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경봉(鏡峰)스님에게 답하는 편지 (2)

경봉(鏡峰)스님에게

삼가 서찰을 받고서 법체(法體)가 항상 만복하심을 알았습니다. 우러러 위안이 되고 송축합니다. 통도사 종주(宗主, 조실)로 와 달라고 하신 뜻은 잘 알았습니다만 나는 병이 깊고 몸은 약하여 겨우 허망한 몸을 지탱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팔십에 가까운 늙은 사람이 종주(宗主)로 간다면, 그것은 너무나 망령된 행동이고 큰 수치입니다. 뒷방이나 한 곳 비워 두시면, 남은 목숨이 있을 때에 함께 모여 정담(情談)이나 나눌 터이오니, 우선은 이곳(상원사)에서 머물고자 합니다.
탄허(呑虛)가 학식과 문필이 나보다 천만억 배나 더 뛰어나고, 또 16,7년 간 나와 함께 고생하며 정진하였사오니, 수도원에 임시로 수좌(首座)로 두면, 혹 서로 도움이 될 듯도 합니다. 해량(海諒)하여 처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종주(宗主)는 언제라도 주지화상(경봉스님)이 마땅히 맡아야 하오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정신이 흐려 이만 줄이옵고 답서의 예를 갖추지 않습니다.
1949년 8월 15일
제(弟) 중원은 답서를 올립니다.


이 편지는 한암선사(漢岩禪師)께서 경봉(鏡峰)스님에게 보낸 편지로 1949년 8월 1일에 보낸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당시(1949년) 통도사 주지로 있는 경봉스님께서 통도사에 해동수도원을 설립함과 동시에 한암스님을 종주(宗主)로 모시고자 청했다. 실제 당시 통도사에 해동수도원이 설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에 대하여 한암선사는 80에 가까운 나이로 통도사 종주로 간다는 것은 너무나 망령된 행동이고 큰 수치라는 말로 극구 사양하고 있다. 뒷방이나 한 칸 비워 두면 영생을 함께 모여 정담(情談)이나 나누면서 지내자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옛 큰스님들은 조실 자리도 한사코 사양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알 수 없다.
한암선사는 그 대신 내 제자 탄허(呑虛)가 학식과 문필이 나보다 더 뛰어나니, 수도원의 수좌(首座, 조실 다음 직책)로 두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여 제자 탄허스님을 추천하고 있는데, 제자에 대한 배려가 매우 깊다. 당시 한암선사의 연세(年歲)는 열반(1951년)하기 2년 전으로 74세였고, 경봉스님(1892~1982)은 58세였고, 탄허스님(1913~1983)은 37세였다.
이 편지에는 연도가 없다. 그러나 경봉선사 일기를 고증한 결과 1949년임이 밝혀졌다. 한암선사는 경봉선사보다 16세 연장(年長)임에도 불구하고 ‘사제(舍弟, 師弟)’라고 낮추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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