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사찰 건축- 11. 논산 관동사

“건축은 그 시대 생활상의 ‘반영’”
연로한 어르신들 위한 요사채 중점
어설픈 전통 흉내보다 ‘실용’ 추구
종교적 상징성 ‘양식’으로 풀어내
‘지붕-기둥-마루’ 한옥전통 양식 도입
사찰건축의 현대적인 모습 제시
관음전 넓은 창호로 내부 밝게

▲ 법당 관음전과 요사채 1동, 객실용 별채 1동으로 이뤄진 관동사의 건축은 실용성에서 시작해서 실용성으로 끝난 건축이다.
충남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골짜기엔 관동사가 있다. 2005년에 지어진 관동사는 절이 분명하지만 외형만 봐서는 절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관음전’이라는 현판을 찾아내는 순간 겨우 절이라고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며, 법당 문을 밀고 나오는 스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동사의 ‘건축’을 살펴본다.

현대적인 절이란?
모든 건물은 용도에 따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주택, 갤러리, 학교, 극장, 식당 등 각자 외형이 가지고 있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다. 대부분 건물의 외형이 그 건물의 용도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은 지어야 할 건축물의 용도에 다른 상징성 안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절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절’의 모습이 있다. 절을 구성하는 당우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끝을 들어 올린 기와지붕. 벽면의 틀을 만들어내는 원목의 기둥과 문살들, 원목에 베여있는 단청 등이 그것들이다. 물론 이는 그야말로 천년 이상을 이어져 온 전통적인 사찰의 모습이다. 현대에 지어지는 사찰들이 앞서 말한 전통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전통적인 절의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절이라는 상징성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와 한 장 볼 수 없는 관동사의 경우는 그 부분이 극히 미약하다. 관음전이라는 현판 자체도 전통적인 모습이라고는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눈에 절임을 알아볼 수 없는 관동사는 건축적으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걸까. 또 굳이 의도를 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사찰건축의 현대적인 모습, 즉 ‘현대적인 절’이란 어떤 모습이라야 하는 것일까. 관동사의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가 김홍일(58·동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집(건축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의 생활에 맞춰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생활의 반영이고 결과물인 것이다. 전통적인 사찰의 모습 역시 그 시대의 생활에서 온 것이다. 그럼 관동사는 이 시대의 생활상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어떤 이유로 그렇게 지어진 것일까.

▲ 어르신들의 편리한 생활에 초점을 맞춰 설계한 요사채
시작도 끝도 ‘실용성’
법당 관음전과 요사채 1동, 객실용 별채 1동으로 이뤄진 관동사의 건축은 실용성에서 시작해서 실용성으로 끝난 건축이다. 관동사를 세운 주지(본인의 요청으로 법명 생략) 스님은 현재 대중 스님 한 분과 절을 이끌며 노보살님 한 분을 모시고 있다. 절을 세울 당시에는 다섯 분의 노보살님을 모셨는데 한 분 한 분 돌아가셔서 이제 한 분만 남아계신다고 했다. 주지 스님이 절을 지은 이유는 연세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기 위함이었다. 주지 스님은 절을 짓기 전부터 알고 지냈던 어르신들의 만년을 지켜드리며 함께 살고 싶었다. 그것이 절을 세운 이유의 전부다. 결국 관동사는 ‘복지’의 공간인 것이다. 스님은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여기저기 관련 강의도 들으러 다니며 복지에 대한 원을 키워갔다. 스님의 복지관(福祉觀)은 남달랐다. 스님은 “진정한 복지는 인간과 인간이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스님은 “나는 내가 결코 어르신들을 돌봐드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복지관(福祉館)은 ‘수용’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인간적인 관계를 확인하는 공간이다.”고 말했다. 스님은 그런 복지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관동사는 법당보다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요사채를 중요하게 생각한 도량이다. 스님은 어르신들이 편리한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첫째도 ‘실용성’이고 둘째도 ‘실용성’이었다.
설계를 맡은 김홍일 교수는 고민했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공간의 실현은 어렵지 않았으나 ‘절’이라고 하는 종교적 상징성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일단 실용성에 맞춘 요사채와 조화를 이뤄야 하는 법당의 설계가 쉽지 않았다. 이미 목조가 아닌 시멘트 건물로 결정이 난 상황에서 절의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기와지붕을 올린다든가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님 역시 시멘트 건물에 기와지붕과 단청은 반대였다. 어설픈 금상첨화보다는 제대로 된 소창치마가 좋다고 생각했다. 스님은 원목의 기둥 위에 기와지붕을 얹고 꽃문양 문살로 지은 법당을 짓고도 싶었지만, 그보다는 어르신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실용적인 요사채가 더 중요했고 그런 스님의 생각은 건축가를 고민하게 했다.
현대적 건축언어로 풀어낸 ‘전통’
“지붕, 기둥, 마루. 이 세 가지가 우리 전통 건축의 기본 요소입니다.” 김 교수는 건축적인 절의 상징성 문제를 구체적인 외형이 아닌 ‘양식’으로 풀어갔다. 관동사의 외형에서는 기와나 원목의 기둥 등 전통적인 사찰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색칠을 하기 전인 밑그림을 보면 그 양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관동사의 건물들은 위의 세 가지 요소를 적용하고 그 세 가지 요소의 틀에서 지어진 건물이다.
관음전은 전통양식의 거대한 기와지붕 대신 심플하고 슬림한 수평의 지붕을 얹었고, 벽면에 붙어있는 전통의 원목 기둥 대신 벽과 분리된 직선의 기둥이 그 날렵한 기둥을 받치고 있다. 그리고 툇마루 개념의 기단부를 지붕의 대칭 구조로 두었다.
관동사 관음전은 시멘트로 지어진 법당이지만 골격은 한옥의 골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찰의 전통적인 골격역시 한옥의 구조와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적 건축 언어로 고전적 건축 언어를 풀어낸 것이다. 관동사 건축은 우리 건축의 전통양식인 ‘지붕-기둥-마루’를 그대로 옮겨왔다. 시멘트로 지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하는 절의 상징성을 느낄 수 없을 뿐이다. 한복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입은 의복으로 국적이 구분되는 시대가 아닌 것처럼 건축 역시 시각적인 요소의 계승이 없다는 것만으로 상징성의 문제를 따질 일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관동사 건축에서 상징성 문제는 법당 내부에서 또 한 번 진일보한다. 관음전은 벽면 전체가 넒은 창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전통적인 법당보다 내부의 채광이 많다. 김 교수는 “왠지 종교적인 공간이라고 하면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기 위해 다른 공간보다 어두운 경우가 많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불교는 깨달음을 위한 종교이고, 깨달음이란 곧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가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밝은 법당’, 외형적인 상징성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상징성의 문제까지 새롭게 다가가고자 한 것이다.

