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는 이에게’ 최장기(1000호) 연재 비결은?

▲ 묘공당 대행 선사(1927~2012)

“주인공에 놓고 맡겨라”
현대식 방하착, 대중용 방하착
법보시 동참 독자 600여명

‘현대불교’가 지령 1000호를 맞았다. 그 1000호 속에는 1994년 10월 15일자 창간호부터 1000호 까지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독자들과 함께 호흡한 1000회의 연재물이 있다. 대행 스님(1927~2012)의 법문 ‘길을 묻는 이에게’ 이다. 어느 매체에서도 보기드문 최장수 연재물이다. 그 이유와 비결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苦)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를 쉽고도 명쾌하게 일러주기 때문은 아닐까. 19년 9개월 동안 쌓아온 ‘현대불교’ 1000호의 공든탑 속에 봉안된 말씀의 사리, 마음공부의 새 지평을 연 ‘길을 묻는 이에게’를 다시 읽으며 살펴본다.

“현대불교신문을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불자입니다. 작년부터 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나 경을 읽을 때 까닭 없이 눈물이 쏟아집니다. 얼마 전엔 현대불교신문의 길을 묻는 이에게 지면을 보는 순간 그만 소리를 낼 정도로 흐느끼게 됐습니다. 무언가 제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에 거울을 보면서 제 모습에 절을 했습니다.”

“현대불교신문을 보고 매주 마음에 와 닿는 칼럼을 스크랩하는데 그 중 특히 대행 스님의 강설이 제게 유난히 강하고 울림이 느껴져 평소 따로 노트하고 밑줄 치는 등 간접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었습니다.” 〈현대불교 독자가 보내온 편지 中〉

‘길을 묻는 이에게’가 ‘장수 코너’인 만큼 독자의 반응도 가장 많다. 편지나 전화로 ‘덕분에 대행 스님 법문 잘 읽고 있다’는 감사 인사를 전해주는 독자들, ‘대행 스님의 법문을 많은 이웃들이 읽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군부대, 교도소, 병원, 복지단체 등 1290곳에 ‘현대불교’를 보내는 법보시에 동참하고 있는 독자가 600여 명이나 있다. 이밖에 독자들은 ‘길을 묻는 이에게’를 스크랩하고 사경하거나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을 갖기도 한다.
이처럼 ‘길을 묻는 이에게’ 애독자들의 신문 활용은 염불, 참선, 절 수행, 보시 등 다양한 불교 신행·수행활동과 견주어도 될 만큼 신행의 길잡이 몫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행 선사의 법문에는 무엇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하고 또 공부하는 것일까.

신문 스크랩·사경·공부모임 교재
창간호에 선보인 ‘길을 묻는 이에게’는 작은 코너였다. 대중이 질문하고 대행 스님이 고민의 해법을 간단히 그러나 명쾌하게 답해줬다.
독자의 호응도에 따라 지면은 점점 커져 1997년 10월 8일자 (145호)부터 전면 2페이지로 확대됐다. 그러면서 삽화도 등장했다. 최주현 화백이 한결같이 삽화그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인터뷰 B7면)
일부 독자들은 “스님의 법문을 누가 대필 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대행 스님의 법문은 정기법회, 담선 법회의 법문을 녹취해 토씨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하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길을 묻는 이에게’를 읽고 마음공부를 하고 자기를 들여다보고 수행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법어를 대중 법회에서 활용하는 이들도 있고, 글 쓰기에 출처 없이 인용하기도 했다.

▲ 2001년 동국대 정각원 초청대법회에서 '죽어야 나를 보리라'라는 주제로 대행 스님이 법문하고 있다.

인기 비결은 ‘삶이 곧 불법’
“지금 처한 당장의 경계부터 푹 쉬어 보십시오. 붙들고 씨름하는 것은 집착입니다. 선과 악, 좋은 것과 싫은 것에서 벗어나 푹 쉬어보세요. 지난날의 모든 업도 지금 이 순간의 내 속에 실려 있으니 지금 한 생각에 크게 놓는다면 그 모든 것을 다 비우는 셈이 됩니다. 그러다가 놓는다, 맡긴다 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놓아버리면 당신의 잠재 컴퓨터는 점점 짐이 가벼워져 결국은 텅 빈 듯 홀가분하게 될 것입니다.”
- 대행 선사 법문 中

대행 선사의 가르침은 어려운 한문 경전의 말씀이 아니다. 십수 년 산중고행을 겪으며 스스로 체득한 내면의 깨달음을 통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설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 그리고 학식의 유무를 떠나 누구나 쉽게 듣고 실천하고 수행할 수 있으며, 또한 일상생활 중에서 실참하고 실수(實修)해 봄으로써 바로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 살아있는 법설이다.
‘길을 묻는 이에게’에 게재되는 질문들은 ‘마음이 우울하고 불안해요’ ‘집안에 유전되는 병이 있어 걱정입니다’ ‘습을 녹이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진실하게 살면 되지 꼭 관(觀)을 해야 하나요’ 등 우리가 한번쯤은 생각해보고 겪어봤을 만한 고민들이다.
이러한 병고와 액난, 가족 간 불화 등 삶의 현장에서 어려움에 처할 때 대행 선사는 고(苦)를 고가 아니라 자신을 한 단계 진화 발전시키는 수행의 계기로 삼아 마음공부를 해 어려운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법을 펼쳤다.
즉 대행 선사의 법문은 종교가 따로 있고 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살아 있는 이 자체가 지극한 가르침이며 깨우침이어서 ‘삶이 곧 불법’임을 강조했다.

외국인들도 주인공 관법으로 힐링
21세기 현대인들은 삶의 방향과 좌표를 잃고 방황하며 정신적인 괴로움을 호소한다. 이 같은 이유로 상담심리와 명상이 최근 주목받기 시작했고, 틱 낫한 스님, 마티유 리카르 스님, 아잔 브람 스님, 텐진 팔모 스님, 순다라 삼장법사 스님, 존 카밧진 박사 등 스님과 서구의 명상전문가들이 대거 방한해 ‘힐링’과 ‘치유’에 동참할 때마다 대중이 몰렸다. 서양의 불교 명상책이 최근 몇 년간 쏟아지듯 우리말로 번역됐다. 힐링 바람을 타고 서양 명상이 역수입 된 것이다.

이런 현상 속에 대행 스님의 ‘길을 묻는 이에게’ 독자들은 그 가르침에 또 한 번 감탄하며 감사의 합장을 하고 있다. 세계에 일고 있는 서양의 명상보다 대행 스님의 한마음 관법 수행은 더 깊고 간단명료하다.
“자성불인 주인공(空)에 놓아라, 맡겨라.”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법을 쉽게 전할까, 고심한 대행 스님의 전법은 사성제·팔정도·자비실천(공생) 등을 ‘놓고 맡겨라’로 압축한다. 현대식 방하착(放下着), 선방 전용이 아닌 대중용 방하착이었다.

외국에서도 대행 스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이들이 많다.
‘길을 묻는 이에게’와 맥을 같이하는 법어집이 각국에 번역 소개되고 있다. (기사 B5면) 또 세계 곳곳의 한마음선원 지원을 비롯해 많은 외국인들이 서적을 통해 공부한다.
‘현대불교’는 대행 스님의 ‘말씀의 사리’가 법계에서 두루 ‘천수천안’으로 활용되길 바라면서 다시 ‘길을 묻는 이에게’ 1000호의 탑을 쌓는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