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漢岩) 선사의 편지 〈9〉

백용성 스님 법거량의 답신
원숭이와 돼지 비유로 법문

‘상서(祥瑞)’를 묻는 보월에게 답
“오줌 눌 때는 오줌 누고…”

망월선원 조실 용성스님께 보낸 답서
近日鄙留壁上에 畵二猿二猪러니 人皆稱名畵라 望月大衆은 一次來玩이 如何오.
漢 岩

요사이 제 방 벽에 원숭이 두 마리와 돼지 두 마리를 그려 놓았는데, 사람들이 보고서 모두들 명화(名畵)라고 합니다. 그러니 망월선원의 대중들도 한 차례 와서 구경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한 암

이 편지는 도봉산 망월선원(望月禪院) 조실로 있던 백용성(白龍城) 스님의 법거량 편지에 대하여 답한 것이다. 당시 백용성 스님은 도봉산 망월사 선원 조실로 있었는데, 전국 선원에 다음과 같은 법거량 편지를 보냈다.
“조주무자를 십종병(十種病)에 떨어지지 말고 한 구(句)를 일어 보시오(趙州無를 不落十種病하고 道將一句來하라)’.
십종병이란 ‘무자화두 십종병(無字話頭十種病)’을 뜻한다. 즉 무자화두를 참구할 때 병통이 되는 열 가지로, ①무자화두를 ‘있다 없다’는 식으로 헤아리지 말라(不得作有無會). ②무자를 진무(眞無)의 무(無)라고 헤아리지 말라(不得作眞無之無卜度). ③무자에 무슨 대단한 도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不得作道理會), ⑤눈과 눈썹을 깜박이는 곳에서 뿌리박지 말라(不得向揚眉瞬目處楕根) 등 열 가지이다.
그런데 ‘조주의 무(無)’에 대하여 이 열 가지에 저촉되지 말고[不落十種病] 한마디 해보라고 한다면,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양미순목 같은 것으로는 충분히 표현 할 수도 있으나, 이것도 십종병에 들어가 있으므로 곤란하다. 상대방이 답할 수 있는 모든 여지를 차단하고 묻는 방식인데, 이런 방식은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코너로 몰아붙이는 방식이다. 즉 도망갈 여지를 없애고 공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대한 한암선사의 답은 매우 해학적이다. 망월선원에서 보내 온 법거량에 대하여 구체적인 답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내 방 벽에 원숭이 두 마리와 돼지 두 마리를 그려 놓았는데, 다들 명화(名畵)라고들 하니 망월사 선원의 대중들도 한번 와서 감상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鄙留壁上, 畵二猿二猪, 人皆稱名畵. 望月大衆, 一次來玩如何)”라고 하여 동문서답 식으로 답하고 있다.
원숭이 두 마리와 돼지 두 마리는 무엇을 뜻하는가? 원숭이는 잔꾀, 사량 분별심, 알음알이를 뜻하고 돼지는 우치(愚癡), 무지(無知), 무명(無明)을 뜻한다. 즉 ‘한가하게 분별심을 내어서 ’조주 무‘에 대하여 한마디 해 보라’는 등 부질없는 일일랑 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우치(愚癡)와 무명(돼지)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참구나 하시오”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된다.

보월화상(寶月和尙)에게 보낸 답서

발징화상(發徵和尙)의 상서(祥瑞)는 세상 사람들이 듣고서 모두 합장한 채 귀의하거니와, 오늘 여기의 상서는 지혜 없는 이와는 말하기 어려운 일인데, 만일 스님이 물어주지 않았던들 하마터면 묻힐 뻔했습니다.
상서(祥瑞), 상서여, 드물고, 드물고, 드문 일이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일념 중인 대중들이 오줌 눌 때에는 오줌 누고, 똥 눌 때에는 똥 누니라.
한 암

이 편지는 덕산 정혜사 보월화상(寶月和尙)에게 보낸 답서이다. 보월화상은 만공선사의 첫 제자인 보월성인(寶月性印, 1884-1924이다. 보월화상은 한암스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옛날 신라 때 발징화상은 건봉사 미타만일회(彌陀萬日會)를 개최하여, 아미타불을 염불한 결과 31인이 육신(肉身) 그대로 하늘에 올라갔는데, 올 동안거엔 무슨 상서(祥瑞)가 있었습니까?(昔日 發徵和은 阿彌陀佛을 念하야 三十一人이 肉身騰空이어니와 今冬安居에 有何祥瑞오)”라고 물었다. 여기에 대하여 한암선사는 “상서(祥瑞)’라니 그 무슨 허튼 소리인고? 그저 대중들은 한 생각으로 오줌 눌 때에는 오줌을 누고, 똥을 눌 때에는 똥을 눈다”고 하여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이상의 두 편지는 1921년 건봉사 만일선원(당시 조실 한암선사)에서 간행한 〈한암선사법어〉에 수록되어 있다. 그 후 〈한암일발록(漢岩一鉢錄)〉에도 수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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