▲ 많은 창호로 채광을 높인 관음전 내부
현대건축에 이미 우리 전통이
“관동사 설계의 기본 양식인 ‘지붕-기둥-마루’는 현대건축에서 추구하는 기본 양식이기도 합니다.” 관동사는 한 눈에 절이라고 알아볼 수 없는 절이다. 하지만 전통의 양식을 뼈대로 지은 현대건축이다. 그런데 현대건축의 기본 양식 속에 이미 우리 전통의 요소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현대적인 사찰건축을 이야기할 때마다 ‘전통’의 문제가 숙제였다. 그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절’이라고 하는 상징성의 유지에 관한 문제였다. 기존의 ‘절’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건축을 시도하는 것이다. 관동사 역시 현대건축으로 지은 절이기에 의뢰자나 설계자나 모두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관동사는 그 상징성의 문제를 겉모양에 연연해하지 않은 건축이다. 건축이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절이라고 하는 종교적 상징성의 문제 역시 외형만을 의식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관동사가 완공되었을 때 주지 스님은 지인들로부터 불사에 대한 아쉬움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야 했다고 했다. “지붕에 기와라도 얹지 그랬어.” 왜 절을 이렇게 지었냐고 마땅치 않게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주지 스님은 여기저기서 싫은 소리를 듣다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고 다소 후회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기와를 얹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관동사 자리는 산과 산 사이, 즉 골짜기인데 이 자리가 바람의 길목이라는 것이다. 특히 겨울엔 센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스님은 “만약 기와를 얹었다면 허구한 날 기와 날아갈 걱정하며 살 뻔했죠.”라고 했다.
관동사는 절이라고 하는 상징성의 문제로 인해 많은 고민 끝에 선 도량이다. ‘평가’의 시선보다는 ‘수용’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건축이다.

건축가 김홍일은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와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고, 프랑스 파리 벨빌건축대학과 프랑스 파리 10대학 예술사학부 박사 준비과정을 졸업했다. 플랜비건축사무소와 위드종합건축사무소 소장을 지냈고,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다. 대한 건축학회 편집위원 부위원장, 한국건축가협회 교육분과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며 동국대 건축공학과 교수이다.
주요 작업은 당진 무문암과 논산 관동사, 코코모 사옥, 금촌 근린생활시설의 신축설계를 담당했고, 국립중앙박물관 국제 현상설계 5위 입상 등 다수 현상설계 입상했으며, ‘돔-이노 이론에 의한 현대건축 입면공간에 대한 논문’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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