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만물만생이 다 중심 없이는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 그림 최주현

자기주인공이 없다면 지금 몸도 정신계도 없어요.
내가 없는데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꼭 알아야 되겠다.
이 세상에 나와서 절대 그냥 갈 수 없다.
나를 움죽거리게 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 알아야 되겠다.’ 하고
좀 그러란 말입니다.

한마음 주인공이 무엇인지요
문) 이제 갓 불교에 입문하게 된 불자입니다. 그런데 한마음 주인공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 예를 들어서 큰 불기둥이 하나 하늘을 꿰고 땅을 딛고 이렇게 있다고 봅시다. 그런데 이 우리가 돌아가는 수레가, 우리가 생활하고 돌아가는 수레가 그 불기둥을 가운데다 끼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사는 게. 그냥 쉬는 사이 없이 그대로 돌아가요. 그런데 벌써 주인공을 내가 일부러 찾아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말하게 된 것도, 살아서 이렇게 움죽거리게 된 것도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종교를 믿는다 안 믿는다 이걸 떠나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하면은 벌써 그렇게 살아서 움죽거리는 거 자체가 바로 주인공이 있기 때문이에요.
주인공은, 중심이 되고 돌아가는 이 모습 자체가 이렇게 움죽거리게 하는 건 바로 ‘공’ 이거든요. 그게 쉴 새 없고 찰나찰나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인간 자체가 수레라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수레가 돌려면 중심이 없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그 힘을 배출해 주지 않는데. 하다못해 차바퀴도 이 중심을 끼워 주니깐 바퀴가 제대로 돌아가지 중심이 끼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바퀴가 제대로 돌아갑니까. 그렇듯이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나무는 자기 뿌리를 믿어야 된다. 그 자기 뿌리에 꿰여서 바로 이 싹이 이렇게 살고 있으니깐 말입니다. 그래서 뿌리와 뿌리끼리, 마음과 마음이 연결이 되고 통신이 되고, 또 말과 말이 통신이 되고, 아래서는 모든 에너지를 흡수해서 위로 올려보내고 위에서는 또 에너지를 흡수해서 내려보내고, 정맥 동맥이 돌아가듯. 이렇게 상대성 원리로서 인간이 다 이렇게 움죽거리고 살고 있단 얘깁니다.
그런데 자기가 주인공이 없다면 지금 몸도 정신계도 없어요. 무효예요. 내가 없다면 다 무효입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각자 내가 있기 때문에 지금 있는 거지, 내가 없는데 뭐가 있습니까? 그러니깐 ‘꼭 알아야 되겠다. 이 세상에 나와서는 절대 그냥 갈 수는 없다. 나를 움죽거리게 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 알아야겠다.’ 좀 이러란 말입니다. 모든 일체 만물만생이 다 중심 없이는 돌아갈 수가 없어요. 기계도 그렇고, 모두가요.

좋은 인연들이 생겼으면…
문) 제 주변에는 아직까지 좋은 인연보다 나쁜 인연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인연이 생길 수 있을까요.

답) 그것도 내 마음에 달려 있어요. 이 세상은 삼천대천세계 우주 천하가 다 마음과 마음을 전달하면서 돌아가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서 돌아가는 거지, 끊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같이 통한다, 이런 문제가 나오는데, 어떤 악연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둘이 아닌 까닭에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한다면 전체가 가설이 돼 있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그냥 불이 들어와요, 그쪽에도. 그래서 그 악연의 업보가 그냥 씻어지는 겁니다 . 그래서 회개를 하고 다시금 밝은 마음으로써 이어지게 되죠. 더디고 이를 뿐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이 가설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니까, 너 나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렇지, 이 마음 세계에서는 같이 돌아가고 있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지나가다가 꽃밭을 이렇게 봤으면 그냥 꽃과 우리와 눈 시선이 맞으면서 마음도 같이 부딪쳐집니다, 전기가 접선이 되는 것처럼. 그럭해 가지고 인연이 되는 거지, 인연이 되려야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맞부딪쳤을 때에 만약에 내 마음이 넓고 착하고 그러면은 그 꽃의 마음도 내 마음 속과 같이 동일하게 되죠. 그래서 무명을 벗고 다른 모습으로 화하게 됩니다, 또.

