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의 길을 가다’- ⑩ 만해와 서대문 형무소 下

3.1독립 운동 주도 현장서 체포
일제 취조 중 ‘조선독립…’ 저술
일필휘지로 써내려 간 옥중 선언문
조선 독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 담겨
검사 “주장 정당하나 제국에 위배”
‘독립신문’ 제25호에 전문 개재

▲ 서대문형무소의 옥사 내부.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만해 스님은 누구도 흉내 못 낼 장문의 선언문을 썼다.
문: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은 어떠한가.
답: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국가의 흥망은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나라든지 제가 스스로 망하는 것이지 남의 나라가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략〉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압박만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행복의 증진도 받지 않고자 하느니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라. 4천년이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언제까지든지 남의 노예가 될 것은 아니다. 그 말을 다하자면 심히 장황하므로 이 곳에서 다 말할 수 없으나 그것을 자세히 알려면 내가 지방법원 검사장의 부탁으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이라는 글을 감옥에서 지은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갖다가 보면 다 알 듯하오.

1920년 9월 25일자 〈동아일보〉에서 전하는 ‘한용운의 공소 공판기’ 중 일부이다. 공판기에 나타는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무엇일까.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만해 스님이 1919년 7월 10일 옥중에서 일인 검사 총장의 요구에 의하여 작성한 옥중 독립 선언문이다. 옥중에서 아무 참고서적 하나 없이 53장에 걸친 조선독립에 대한 선언을 남긴 것이다.

스님은 “조선민족이 이미 실력을 갖췄고, 군국주의를 내세운 독일의 1차 세계대전 패망과 민족자결주의를 앞세운 세계정세를 살펴보면 조선민족이 독립을 선언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갖췄다” 등의 내용을 갈파했다. 다시 말해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만해 스님의 독립담론이 구체적으로 용해된 저술인 것인 것이다.

이 선언문은 △개론 △조선독립 선언의 동기 ①조선 민족의 실력 ②세계 대세의 변천 ③민족 자결 조건 △조선독립 선언의 이유 ①민족 자존성 ②조국사상 ③자유주의 ④대세계의 의무 △조선 총독 정책에 대하여 △조선독립의 자신 등의 목차로 구성돼 있다.

깨알같이 써내려간 스님의 글을 모두 읽은 일본 검사장은 그만 고개를 떨구었고, 조선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당위성, 세계정세까지 꿰뚫어보는 스님의 안목과 논리 정연함에 말문을 잇지 못했다는 기록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이에 대한 기록은 현재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에도 실려있다.

“이 글월은 만해 스님이 기미년 3.1운동 사건으로 투옥돼 옥중에서 일인 검사의 심문에 말로는 다 대답할 수 없다고 옥중에서 글로 대답한 옥중답서(獄中答書)로서….〈중략〉 일인 검사는 스님의 답변서서를 보고 탁월한 인격과 고매한 사상에 감복하고 경의를 표하면서 답변은 정당하나 일본 제국주의 방침이니 어쩔 수 없다고 밝힌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독립선언문보다 그 내용이 더욱 심각하고 일본 제국주주의 침략 근성을 정곡으로 찔러 주는 글월입니다.” 〈대한불교, ‘한용운 선사 옥중기, 조선독립의 서’(1969년 3월 2일)〉

▲ 〈독립신문〉에 실린 만해 스님의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독립신문 개재… 임시 정부 기초다져
이후 선언문은 불교청년 김상호에게 전달돼 〈독립신문〉 제25호(1919. 11. 4) 3, 4면에 개재된다. 개재 당시 제목은 ‘조선독립 감상의 대요’였다.

서슬이 퍼런 제국 식민지 시절, 일제 체제를 비판하고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갈파한 선언문이 어떻게 상해 임시 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에 실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대략적인 해답은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의 논문 ‘한용운의 조선독립의 서 연구’에서 만날 수 있다.

김광식 교수는 논문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가 독립신문에 전해진 과정을 1971년 발간된 〈나라사랑〉(만해 스님 특집호)와 만해 스님의 상좌 춘성 스님의 구술에서 찾는다.

먼저 〈나라사랑〉에서 기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스님은 옥중에서 기초한 이 선언문의 전문을 작은 글씨로 휴지에 적어 접어 종이 노끈을 만들어 형무소로부터 차출되는 의복 갈피에 삽입, 간수의 감시를 피해 유출시켰다. 이렇게 유출된 것이 원문 그대로 등사돼 만주 방면의 독립운동단체로 전해진 것이다. 이를 전한 것은 춘성 스님과 불교 청년 김상호다. 춘성 스님은 당시 상황을 이 같이 기술했다.

