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선시 해설집 펴낸 향적 스님에게 듣는 禪詩 이야기

선시 어원은 가타… 唐代에 부흥
“선시는 격의·위의 갖춘 문학작품
현대인의 마음결을 곱게 한다”

선시를 문예적으로 쉽게 해설한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조계종출판사)>가 출간됐다. 올해 상반기 불교계 베스트셀러인 이 책의 저자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향적 스님이다. 향적 스님을 만나 선시의 요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왜 다시 선시가 주목을 받는지 들어봤다.

향적 스님은 “선시야말로 주제와 형식 양면에서 격의 위의(威儀)를 두루 갖춘 문학 작품”이라고 말했다. 향적 스님은 선시가 이 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선시는 속도 경쟁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의 마음 속 서정의 결을 곱게 한다”고 평가했다.

향적 스님은 가야산 해인사에 출가하여 교(敎)를 배우고 선(禪)을 참구했다. 월간지 〈해인(海印)〉을 창간하고, 초대 편집장을 지낸 후 프랑스로 건너가 가톨릭 수도원 삐에르-끼-비에서 불교와의 수행 방법을 비교하고 돌아왔다. 그 뒤, 해인사 성보박물관 초대 관장을 맡아 박물관을 개관하고,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 사장을 역임하며 불법 홍포를 위해 노력했다. 현재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소임을 맡고 있으며 가야산 해인사 지족암에 주석하고 있다.
詩 ‘말씀의 사원’, 禪詩 ‘정신적 사리’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를 어떤 연유로 쓰셨나요? 그리고 선시의 근원에 대해서도…
- 시인도, 선원장도 아닌 까닭에 감히 선시 해설집을 써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자 서문에 밝혔다시피 선시(禪詩)의 사전적 의미를 가슴에 새기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시(詩)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가 합쳐진 회의문자입니다. 비록 시를 ‘말씀의 창고’로 해석하는 게 정설이라고는 하나 제게는 ‘말씀의 사원’으로 여겨졌습니다.

선사(禪師)들의 정신적 사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시를 읽으면서 독자들이 선사들의 남긴 깨달음의 일편을 만나고 잠시나마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시 해설서를 쓰게 됐습니다.
기실, 선시는 현대에 와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선시의 어원은 가타(gata)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비롯됩니다. 가타는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는 운문체 글을 일컫습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가타는 송(頌)이나 찬(讚)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범어불전에 실린 운문들이 중국에서 한역되면서 한시적인 형식을 띠게 된 것이죠. 간단히 말해 선시는 선불교와 시가 아름답게 조우한 운문문학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선시가 부흥한 것은 달마 대사가 중국에 건너오면서부터인가요. 아니면 선시의 미학이 최고조에 달한 당대인가요?
- 선(禪)은 우주 본질을 파악해 참 자아를 깨닫는 불교수행법입니다. 선이 하나의 종파로 확립된 것이 달마(達磨)대사가 중국에 건너오면서부터인 것은 사실이지만 선시가 부흥한 것은 당대(唐代)입니다. 선의 가르침을 문학적으로 기호화한 것이 바로 선시인데요. 표의문자인 한자를 쓰는 중국은 예부터 시문학이 발전했습니다. 이런 시가(詩歌)의 전통에 선불교의 가르침이 더해지면서 선종과 시문학이 상호 길항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한산시(寒山詩), 시선(詩仙) 이백, 시불(詩佛) 왕유의 작품을 보면 선불교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육조, 신수, 백장, 마조, 임제, 조주 선사 같은 기라성 같은 선지식들이 선풍을 드날렸고요. 그들이 남긴 오도송과 게송들은 모두 선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을 가리켜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선은 언어문자에 의한 표현을 거부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마음으로 전하는 선과 문자예술인 시가 조우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선과 시가 조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구축한 것은 중국 남송의 엄우(嚴羽)입니다. 엄우는 ‘창랑시화(滄浪詩話)’라는 글에서 ‘선과 시가 모두 오묘한 깨달음을 전제로 한다’고 평했습니다. 현대에 와서 조지훈 시인은 선과 시의 관계를 ‘부조화의 조화, 비논리의 논리, 무목적의 합목적’으로 정의했고요. 선과 시는 본질적으로 정신적 원천을 좇는다는 점에서 상통합니다.

지난해 스님은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 축사에서 바쇼의 하이쿠를 인용했습니다. 하이쿠도 즐겨 읽는지요?
- ‘오월 장맛비/ 모아서 거세도다./ 모가미가와 강’이라는 하이쿠였죠. 장맛비가 거세면 그 크고 작은 지류의 물이 모여 노도처럼 굽이쳐 강으로 흘러가듯이, 한일 양국의 불교계도 불법(佛法) 홍포(弘布)를 위해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가자는 뜻에서 인용한 것인데요.
중국, 한국, 일본은 한자 문화권이어서 정형시가 발전했어요. 대부분의 선시가 4언 5구 혹은 7언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도 송(頌)이 발전하면서 정착된 것입니다.

