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사찰건축- 10. 국제선센터

신라 황룡사 9층탑 모티브
보는 방향 따라 한옥, 탑, 빌딩 공존
전통처럼 보이지만 전통 넘어서

국고 150억 투입된 종단(조게종)사업
도심 최초 템플스테이 사찰
새로운 사찰 전형 제시하고파

▲ 2010년 완공된 국제선센터. 이를 설계한 김개천 교수는 전통을 현대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새로운 사찰 전형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흔히 ‘새로운 사찰’, ‘현대식 사찰’하면 세련된 미술관 같은 외관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통 사찰의 외양과 구조가 시대적인 흐름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0년 11월 전통과 새로움의 문제 사이에서 또 하나의 건축이 시도됐다. 서울 신정동에 지어진 국제선센터이다.

현대의 전통화. 설계자인 건축가 김개천 교수(국민대 조형대학)는 지상 7층 규모의 콘크리트 한옥빌딩인 선센터를 이렇게 말했다.

한옥으로 빌딩짓기
국제선센터는 보는 이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20여 M에 달하는 거대한 탑모양의 한옥이 아파트와 통유리 빌딩 사이에 위치한 까닭이다. 누가봐도 ‘절스러운’ 건물.

국제선센터는 그동안 많은 불교관련 건축물의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가 김개천 교수가 역시 설계를 담당했다. 하지만 국제선센터는 그동안 김 교수가 설계했던 다른 불교 건축물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직선의 미학이 녹아있는 만해마을과 현대적 법당의 백미로 꼽히는 정토사의 무량수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다른 사람의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다들 전통의 현대화를 말하죠. 그러나 이를 시도한 많은 건축물이 대부분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오히려 ‘현대를 전통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거꾸로 출발하는 거에요.”

김 교수는 전통의 현대화와 그 역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말이라고 했다. 전자가 전통을 어떻게 현대화시킬지 고민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현대적 형식을 어떻게 전통처럼 표현할까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 불교건축을 논할때면 항상 빠지지 않는 단어였다.

김 교수의 이러한 접근한 관련 스님들의 반응이 한몫했다. 처음에는 현대식 건물로 디자인한 가설계안을 프리젠테이션했다. 스님들 사이에서는 이렇다할 반응이 없었다.

김 교수는 전통과 새로움 사이에서 또 한 번 고민했다. 전통과 새로움,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 ‘건축’이란 문제는 늘 어려운 것이었다. 김 교수는 시대적인 요청을 과거로 돌아가 해결한다. 사라진 불사(佛事), 신라의 황룡사 9층탑에서 숙제를 풀기 시작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모본으로 디자인한 설계안이 통과됐다.

당시 선센터는 템플스테이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한 정부가 조계종과 협의해 국고 150억원을 지원한 건물이다. 도심에 불교건축물을 세울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였고, 도심사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일종의 테스트베드였다. 불교계 전체가 주시하고 있었던 큰 프로젝트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던 터라 스님들 입장으로서는 원하는 바를 속시원히 말할 수 없었던 것 아니었겠냐고 김 교수는 당시를 회고했다.

김교수 스스로도 현대 건축에 의문이 들었다. “전통을 왜 그럴싸한 현대적 건물로 대체해야 할까. 스님들도 원하고 간화선을 체험하러 오게 될 외국인 역시 한국 전통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김 교수는 현대를 고전적으로 재해석했다. 불교의 국제교류가 활발했던 신라의 황룡사 9층탑이 모티브가 됐다. 한국의 수행문화를 알려나갈 장소에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 밑에서 올려다보면 기와가 보이지 않게 된다. 한옥의 모습이 사라지고 현대식 모습만 보인다.

