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의 길을 가다’- ⑫ 만해 정신을 계승하는 사람들

1973년 만해 전집 편찬·발간
이후 선양사업 잇달아 시작
만해선양회·기념관 등 스님 조명

올해는 만해 스님이 열반한지 꼭 70년이 되는 해이다. 1944년 6월 29일 입적 이후 만해 스님의 정신을 계승하려 하기 위한 시도는 다양하게 있어왔다.

대표적 시도로 꼽히는 것인 1973년 발간된 〈만해 한용운 전집〉이다. 박노준 한양대 명예교수가 2006년 〈고대 교우회보〉에 게재한 연재에 따르면 스님의 전집 발간을 위한 시도는 1958년부터 있어왔다. 박 교수는 은사인 조지훈으로부터 〈만해 한용운 전집〉의 편찬, 발간 작업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받고 발간까지 실무를 맡았다.

박 교수는 전집 발간 작업을 통해 얻은 자료 열람을 기초로 〈한용운 연구〉라는 단행본을 1960년 통문관에서 펴내기도 했다.

박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만해 한용운 전집〉의 유력은 대단했다. 그는 “범(凡) 학계와 문단의 여러 인사 그리고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만해 스님의 여러 국면을 연구하는 붐이 갑가지 일어나 빠른 속도로 번졌다”면서 “그러한 움직임은 가속도가 붙어서 오늘 와서 ‘만해학’이라는 학명이 나올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어 “만해를 기리는 크고 작은 각종 행사가 매년 곳곳에서 거행되거니와 이런 모든 학문적 열기는 〈만해 한용운 전집〉이 토대가 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만해대상’과 축전-만해사상실천선양회
이후 불교계 안팎으로 만해 스님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단체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사)만해사상실천선양회(이사장 오현, 이하 만해선양회)다.

만해선양회는 만해 스님의 사상과 그 정신의 구현을 위해 1996년 백담사에서 발족했다. 초대 총재는 월주 스님(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 추대됐다.

선양회의 설립 목적은 당시 발표한 취지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만해선양회는 취지문에서 “만해 한용운 선사의 불교 근대화운동과 개혁사상은 오늘날에도 커다란 울림을 지니며 새로운 빛과 향기를 더해 가고 있으며, 스님의 민족사상 역시 오늘날의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횃불로써 타오르고 있지만 오늘날 선사의 이러한 큰 사상과 업적을 총체적으로 실천하고 구체적으로 선양하기 위한 국민적 노력과 국가적 지원은 아직도 미흡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하며 “이에 만해 선사가 출가한 만해정신의 요람이자 불후의 시집 〈님의 침묵〉을 집필한 명작의 고향인 설악산과 백담사에서 중심이 되어 만해사상 실천과 선양운동을 전 국민적, 전 민족적으로 전개해 나아가는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창립 이후 만해선양회는 만해 정신의 선양을 위한 여러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만해정신의 선양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 수여하는 만해대상이다. 1997년 제1회 만해대상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1회 수상자로는 △평화부문- 조영식(경희대학원장) △포교부문- 故 숭산 행원스님(화계사 조실) △실천부문- 카톨릭 농민회 △학술부문- 이기영(한국불교연구원 원장) △예술부문- 이반(덕성여대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만해 스님 탄신 120주년을 맞는 1999년부터 시작한 만해축전은 이제는 강원 인제 지역을 대표하는 여름 문화 축제로 부상했다. 올해도 오는 8월11일부터 14일까지 만해마을 등 인제군 일원에서 만해축전을 열어 만해스님의 민족애와 문학정신을 계승할 예정이다.

만해선양회는 백담사 인근에 설립한 만해마을을 조계종립대학인 동국대에 기증하기도 했다. 만해마을은 △문인의 집(숙박 및 문인집필시설, 객실 47실 200여명 동시 수용) △만해기념관(박물관) △만해학교(교육시설) △서원보전(사찰) △만해수련원 △청소년수련원(500여명 수용가능 수련시설)등 건물 6개동과 종각, ‘님의 침묵 광장’ 등 부대시설로 이뤄져 있다. 토지면적만 21,000㎡에 달하고, 건물 면적도 12,000㎡에 달하는 대규모 전시, 교육, 수련시설이다.