개를 한 마리 놓았다거나 고양이를 놓았다거나, 가정에 놓았다 하더라도 그 가정의 사람이 살고 있는 차원에 따라서 개도 따라가게 돼 있거든요. 그래서 고양이든지 개든지 차원이 높은 집에 인연이 되면은 그 인연에 따라서 무명을 벗고, 또는 그 인연에 따라서 악행을 하는 인연을 만나면은 그냥 그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누적이 될 수 있게끔 악업 선업을 만들고 말입니다. 선업을 짓기는커녕 악업을 더 짓게 되고 그래서, 모든 게 그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되죠. 그렇기 때문에 인연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이런 소립니다.

사람도 나쁜 인연을 만나면은 나쁘게 업보를 짓고 돌아가지만 인연을, 좋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연을 짓는다면 악업이 없어지고 선업이 돼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게끔 돼 있는 거죠. 보세요. 새들이 새 알을 낳는 데도, 또는 개가 개 새끼를 낳는 데도,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도 인연 따라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 않습니까. 개가 사람을 낳을 수 없고 사람이 개 낳을 수 없고, 또는 새가 새 새끼 낳지, 사람 새끼 낳을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깐 인연에 따라서 그렇게 엄청난 문제들이 벌어진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인연이라는 게, 악연이다 생각을 하면 악연이고, 그것이 우리가 수억겁 광년을 거쳐 오면서 항상 남의 탓으로 돌리니까 그런 악연을 짓지 않았겠어요? 그러니까 악연이라고 하지 말고 ‘예전에 몰랐을 때 내 모습 같구나.’ 하고서 ‘모든 거를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하고 거기다 맡길 때에 바로 거기까지 접선이 되고 바로 통신이 돼서 그 마음도 아리땁게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그 악연을 없애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마는 용도에 따라서 어떠한 걸 가리지 말고 모든 것을 내 불바퀴에 넣기만 하면 그 악연이 타 버리고 좋은 샘물이 나와서 우리가 맛있게 먹고 맛있게 쓸 수 있는, 시원하게 쓸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생긴다 이겁니다. 지혜 있고 아주 마음의 발전이 됐다면 아주 영리하게 바꿔서 대치할 수 있는 그런 의견과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데 그 무(無)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바로 우리가 마음으로 짓는 것이 바로 무의 세계에 그 심성으로 하여금 돌아서 현재에 나오는 겁니다, 그게. 마음이라는 건 채찍과도 같고, 다스리는 마음이 엄청난 문제를 낳기도 하고, 바로 엄청난 선덕을 행하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런 소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마음을 가지고도 마음대로 못하죠. 그건 무슨 까닭입니까. 과거에 살면서 내가 악업 선업을 얼마나 지었느냐에 따라서 현재에 나오니까, 자꾸 안에서 푸파거리고 그게 자꾸 등장을 하니까,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하게끔 만들어요, 자꾸.

그래서 어떠한 의식 속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거기에 속지 말고 다 그 자리에 되놔라 이런 소립니다. 되놓기만 해서 안 되는 건 뭐냐 하면은 모두 각자 차원들에 따라서, 그 닥치는 용도에 의해서 모든 것이 벌써 자기가 알고 돌아가잖습니까. 이게 나쁜 의미가 담겨 있다 하면은 나쁜 의미를 거기다 놓고 잘 돌려서 신선한 물로 쓰듯이 신선하게 돌려놓으란 말입니다. 우리가 같은 물건을 가지고 배추가 썩고 아주 요리를 못해 먹을 정도라면 딱 버리고 새 거를 빨리 놓아서 해야 되잖아요. 썩은 걸 놓고도 그것이 성해지기를 바라고 그냥 있다면 그것이 안 되니까, 빨리 썩은 거를 대치해서 거기 놓고 너만이, 썩은 것이 거기서 나온 거니까 새 것도 거기서 나올 수 있다는 문제를 가지고 돌려놓아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마음은 어떻게 보면 생산처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근데 생산처가 좋은 일에 생산처가 돼야지, 언짢은 일에 생산처가 되면은 안 되잖아요. 고거를 가려서 다스리란 말입니다.