“그때 나는 주로 그분의 사식 따위가 아니라 바깥의 공기라든지 그분이 몰래 써준 글을 밖으로 가져오는 일이 중요했어요.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를 끈을 돌돌 말려서 내손으로 받아왔지.”

김광식 교수는 춘성 스님의 증언으로 스님이 원고를 받아낸 장본인이지만 이를 내외에 알린 것은 김상호라고 설명했다. 김상호는 항일단체의 성격을 가진 〈조선불교청년회〉의 발기인이자 회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상해임시정부와 국내 불교계를 연결하는 통신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단순한 연락이 아니고 통신을 통해 독립운동의 정보, 군자금 전달, 불교계 인사들의 임정 망명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독립운동 루트였다.

김광식 교수는 “춘성 스님이 만해 스님의 상좌이기 때문에 원고를 받아 김상호에게 전달하고 김상호는 자신이 관여한 임시정부를 루트를 이용해 내외로 전파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만해 스님의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가 내외로 전파된 것은 당시 임시 정부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힘이 된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 서대문형무소의 옥사 전경. 지금은 교육관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절에는 항일 운동가와 민주화 인사들이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다.
민족 독립의 기개를 밝힌 선언
일본인 검사장이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게 만든 장문의 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만해 스님의 일생일대의 대선언은 가장 먼저 자유와 평화에 대한 주장으로 시작한다.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자유를 득하기 위하여 생명을 홍모시하고 평화를 보하기 위하여 희생을 감수당하니 차는 인생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일지로다. 자유여 평화여 전 인류의 요구일지로다. 전 세계를 대표할 만한 군국주의는 서양에 독일이 유하고, 동양에 일본이 유하도다. 침략 또 침략 극악 또 참극의 군국주의는 독일로써 최종막을 연하지 아니하였는가. 정의 인도의 승리요, 군국주의의 실패니라.”

이에 대해 전보삼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장(한국박물관협회장)은 “만해 스님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를 통해 ‘제국주의 침략주의는 인간의 참다운 생명을 희생시키는 불행을 초래했고 서양의 독일과 동양의 일본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하고 있다”면서 “‘조선 민족이 독립을 하려고 함은 자기가 스스로 살려는 본능이며 누가 이것을 억제하거나 방해할 것이냐’고 반문하며 당위성을 되짚었다”고 설명했다.

‘조선독립 선언의 동기’에서는 △조선민족의 실력 △세계 대세의 변천 △민족자결의 조건을 들어 그 당위성을 논설하고 있다.

만해 스님은 조선이 자존성이 강하고 독립국가로서 역사와 전통이 있어 능히 현대 문명을 받아들일 능력이 충분하며, 강대국들에게도 미래는 침략적 제국주의는 멸망하고 자존적 평화주의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조선독립 선언의 이유’를 통해서는 민족의 자립과 끈질긴 투쟁, 그것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독립의 원리임을 분명히 밝히며, 민족 자결은 세계 평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강조했다.

또한 “민족 자결주의가 성립되지 못하면 아무리 국제 연맹을 체결해서 평화를 보장할지라도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며 “그러므로 조선 민족의 독립 자결은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요, 또 동양에 대해서는 실로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정세를 정확히 분석해 갈파하고 있다.

이 같이 내용만을 살펴봐도 이 선언문이 당시 정세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민족자결주의 담론을 정갈한 문장으로 기개있게 적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전보삼 관장은 “만해 스님의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 넘쳐나는 독립정신의 원천은 자유 평등 평화로 이어지는 대강령”이라며 “자유는 만유의 생명, 인간 생활의 참다운 목적으로 인식하고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한계로 삼는 만해 스님의 독립정신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극복한 3 1정신의 요체”라고 주장했다.

이어 “만해 스님의 자유주의 정신은 조국 독립으로, 동양 평화로, 세계 평화로 끝없이 지향해가는 만해 정신에서 민족 정신으로 승화됐다”고 덧붙였다.

김광식 교수도 “만해 스님의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스님의 독립정신의 핵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면서 “이 선언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만해 스님의 독립정신과 민족운동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만해 스님의 독립정신의 정수이자 최고봉”이라고 평가했다.

서대문 형무소의 차디찬 감옥에서 어느 누구 하나의 도움없이 자신의 주장을 갈파할 장문의 선언서를 쓸 수 있던 만해 스님의 기개와 지성은 우리 후학들이 되새겨야 할 덕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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