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제자 탄허에게 보낸 답서 (1)

탄허스님 입산 전 문법(問法)서신
2년 동안 30통 주고받아
2통 만 전해져, 그 중 첫 편지
원본 없고 탄허스님 외워 전한 것
불법 배우고자 한 탄허 칭찬
“도는 일상 속에 있는 것,
세속에서도 공부할 수 있어”

제자 탄허에게

보내온 글을 자세히 읽어보니 족히 도(道)에 향하는 정성스러움을 알겠노라. 나이가 젊고 기운이 넘쳐서 일을 함에 좋은지 나쁜지도 모를 때에 능히 장부의 뜻을 세워 위없는 도를 배우고자 하니, 숙세(宿世)에 심은 선근(善根)이 깊지 않으면 어찌 능히 이와 같으리오. 찬탄하고 찬탄하노라.
그러나 도(道)는 본래 천진(天眞)하고 정해진 장소가 없는 것이니, 실로 따로 배울 게 없네. 만일 도를 배운다는 생각이 있다면 문득 도를 모르게 되는 것이니, 다만 그 사람의 한 생각이 진실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 또한 누가 도를 모르리오 마는, 알고도 실천을 하지 않으므로 도에서 스스로 멀어지게 되는 것이네.
예전에 시인 백락천(白樂天)이 조과선사(鳥?禪師)에게 도(道)에 대하여 물었더니, 조과선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하였다네. 그러자 백락천이 말하기를, “그런 말은 세 살 먹은 아이라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라고 하였네. 조과선사가 말하기를, “세 살 먹은 아이라도 비록 말은 할 수 있지만, 팔십 먹은 노인이라도 실천하기는 어렵다.”고 하셨으니, 이 말은 비록 별것 아닌 것 같으나 그 가운데 심오한 도리가 있네. 심오한 도리는 원래 별 것 아닌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네. 굳이 시끄러움을 피하여 고요한 것을 구하거나 속됨을 버리고 참됨을 구할 필요가 없네. 항상 시끄러운 데서 고요함을 구하고 속됨 속에서 참됨을 찾아서, 구하고 찾음이 없는 데 이르면, 시끄러운 것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요, 고요한 것이 고요한 것이 아니며, 속됨이 속됨이 아니요, 참됨이 참됨이 아닌 것이네.
폭지(爆地), 졸지(猝地)에 일체 생각이 다 끊어질 것이니, 이러한 시절을 무어라고 말해야 되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한 사람이 허(虛)를 전함에 만 사람이 실(實)을 전하는 도리(一人傳虛 萬人傳實)라는 것이네. 그러나 간절히 바라노니, 잘못 알지는 말게나. 한 번 웃노라.
한 암


이 편지는 한암선사가 제자 탄허스님에게 보낸 답서이다. 탄허스님 나이 20세 때로 이 때는 탄허스님이 아직 입산하기 2년 전이다. 다시 말하면 탄허스님은 입산하기 2년 전부터 한암선사와 서신을 통하여 문법(問法)했던 것이다. 2년간 약 30통 가량 왕래했다고 하나 남아 있는 것은 두 편에 불과하다. 이 편지는 그 가운데 첫 편지이다.
한암스님은 무상도(無上道, 佛法)를 배우고자 하는 탄허스님의 기개를 칭찬한 다음, 도(道)는 고상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있으므로, 시끄럽다고 조용한 곳을 찾거나, 속(俗)을 버리고 진(眞)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진속(眞俗)이 둘이 아니라는 것[眞俗不二]이다. 그러므로 시끄러운데서 고요함을 찾고 속(俗) 속에서 진(眞)을 찾아서 더 이상 찾을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면 그때가 진정으로 진망(眞妄)을 떠난 참된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불법의 진리는 고상한 데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세속에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으므로 입산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라는 뜻도 들어 있다. 또 깨달음이란 졸지, 폭지 즉 한 순간에 깨닫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일인전허 만인전실(一人傳虛 萬人傳實)이란 원래 불법이란 공(空)으로서 아무 것도 없는 것(虛)인데, 한 사람(부처님)이 있다고 전한 결과 만인이 그것을 실(實)로 전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불법(佛法)의 위대성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금강경에 “無有定法 名아욕다라삼먁삼보리”라는 말처럼 있다고 한다면 관념의 집착이 된다.
이 편지는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 제자 탄허스님이 외우고 있다가 화엄경 특강 때 알려 준 것이다. 또 이 편지는 언제 보낸 것인지 날짜가 적혀 있지 않다. 그런데 탄허스님 법어집인 <방산굴법어> 연보 1932년에 보면 “이 해 음력 8월 14일에 처음으로 방한암스님에게 서신을 보내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한암선사의 이 답장은 1932년 9월경 보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