계층간 소득 격차가 심한데…
문) 현대 사회는 계층간 소득 격차가 심해 놀고 먹는 부자가 있는가 하면 살기 힘들어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격차를 어떡하면 극복할 수 있을는지요.

답) 모든 사람들이, 부산에서 왔든 광주에서 왔든 대구에서 왔든 서울에서 왔든 충북에서 왔든 어디서 왔든 온 거죠? 가는 길이 있고 오는 길이 있죠? 그런데 오는 것만 알고 되돌아가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가는 길과 오는 길이 두 개가 한데 합쳐서 작용을 해야 할 텐데 작용을 못하는 까닭에, 즉 말하자면 물질계와 정신계가 한데 합쳐져서 작용을 해야 보이지 않는 데 50%에서 보이는 데로 나오게끔 돼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그런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헤어나질 못하는 거고 물질로만이, 물질세계에서만의 관습에 의해서, 그냥 여직껏 살아나온 관습, 인과, 업보, 유전 이런 걸로 꽉 뭉쳐서 돌아가니까 이게 부작용이 나고, 모든 게 이루어지는 데 접근이 되지 않고, 또는 공덕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전체가 같이 돌아가서 이렇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공덕이 하나도 없단 얘기예요. 개별적인 하나의 생각으로서 사니까. 한마음 주인공이다 하는 것도 포괄적인 하나이지 개별적인 하나가 아닙니다.

그리고 마음은 체가 없어서 수만 개를 이룰 수도 있고 아주 하나로 만들 수도 있고 하나도 없앨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정신계의 발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겁니다. 정신계를, 즉 말하자면 자기가 정신계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계 50%에서만 살려니까 길을, 가는 길만 알지 오는 길은 모른다 이 소리에요. 그러니까 그러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엔 없고 거죽의 모든 그 관습에 의해서만 생각을 하게 되지, 정말 진실하게 뿌리에서부터 가지까지, 이파리까지 생각할 수가 없다 이겁니다. 뿌리가 있어 깊이 묻어져야 가지가 생기고 이파리가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텐데 그렇지 못한 까닭이다 이겁니다, 모든 게. 그러니까 이 공부를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이게 그냥 뭐, 이러고저러고 이러고저러고 얘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이 마음 깊은 속에서 스스로 과거에 살던 자기의 영혼의 근본이 발현이 되거든요. 발현이 되면은 현실의 내가 그거와 둘이 아니게 작용을 할 때에 에너지 광이 생긴단 말입니다. 그래서 지 수 화 풍 이 자체가 대두가 돼서 광력 전력 자력 통신력이 재료로 주어져 있다 이겁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래서 모든 사람들한테 주어져 있기 때문에 다섯 가지 오신통이 굴려지는 거예요. 즉 말하자면은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는 거, 보는 게 없이 보는 거, 듣는 게 없이 듣는 거, 또는 남의 속을 아는 게 없이 아는 거, 과거를 아는 게 없이 과거를 전체 아는 거. 이런 것을 이 누진으로 하여금 모든 걸 굴린다 이 소리죠. 그거를 오신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내가 주인공에다, 한마음 주인공에다 죄 놓으라느냐. ‘거기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 거기서만이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을 가져라.’ 이러는 거는 모든 것이 그 숙명통, 즉 말하자면 과거를 전부 아는 게 숙명통이라고 하죠. 숙명통 천이통 천안통 신족통 또 타심통, 이렇게 다섯 가지. 누진통, 이렇게 여섯 가지로 나눠지는데, 과거에 살던 그 인연들이 여기에 모두, 숙명통 이 자체가 전부 악업 선업이 뭉쳐 있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이 나오는 겁니다. 그걸 컴퓨터로 비유하는데 그 컴퓨터에 입력이, 과거에 입력이 돼 가지고 현실에 자꾸 그게 나오는 거지요. 그러니까 나오는 거를 거기다가 되맡겨 놓는다면은 앞서 입력했던 게 없어질 거 아니냐 이겁니다. 새로 넣는 것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새로 또 넣으면 또 앞서 게 없어지고 또 없어지고.

