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7월 13일까지

연꽃좌대 빼어난 도동 출토 약사불

곡선의 美 황룡사지 약사불 등

중생구제 의미 담은 작품 한자리에

 

▲ 금동약사불입상, 경주 황룡사지 출토(삼국시대 신라 7세기)

약사불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열두 가지 큰 서원(十二大願)을 세웠다. 질병을 치유하고 수명을 연장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원이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약사불은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부른다. 중생의 아픔을 치료해주는 의사 부처님이란 뜻이다. 나아가 어리석음을 뜻하는 무지(無知)의 병까지 고쳐준다고 했다. 때문에 약사불은 치유와 염원의 상징이 되었다. 병을 낫게 하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약사불에 대한 신앙은 널리 퍼졌다. 그리고 수많은 약사불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7월 13일까지 ‘치유와 염원의 상징, 약사불의 세계’를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1층 로비에서 연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모두 튼튼히 오래 사는 것을 바란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치유)’이란 말이 이를 반영한다. 오늘날처럼 의료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종교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의 경우 그 대표적 신앙의 대상으로 약사불이라는 부처님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약사불의 의미와 시대적 양식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전시 취지를 전했다.

약사불은 한쪽 손에 약이 담긴 그릇을 상징하는 물건을 들고 있는데, 뚜껑이 있는 합(盒)이나 뚜껑이 없는 단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때로는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둥근 구슬인 보주(寶珠)로 표현되기도 한다. 7세기에는 오른손에 보주를 들고 서 있는 약사불이 유행하였으며, 8세기 이후에는 서 있는 약사불과 함께 앉아 있는 약사불도 많이 조성됐다. 앉아 있는 약사불의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나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모두 왼손 바닥 위에는 약그릇이 올려져 있어 다른 불상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경주 황룡사지(삼국시대 신라 7세기) △경주 진현동(통일신라 8세기) △대구 도동(통일신라 8세기) △경주 월성 방내리(통일신라 9세기) 등에서 출토된 다양한 금동약사불입상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대구 도동 출토 통일신라 8세기 금동약사불입상은 고요히 명상에 잠긴 듯한 차분한 얼굴 표정이 보는 이에게 편안한 인상을 준다. 신체의 표현도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빼어나며 발아래의 연꽃대좌가 잘 남아 있다. 연꽃대좌는 크게 3단으로 이루어졌다. 맨 아래쪽 받침에는 흔히 안상(眼象)으로 불리는 장식 구멍이 뚫려 있다. 그 위로는 끝이 살짝 올라간 넓적한 연꽃잎이, 다시 그 위로 단정한 모양의 연꽃잎이 각각 8개씩 새겨져 있다. 연꽃잎의 표현이 과장되지 않아 통일신라 불상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경주 황룡사지 출토 삼국시대 7세기 금동약사불입상은 왼손에 약그릇을 든 일반적인 약사불입상과 달리,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둥근 보주와 같은 지물을 들고 있다. 왼쪽 다리에 힘을 빼서 무릎을 굽히고 오른쪽 엉덩이를 내민 자연스러운 곡선 자세는 삼국시대의 불입상에서는 보기 드문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불상이었음에 분명하다. 우리나라 약사불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도 평가되고 있다.

경주박물관 서유리 학예연구사는 “전시 되는 약사불들은 높이 10cm 안팎으로 작은 편에 속한다. 당시에 이 약사불들을 어떤 방식으로 모셨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만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집 안에 모시며 소원을 빌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054)740-7540

▲ 금동약사불입상, 대구 도동 출토(통일신라 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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