유응오 소설가는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불교계 언론 〈주간불교〉와 〈불교투데이〉 편집장을 지냈다. 200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당선했고,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서 당선해 등단했다. 주요 저서로는 〈10.27법난의 진실(화남출판사)〉, 〈이번 생은 망했다(샘터)〉, 〈벽안출가(샘터)〉, 〈불교, 영화와 만나다(조계종출판사)〉가 있다.
한국선시, 활구선 측면에서 뛰어나
스님의 책을 보면 76편의 선시 중 중국 시는 고작 3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 앞서 당대에 선시문학이 최고 중흥기를 맞았다고 했죠. 그런 까닭에 한국의 선시는 중국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선시가 중국 선시의 아류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한국 선시는 중국 선시에 비해 활구선(活句禪)이라는 측면에서 더 뛰어난 점도 있습니다.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지은 〈수심결(修心訣)〉과 혜심 스님이 지은 〈무의자집(無衣子集)〉은 선시를 발흥하게 합니다. 조선시대에 와서 매월당(梅月堂), 청허당(淸虛堂), 서산대사(西山大師), 청매(靑梅) 인오(印悟) 선사로 이어지는 선풍(禪風)은 가히 일미(一味)입니다.
우리 선시에도 좋은 작품이 많다는 것을 소개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한국 시를 많이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를 쓰면서 참조한 책이 있는지요?
- 좋은 선시를 발췌하기 위해서 한국·중국 선사들이 남긴 선어록들과 석지현 스님의 〈선시 감상사전(민족사)〉을 참조했습니다. 다음으로 정휴 스님이 선사들의 열반송을 해설한 〈죽어서 시가 되는 삶이 있습니다(우리출판사)〉와 떠나기 좋은 날이 따로 있느냐(랜덤하우스코리아)〉를 수시로 읽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정휴 스님의 두 책은 생멸이 없는 삶을 살고 간 선사들의 입적 모습이 바로 언어이기 전에 한 편의 시이고 진리의 원음(原音)임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자 서문에 밝혔다시피 서구 문인들의 시집, 희곡집, 평론집과 서구 철학자들의 사상서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 이유는 선시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근대적인 교육체계에서 성장한 독자들에게 선시에는 철학적인 담론이 함유돼 있음을 상기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시는 그냥 써진 대로 읽는 글이 아니라 특정한 인물이 특정한 어조로 특정한 사물에 대해 특정한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지시 언어가 아니라 비유 언어인 것입니다. 실례로 스승이 제자에게 전하는 전법게를 들 수 있습니다.

선시들 중 유독 사랑하는 작품이 있나요?
- 책에 소개된 선시들은 선불교사(禪佛敎史)를 이끈 기라성 같은 선사들의 작품들인데 어떻게 감히 제가 우열을 가릴 수 있겠어요. 다만, 최근에는 진각혜심(眞覺慧諶) 스님의 ‘북두칠성으로 은하수 길어다 차를 달이는 밤(斗酌星河煮夜茶) 차 끓는 연기가 달의 계수나무를 감싸네(茶煙冷鎖月中桂)’라는 선시 구절을 즐겨 읊조립니다. 이 선시 구절은 은하수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제가 수행하고 있는 지족암의 한여름 밤 장관과 절묘하게 일치해서 절로 읊조리게 됩니다.

오현 스님·고은, 선시 현대화 기여
스님의 책이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의 독자들에게 선시를 이해하는데 좋은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시를 문학의 장르로 정의한다면 사회와 소통하는 창작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화석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 좋은 지적인데요. 사견이지만 저는 선시가 화석화됐다는 의견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선시의 현대화에 기여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오현스님과 고은 시인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가령, 오현 스님의 ‘아지랑이’는 반야사상(般若思想)을 짧고도 응축된 현대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은 시인의 ‘문의마을에 가서’는 자유시임에도 불구하고 승려출신답게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가르침을 도저하게 승화했고요.
저는 시인이나 작가가 아니어서 선시를 현대적인 시각에 해설하는 작업에 멈췄지만, 수행에 관심 있고 재기 있는 문인들이 선(禪)적인 에스프리가 담긴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길 바랍니다.

향적 스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향적 스님이 꿈에서 지었다는 선시가 떠올랐다. 향적 스님은 그토록 선시를 즐겨 읽음에도 선시를 지은 적이 없다. 딱 한 번 선시를 지은 적이 있으나 꿈속에서였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기억에 남은 것은 ‘극미법수(極微法首)’라는 구절뿐이었다. 지극히 적은 것이 법의 최정상이라는 뜻이다. 기실 향적 스님이 지은 선시 구절은 유한한 까닭에 영원성을 희구할 수밖에 없는 삶의 비의(悲意)와 선시의 요체를 두루 담고 있는 게 아닐까.  

▲ 선시 해설집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를 펴낸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향적 스님과 유응오 소설가가 선시를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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