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 세상을 바꿀 힘- 이 시대 왜 결사인가

이상 추구하는 신앙 결집체
1천일·1만일까지 시기 다양
사회 개혁적 성격도 내포해

신라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대중과 함께 하는 결사 필요

▲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열린 법회. 변화의 원력으로 맺어진 결사의 단면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같은 결사의 바탕에는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의지가 담겨 있다.
1,000일, 1,0000일. 불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정진 기간이다. 1000일은 햇수만 3년이고 10000일은 27년에 이른다. 이 같이 긴 시간을 정진하는 것은 스스로의 변화를 이끌 내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숫자 1000은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을 상징하는 법수(法數)이기도 하다.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을 보살피는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이 대표적으로 조성되는 관음상이기 때문이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손은 자비를 상징하고 눈은 지혜를 상징한다.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은 관세음보살의 손으로부터 벗어나는 존재는 없다. 재가 결사 법림의 이제열 법사는 저서 <법수로 배우는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에 대해 “우주에 꽉찬 손이며 꽉 찬 눈이다”이라며 “중생심이 있다면 중생을 낱낱이 꿰뚫어보고 제도할 수 있는 관세음보살도 내 마음에 나타난다”고 밝힌바 있다.

수행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자비심을 내는 것,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고금(古今)을 막론한 불자들이 가져야 할 원력이다. 이 같은 변화의 원력에 동참하는 신앙 공동체가 결사(結社)다.

결사, 변화로 나서기 위한 동력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의 <가산불교대사림>이 정의한 결사는 ‘뜻을 같이 하는 승속(僧俗)의 도반들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신앙을 실천하기 위한 결집체를 만들어 집단적으로 수행하는 불교신앙운동의 한 형태’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부처님은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하기 위한 정진을 이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어낸 열반의 길은 자기 개혁의 정신이자 자비와 지혜의 활로였다. 부처님이 보여준 개혁은 제도와 기구를 바꾸는 것이 아닌 정신적인 부분에 기인한다. 깨어있는 삶을 사는 정신적인 혁신을 부처님은 평생을 걸쳐 설해온 것이다.

또한 불교 역사 안에서 고비 고비마다 정상 궤도를 벗어나는 경우들이 생겼고 그 때마다 부처님이 닦아놓은 길을 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결사다. 

여산 혜원(慧遠, 334~416)이 동림사에서 123명의 승속들과 함께 서방정토 왕생을 서원하면서 염불 수행을 했던 백련결사를 시초로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의 결사가 이뤄졌다.

한국에서는 통일 신라기의 염불 만일결사가 결사 운동의 시원이며, 고려 시대에는 진억 스님의 수정사 결사, 보조 지눌국사의 정혜결사, 요세 스님의 만덕산 백련결사가 대표적인 결사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고려시대의 주요 결사운동은 단순히 신앙 실천 공동체를 넘어 사회 개혁까지 범위를 확장했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는 이전 결사운동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 명맥과 정신은 이어졌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는 경허·효봉·구산 스님 등이 보조 지눌국사의 ‘정혜결사’ 정신을 이어 받아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청담·성철 스님 등이 주축이 된 1947년 봉암사 결사는 현재 조계종의 기틀이 됐다. 
 
현대 신행·교단 개혁의 중심체
결사 정신은 현대 사회의 불교 신행뿐만 아니라 교단 개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 현재에도 적지 않은 신행 결사들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유서가 깊은 염불 결사는 지금도 그 명맥을 굳건히 지키는 중이다. 그중 동산반야대학을 중심으로 한 염불만일회의 경우 1998년 건봉사에서 결성한 이래 2025년 12월21일까지 1만일 간 매일 ‘나무아미타불’ 염불과 서원을 실천하면서 대표적 신행공동체로 발돋움했다. 

세상의 변화를 위한 결사도 현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결사 트렌드다. 한반도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쟁과 종교 갈등 등을 해소하기 위해 결성된 생명평화결사는 ‘스스로가 생명평화의 등불임을 자각하자’는 범종교인들의 모임이다.

지난 2001년 2월 ‘좌우익 희생자와 뭇 생명의 해원 상생을 위한 범종교계 100일기도’를 계기로 설립된 생명평화결사는 그동안 생명평화 사상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생명평화학교 운영, 생명평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서약운동을 위한 ‘생명평화탁발순례’ 등을 진행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종교간 갈등 해소 등을 발원해 왔다.

특히 지난 2004년 3월 도법 스님을 중심으로 진행된 생명평화탁발 전국 순례는 지방 곳곳을 찾아다니며 지역과 지역, 진보와 보수, 남과 북, 인간과 자연 등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대립에 대해 대화로 해소방안을 모색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 이해와 존중, 배려의 풍토를 조성하려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는 종단 차원의 대형 결사로 시작부터 주목을 받았다. 행정부 중심 스님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결사 전통을 계승하는 작업들이다.

자성과 쇄신 결사는 △수행결사 △문화결사 △생명결사 △나눔결사 △평화결사로 나눠 진행되고 있으며, 생명평화 1000일 정진을 통해 결사 동력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생명평화 1000일 정진의 경우 최근 정진단 위치를 이동하고 세월호 침몰사고 참회 기도를 함께 병행 중이다.  

결사, 어떻게 해야 하나
2600년의 장구한 불교 역사 안에서 나타난 결사운동은 현대 사회에 와서 더욱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대 사회의 문제점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사람들은 기존 사회 가치관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됐다. 문제를 감지하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될지 생각해보게 됐다. 또한 원인과 결과를 따짐에 있어 딱 하나 원인을 짚어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요건들이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알게 됐다. 문제를 보는 연기적 관점을 사람들이 지니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는 문제점을 함께 찾고 해결해나갈 결사 운동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결사는 어떠한 방향으로 추진돼야 할까. 불교계 인사들은 ‘부처님 법대로’ 사는 것이 바로 결사의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장 도법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곧 결사 운동가였다. 기존 지배 계급인 브라만을 부정했고, 중도의 길을 갔다”면서 “불교는 항상 현장에 있었고, 문제가 있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결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 이래 수 많은 결사가 있었지만 근본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 ‘부처님처럼 살자’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현대의 결사도 이 같은 범주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과거에 결사라고 하는 것은 내적 응집력이 강했다. 같은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결사체를 형성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결사는 가치의 확산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다. 느슨한 원심력이 필요하며 이것이 공감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호성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는 ‘결사의 정의에 대한 재검토’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결사운동은 탈권력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추구하는 결사 방향은 권력이 없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참여 속의 개혁’이 초래할 정치화의 길과는 반대로 결사는 탈권력의 길을 걸어갔다”면서 “조직적 결사가 아닌 결사 정신이 살아 있는 결사를 해야 한다. ‘홀로 결사’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결사는 원력의 공동체다. 하나의 목표로 부단히 정진하는 힘을 가진 것이 불교의 결사다. 현대 사회에서의 결사는 부처님 법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고 들었다.<중략> 무릇 부처님과 조사들의 말씀을 보고 듣고 익히는 사람은 불법을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지혜로서 말씀대로 수행하면 그것은 스스로 불법의 도를 이뤄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 <보조 지눌국사의 ‘권수정혜결사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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