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세상보기- 방영준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 방영준 성신여대 명예교수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이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by the people'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하고 허리 굽혀 다가오는 후보자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허세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이번 6.4 지방선거는 참으로 침울하게 치렀다.

세월호의 침몰은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허상이 낱낱이 노출된 참담한 사건이었다. 국민들은 슬퍼하고 분노했다. 동시에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공직자와 정치인을 비롯한 소위 지배 엘리트에 대한 절망도 극에 달했다. 대한민국호의 ‘평형수’의 부재는 결국 세월호의 침몰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지방자치호의 선장과 항해사 등을 새롭게 뽑았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절망 속에서 지방선거가 끝났고, 지방자치의 새로운 배를 띄우고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그만큼 선장과 항해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 세월호의 침몰과정에서 보여준 선장과 항해사의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행위는 되새기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자주 회자되던 지방자치 단체장의 비리가 새삼스레 이와 연결된다.

한국의 정치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해왔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우리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미국의 교육사회운동가인 파커 파머(P.J. Palmer)는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으로 국내출판)”에서 이 시대의 정치를 ‘비통한 자들의 정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 마음을 찢어지게 만드는 정치를 보면서 민주주의의 치유를 ‘마음수행’의 가능성에서 찾고 있다. 즉 민주주의의 성패를 마음 수행에 두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물리적, 제도적 인프라보다 귀중한 것이 민주적인 정의사회를 창출하는 ‘마음공부’라는 것이다.

흔히 마음공부에 몰두하는 사람은 정치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고민보다는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을 하는 자로서 속세에서 먼 사람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파머는 내면과 외면을 분리시키는 생각 자체가 지금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뿌리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온갖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음이 부서지고 깨진다. 당위와 현실의 비극적 간극 사이에서 비통한 자들이 된다.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이 비통함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느냐에 있다. 여기서 마음수행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마음수행의 핵은 ‘부서져서 흩어지는 것(broken apart)’것이 아니라 ‘부서져서 열리는(broken open)’ 마음이 되는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가슴 아프게 우는 것이리라.

지금 우리의 마음은 부서지고 깨져 있다. 부서져서 수천 개의 조각으로 흩어진다면 결국 우리는 분노와 파멸의 늪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부서지고 깨지면서도 흩어지지 않고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안을 위대한 능력으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희망의 마당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부서지고 깨지면서 열린 마음이 되는 길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각종 번뇌와 모순을 긴장감 있게 포용하면서 자비스럽게 바라보는 것이리라.

정치란 권력을 사용하여 인간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인간적인 기획이다. 부서지고 깨지면서 열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보다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만들 지혜와 용기를 생성시키는 원천이다. 비통한 사람들의 마음수행은 결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와 민주주의의 ‘평형수’이다. 그래서 비통한 사람들의 이번 선거는 범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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