는 말을 믿지 마십시오. 편견에 사로잡혀서 인과와 죄복(罪福)을 무시하는 짓을 배우지 마십시오.
그리고 만일 활구(活句)를 깨닫지 못하고 다만 문자(文字)만 본다면 그 또한 의리(義理)에 걸려서 도무지 힘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또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 증상만인(增上慢人)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니 간절히 모름지기 뜻을 두소서.

무진(戊辰. 1928)년 3월 7일

이 편지는 1928년 3월 7일, 경봉스님에게 답한 편지이다.
내용은 만약 일생사(一生事, 깨닫는 일)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대혜선사의 <서장(書狀)>과 보조국사의 <절요(節要)>와 <간화결의론>이 활구법문이므로, 수시로 이 3-4가지의 어록을 참고한다면 일생의 일, 즉 깨달음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암선사 자신도 이 어록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만약 일시적인 깨달음에 만족한 나머지 오후(悟後)의 수행(修行) 즉 깨달은 뒤에 보임을 하지 않고, 또 모두 다 공(空)한 것이라고 하면서 인과를 무시하고 방탕하게 행동한다면 깨달은 것도 허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일체개공이요, 죄의 본성이 공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여색(女色) 등 막행막식을 하고 음주식육을 한다면 재앙을 초래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수행자로서 인생을 망치게 된다는 뜻이다. 즉 공(空)에 빠져서 파계를 일삼는 등 함부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불제자가 아니다. 부처님은 계율을 지키라고 했는데, 주색을 일삼는다면 그는 ‘마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이치도 모르고 공에 빠져서 주색잡기 등으로 불법(佛法)을 망친 선승이 한 둘이 아니다. 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또 활구를 참구하지 않고 문자(文字)만 본다면 의리(義理, 알음알이)에 걸려서 도무지 힘을 얻지 못하게 되며,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 증상만인(增上慢人, 아만. 즉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므로 간절히 모름지기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