그러니까 거기다 되놔라 이거죠. 거기다가 되맡기고 ‘안되는 것도 거기니까 되는 것도 거기다, 안되게 할 수 있는 법이 있다면 되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을 거다. 그러니깐 거기서만이 해결을 해 줄 것이다.’라는 거를 생각하고 거기다 맡겨 놓아라 이겁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어요. 오늘 저녁에 다, 없는 사람 줘서 당장 내일 아침에 쌀거리가 없어서 밥을 못 먹게 돼도 오밤중에라도 쌀이 들어와요. 그건 무슨 연고냐. 말 없는 데서 무심도, 즉 무심으로써 모든 사람들한테 마음이 오고가는 게 있기 때문에 인연의 끈과 끈이 다 직결돼 있어서 가설이 돼 있는 거예요, 세상이 다.

그러니까 능력이 좀 있어야 모든 거를 놓을 수도 있는 거다 이 소리죠. 그게 능력이 없으면 놓을 수가 없거든요. 발발발발 하고, 당장 없는데 이걸 어떡하면 좋을까, 당장 안되는데 이걸 어떡하면 좋은가 하고 발발발발 하니까 더 안되는 거예요. 이게 사량으로만 야단법석을 하니까. 워낙 보이지 않는 데서 벌써 작용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줘야 되는데, 만들어 주진 않고 자기가 그냥 발산을 하니까 그 말한 발산은 풍지박산이 돼서 없어지고, 귀신 방귀 뀌면 없어지듯이 없어지곤 말아 버린 거죠, 뭐. 그러니까 모든 고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겁니다. 이게 거짓말로 알지 마세요. 거짓말 아니에요.

그래서 이 공부를 하면 돌에 세워 놔도 산다고 그랬어요. 바가지 한 쪽이 없어도 ‘바가지가 없는데 어쩌나.’ 하고, 금방 순간 없으니까. 이건 바가지로 비유하는 거예요. 쌀을 일 바가지가 없으니깐, ‘아이, 바가지가 없네. 이걸 어디다 일지?’ 하고 하는 순간, 생각이 한 순간에 벌써 이게 바가지는 들어오고 있어요.
이렇게 광대무변한 묘법인데도 여러분이 정신에게 기울이지 않고, 자기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을 믿고 자기를 다스리면서 그렇게 거기다 맡겨 놓을 줄 모르고 이렇게 생활을 하니까 뭐, 50% 가는 길밖에 모르는 거죠. 오는 길 50%하고 맞먹어서 이렇게 작용을 해야 될 텐데 그렇질 못하니깐 그런 거 아니겠소? 좀 어설프더라도 열심히, 열심히 자기 끌고 다니는 자기 주인공에다 맡겨 놓고 모든 것은 거기에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거, 안되는 것도 거기니까 되게 하는 것도 거기다라는 거를 꼭 믿으셔야 합니다.

남은 인생 지혜롭게 살고 싶어요
문) 저는 정년퇴임하고 조용히 집에 있으면서 저를 돌아다보는 시간을 가져보곤 합니다. 지금까지는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가끔씩 크고 작은 문제들도 있었지만 크게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 살아온 것 같은데 가족들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 좀 더 지혜롭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답) 여러분이 어느 가정으로서 이렇게 한 모임을 가지고 한 식구라고 사는데요, 언제 적에 한 식구로 살았습니까? 영원합니까, 그게? 한 철 사는 겁니다, 한 철. 우리 스님네들이 한 철 나가서 살고 한 철 또 들어오고 이러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한 철, 이게 한 철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한 철 이 집에서 모여서 살다가 또 헤어졌다가 다른 데 가서 또 한 철 삽니다. 그러니 네 부모 내 부모가 어디 따로 있습니까? 통틀어 본다면 네 부모 내 부모, 내 자식 네 자식이 따로 없어요. 또 그거보다 더 크게 본다면 사생이 따로 없단 얘기에요. 너무 모습을 바꿔 가면서 진화돼서 화해서 자꾸자꾸 돌아가니까요. 그러니 내가 위대하고 잘나고 조건 좋고, ‘내 이렇게 사니까 이만하면 만족해.’ 이러지마는 그것도 틀린 거예요. 그것도 한 철이니까요.

