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漢岩) 선사의 편지 〈13〉최태규 선생에게 보낸 답서

‘복 얻을 수 있는 방법’ 물음의 답
“善을 쌓으면 자손에 경사
불교 밖에도 있는 가르침”
〈맹자〉의 ‘등문공’‘고자’등 인용

▲ 최태규 선생에게 보낸 답서
최태규 선생에게 보낸 답서
번개처럼 만났다가 번개처럼 이별하게 되니 마치 한바탕 꿈을 꾼 듯합니다. 삼가 편지를 받고서 고요하게 요양하는 가운데, 존체가 시절에 따라 만복(萬福)하고, 집안도 두루 평안하시다고 하니 안심이 됩니다. 산승(한암선사)은 겨우 노쇠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니 말씀드릴 만한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만 산내(山內) 대중들이 무사하니, 그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입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뜻은 알겠습니다만, 죄를 씻고 복을 맞아들이는 것은 꼭 불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善)을 쌓으면 남은 자손들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있게 되며, 정성이 지극하면 상서로움이 나타난다는 말은 책에도 실려 있습니다.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물며 명훈(明訓, 명확한 가르침. 맹자의 말)에 “순(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면 다 이와(순임금) 같이 된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사람은 모두 요순(堯舜)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흉(凶)함을 바꾸어서 길(吉)함으로 만들고 악을 고쳐서 선(善)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은 오직 당사자의 한 마음 진실함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굳이 밖에서 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도리는 선생께서도 이미 알고 있으시고 또 초탈하셨는데 겸양이 지나치셔서 우승(愚僧, 한암선사 자신을 가리킴)에게 묻고 있는 것뿐입니다. 천만번 부끄러울 뿐입니다. 한번 웃습니다.
이만 줄이오며, 정신이 흐려 답서의 예를 갖추지 않습니다.
병술년(1946년) 5월 23일
산승 중원 올림

한암선사의 이 편지는 강원도 강릉에 사는 최태규(崔台圭) 거사에게 보낸 답서이다. 광복 다음 해인 1946년(丙戌) 5월 23일에 오대산 상원사에서 보낸 것이다.
최태규 거사가 한암선사께 “어떻게 하면 죄를 씻어 버리고 복이 들어올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 같다. 이에 대하여 한암선사는 “선(善)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후대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게되[積善之家, 必有餘慶]”는 말을 인용하여 선행(善行)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말은 불교에도 있지만, 특히 맹자의 말씀에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면 다 그와 같이 된다”고 하였고, 또 “사람은 노력하면 모두 요순(堯舜)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흉(凶)을 길(吉)로 바꾸고 악을 선(善)으로 만드는 것은 당사자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한암선사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진실한 마음으로 노력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명훈은 좋은 명언을 뜻하는데, 여기서 인용한 문장은 모두 《맹자(孟子)》 〈등문공(?文公)〉 상편(上篇)과 〈고자(告子) 하편(下篇)에 있는 말이다.
편지 첫 구에 “번개처럼 만났다가 번개처럼 이별하게 되니 마치 한바탕 꿈을 꾼 듯합니다.”는 대목은 매우 문학적인 표현이다. 한편으로는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법)의 이치를 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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