오현 스님은 당시 기증식에서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서 만해마을을 설립한 취지에도 부합하고, 만해광장, 만해관, 만해시비 등이 있는 동국대와 인연이 깊다”면서 “우리가 (만해마을을 운영)하는 것 보다 10배 이상 만해선양사업을 잘 할 것으로 생각해 동국대에 기증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향후 동국대는 만해 마을을 국제평화캠퍼스를 장기적으로 구축한다는 목표아래 만해마을 캠퍼스 교육원을 설치할 방침이다.

청년 만해의 산실-대한불교청년회
만해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대표적 단체 중 하나로 대한불교청년회(회장 전준호)다.

대한불교청년회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9년 3.1운동 이후 31개 본산 대표자와 중앙학림 학생들이 모여 민족운동가 만해 스님의 뜻을 받들어 1920년 6월 20일 각황사(覺皇寺, 현 조계사)에서 31명의 대표간사를 선출하고 조선불교청년회를 창립한 것이 대한불교청년회의 첫 출발이다.
1927년에는 통일전선체인 신간회(新幹會) 결성에 조응하여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신간회 경성지회장인 만해 스님의 지도하에 회원의 상당수가 신간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1930년대 일제가 중국대륙을 침략하면서 국내의 민족독립세력에 대한 탄압을 한층 강화하자 모든 항일운동이 지하로 잠복하게 되는데, 불교계에서도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비밀결사조직인 만당(卍黨)을 결성하고 조선불교청년동맹은 만당의 지도아래 활동한다.

1938년에 김법린 등 핵심당원들이 검거됨으로써 조선불교청년회 역시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실질적 활동이 중단된다.

해방 이후 1948년 11월에 김법린 등이 조선불교청년회를 재건하였으며, 1962년 6월 20일 문화공보부에 대한불교청년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종교단체로 등록하고 조직활동을 활성화하였다.

1970년 창립50주년 기념행사로 한용운 초대회장 추모강연회를 개최하였으며, 그의 불교유신정신을 받들어 팔만대장경을 축약, 번역한 〈팔만대장경〉 한글판 단행본을 간행하였다.

1979년 3·1절을 기하여 전국만해백일장 및 전국찬불가경연대회를 개최했고, 같은 해 만해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제1차 전국불교청년대회를 조계사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전국만해백일장은 현재까지 매년 3월 1일이면 개최되는 연례 기념행사가 됐으며, 그 규모도 2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문학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선양의 열정 담겨-남한산성 만해기념관
만해 스님의 유품과 자료가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돼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남한산성 만해기념관(관장 전보삼)이다. 이곳은 ‘만해 사상 선양’이라는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의 필생 원력이 담겨 있기도 하다.

만해기념관의 시작은 1980년 심우장에 설치된 자료관이다. 전 관장은 당시 한양공고 야간부 교사로 재직하며 낮에는 만해 스님 연구와 자료관 관리를, 밤에는 교편을 잡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이에 전 관장은 만해 스님 정신을 선양하는 데 심우장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관광지로 이목이 집중되던 남한산성에 지금의 기념관을 지었다. 1990년 심우장에서 남한산성으로 자리를 옮긴 자료관은 1997년 최종 완공돼 기념관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게 됐다.

이에 앞서 1995년에는 백담사에 만해기념관이 개관했고, 2006년 만해 스님 고향인 홍성에 만해 문학체험관이 문을 열었다. 전국에 세 곳에 있는 기념관에는 모두 전 관장이 제공한 자료와 콘텐츠들이 담겨 있다.
기념관은 만해 스님의 유품과 생전 저술 등을 상설 전시하면서 매년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시를 통해 스님을 조명하고 있다.

연재를 마치며
연재를 시작하고 만해 스님 관련 자료와 연구 논문, 스님 평전 등을 살피면서 스님의 자세한 생애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만해 스님이 삶을 통해 보여준 업적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독립을 위해 투쟁한 운동가였으며, 깨달음과 자유의지의 열망을 노래한 시인이자 문학가였습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치열한 구도열을 가진 수행자이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주요 행적에 따른 장소를 선정해 연재했지만, 사실 조선 팔도 스님의 발길이 닫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스님의 치열한 삶에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은 자신을 던져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열정입니다. 전보삼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장은 “행복해지고 싶다면 만해 스님의 열정을 배워라”라고 말했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스님의 열정적 삶을 조금이나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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