그래서 인생은 한 철이다. 나그네 한 철. 인생은 나그네의 길. 이것을 한 철이라고 보죠. 한 철이라고 하는 데서 볼 때는 여러분이 전부 나그네의 길이에요, 이게. 무슨 어디 내 남편 내 자식 이거 착 두지 마세요. 착을 두면요, 더 외려 걸려서 법망에 걸리고, 레이더망에 걸리면 가지 못하죠? 자꾸. 그렇듯이 유의 세계 무의 세계를 넘나다닐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옴치고 뛰지도 못해 가지고 자꾸 걸려 가지고 되는 노릇이 없거든요. 그러니 모든 자손들과 남편과 아내 모두, 어떠한 일이 앞에 닥친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주인공밖에는 해결 못하는 거, 주인공이 다….’ 주인공은 다 같거든. ‘주인공이 다 끌고 다니는 건데, 주인공 운전수가 다 끌고 다니지 내 어찌 그것을 맘대로 하랴. 주인공밖에는 해결 못한다.’ 하고 믿으면서 딱 놔 버린단 말입니다. 그래야 이것이 발이 묶이지 않으니까. 이 마음 자체가 체가 없으니까 발이 묶이지 않는 거예요. 그 마음으로다가 육신을 잘 끌고 다니는 거다. 여러분이 어쩔 수가 없잖아요?

잘못되는 것도 마음으로 지어서 잘못되는 거죠. 내가 꼭 저걸 괜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어 가지고는 돈을 왕창, 돈 쪼끔 탄 거 가지곤 왕창 들여 가지곤 홀딱 집어먹고선 죽겠네 살겠네 하거든. 그것도 자기 마음이에요. 그것이 너그럽게 볼 수 없는 그런 눈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거죠. 육안으로만 봤기 때문에. 심안을 통해서 봤더라면 그것이 그렇지 않을 건데, 그게 그렇게…. 가난한 것도 그렇고 모두가 전부 보면 자기 탓이에요. 그 억지로 못해요.
그러니 우리가 그렇게 그 계발을 해서 내 마음에 놓는 공부를 하게 되면 그 다섯 가지가 계발이 된다. 그 다섯 가지가 계발이 되면 오신통을 그대로 여여하게 할 수 있는 자유권을 얻을 때 그때 다시 체험을 하면서 또 보임을 한다.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자연적으로 우주 법계가 다 공통점이 될 수 있어요. 우주 법계가 다, 우리네 몸뚱이에 그 법계가 있는 거와 같이, 법망이 있고 법계가 있고 그렇듯이 그냥 전부 통해요. 즉 말하자면 그 통신망을 넘나든다는 얘기죠. 통신, 이 천체 통신. 통신이 잘되니까 심안으로도 밝게 볼 수 있고 또 그게 통신이 되면 모습 없는 모습들이 천이, 신족 이런 거, 타심 숙명 이런 것이 다 발로가 돼서 동시에 용도대로, 미리미리 그냥 이렇게 한생각이 나면 그냥 그 즉시 찰나의 살림살이죠, 그래서. 그대로 그냥 바깥으로 나오는 현실이에요.
불법은 생동력 있는 현실이지 죽은 게 부처님 법이 아니라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심성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고 천체물리학이고도 할 수 있죠. 아니 학술이 들어가도 되죠, 전체니까. 그러니 인간으로서 태어났으면 이 도리를 알고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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