선센터의 역설
그렇다고 선센터가 전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다. 외양은 전통 약식을 따랐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어딘지 기존 양식과는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9층탑과 7층 본건물로 나뉜 듯한 구조부터가 그렇다. 탑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7층 건물과 연결된다. 기존 사찰이 탑과 대웅전이 개별적으로 분리된 형식인 반면 선센터는 하나의 건물이다. 전통적 가람배치를 고집하기에는 대지 면적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건축면적 1,244㎥의 국제선센터는 지하1층에 교육관과 어린이 법당이, 1층 사무실과 2층 대적광전 위에는 공양간과 템플스테이관, 선방이 있다. 부처님 머리위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는 예전 사고방식에 비추어보면 어림없는 이야기지만 많은 대중들이 찾게 될 법당은 접근성 좋은 아래층에 위치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선방은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았다.

“공경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현실을 지배하면 곤란해요. 이념이 삶을 지배해 버리는 것이니까요. 현대적 불교는 그러한 점에서부터 유연해질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요. 승방이나 템플스테이 개인방마다 화장실을 만든 것 역시 합리적 배치죠. 일부러 힘들게 살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는거죠.”

김교수는 국제선센터를 설계할 당시 비례나 형태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육중한 건물이라 권위적일 수도 있겠다싶어 시각적 여백을 주고자 했다. 본건물에 회랑을 둘렀다. 비어 있으면서 동시에 채워진 듯한 양가적인 모습은 공과 색이 따로 있지 않음을 이야기해준다.

선센터의 역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분명 처마에 동기와를 올리고 있는 한옥건물이다. 반면 밑에서 위로 올려다 보게 되면 지붕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나무로 마감한 평평한 판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한옥은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의 층들만 남는다. 이를 위해 기존의 탑형식과는 반대로 탑신부를 좁히고 위 간격은 균등하게 분할했다. 처마밑 공포와 서까래도 없앴다. 높이 탓에 가까이가면 건물을 올려다볼 수 밖에 없는 시선의 변화를 고려해 형태에 변주를 준 것이다. 그로인해 국제선센터에는 동서남북, 위, 아래 등 보는 방향에 따라 한옥, 탑, 빌딩이 공존한다. 국제선센터라는 건축엔 고정된 형상이란 없다.

▲ 국제선센터는 전통에 없는 형식으로 전통을 완성했다. 창살 무늬는 기존 양식과 다른 모양이다.

전통 속 숨은 현대
“일본풍이다 중국풍이다 말들을 많이 하지만 선센터는 한국적 양식도 아닙니다. 어디에도 없는 건물이죠.”

자를 대고 그은 듯 반듯한 선이 강조된 국제선센터는 곡선으로 대변되는 전통건축의 통념과는 반대다. 때문에 건물 정체성에 대해 논란이 일었지만 김 교수는 “한옥이 아닌 한옥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시대 한옥을 만들기 위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를 찾아나섰다. 창살 문양, 벽돌 등을 전부 새로운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전통 세살무늬 대신 대각선, 격자 등을 자유자재로 배치했다. 간격도 벌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한다. 7층 선방의 벽돌 역시 한 장씩 엇갈려 쌓은 것이 아니라 두 장을 포개서 쌓았다. 전통에 없는 형태지만 전체적으로는 전통처럼 다가온다는 데 선센터의 건축적 재미가 숨어 있다.

“디테일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예전 것을 쓰지 않는 것을 기본 출발로 삼았다”는 김 교수는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만들고 보태야 새로운 문화유산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전통을 얘기하되 그에 대한 집착을 버렸고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어설픈 전통 흉내 역시 멈출 수 있었다.

국제선센터는 다른 ‘현대식’ 사찰보다는 확실히 전통에 더 방점을 찍고 있는 듯 보인다. 현대식 건물안에 전통적 의미를 함축해 시를 읽듯 공간을 읽어야 하는 건물들과는 달리 쉽고 솔직하다. 그래서 국제선센터는 새로운 족보로서 당당하다. 묘하게 이질적이고 낯설면서도 숨어있는 전통의 유전자로 인해 친근하게 다가온다.

김 교수에게 국제선센터는 그 동안의 새로운 시도 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무엇이 바람직한 건축인가에는 답이 없다. 사찰 형식에 대한 당위성 역시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는 도심에 위치한 현대 사찰의 또 다른 전형을 제시했다.

▲ 벽돌을 쌓는 형식 역시 기존과는 달리 두개씩 포개여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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