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은 세상 살리는 원천
여성성의 완성은 ‘5씨’ 갖추는 것
(솜씨 맵시 말씨 마음씨 글씨)


생활관 역할 한 여여회
가끔 내 집을 법당으로 삼아 20여 년 동안 지속해왔던 여여회를 돌아보면서 과연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하는 상념에 젖을 때가 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해서 자아를 완성시키는 역할도 했으나 한편으론 여성성을 완성시키는 생활관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대부분 주부들이 와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역할에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보살님은 원이 무어세요?”
“저는 주부로 성불할 거예요. 제 원의 첫째는 가정의 평화입니다.”
가정주부로서 내가 처한 가장 일차적 환경이 가정이라면 가정이 평화로워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들에게 항상 말한 것이 “우리가 여성성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힘은 자신은 물론 가정을 살리고 나아가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원천인데 어떻게 함부로 살 수 있는가. 가정과 남편, 자식을 지키는 것은 오직 오직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일, 이것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일이 수행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미흡하고 부족한 면도 많았다. 그러나 당시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단지 할 뿐이었고, 내 온 몸이 법회를 향해 움직였다. 어디에 가도 찻잔을 보면 저것을 사다가 여여회 식구들에게 차를 대접할 때 써야지 했고, 여름이면 모시방석, 겨울이면 면방석을 만들어서 깔아놓았다.
예부터 한국 여인의 멋은 다섯 가지의 씨(오씨)가 고루 배합되어야 한다고 했고 이 오씨가 완성된 사람이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했다. 씨는 생명의 근원이자 원형이다. 이 근원과 원형이 없이는 어떠한 생명도 존재할 수 없듯이, 여성은 가장 원형적인 솜씨(손재주), 마음씨(마음가짐), 맵씨(몸가짐), 말씨(말), 글(판단력)을 고루 갖출 때 여성성을 갖춘다는 뜻이다.
철학자 안병욱 교수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솜씨, 맵씨, 말씨, 마음씨, 글씨의 오씨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인상적이어서 노트에 메모해 두었다. 내용은 이렇다.
“솜씨는 조직관리를 잘 하는 일, 잘 가르치는 일 등 주어진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이고, 맵씨는 단정하고 깨끗한 인상을 주는 것을 말하며 이는 첫인상을 좌우한다. 말씨는 정확하고 바르며 따뜻한 말을 하는 것이며, 마음씨는 명심(明心)과 온심(溫心)을 가리키는데 명심이란 밝은 마음 밝은 생각, 밝은 음색을 말하며, 온심은 따뜻한 마음, 따뜻한 생각, 따뜻한 음색을 말한다. 글씨는 인물과 교양을 나타낸다 하였으며, 옛날에는 글씨가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 하였다.”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한 성숙한 인간이 되고자 한다면 "5씨의 철학"을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씨는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가정을 행복하게 하며 세상을 훈훈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여여회 식구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솜씨 말씨 맵씨 글씨 마음씨를 오씨라고 한답니다. 여성은 저 오씨에 주의하고 능해야 합니다. 그게 여자의 예요 도며 중생에 수순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다섯 가지에 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을 잘 고르는 것이고 여성성을 지니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여회 회원들은 적어도 이 다섯 가지 씨가 완성된 보살이 되기를 바라며 힘이 닿는 대로 돕고 싶습니다.”
마음씨가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사람의 일생은 마음을 어떻게 닦고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내 마음의 흐름을 수시로 돌아보고, 마음을 아름답게 쓰는 것이 수심과 용심이다. 마음을 알면 만 가지 행을 구비한다고 했다. 행복하고 불행한 것도 마음 하나 먹기에 달렸다고 하니, 내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잘 쓰는 것이 삶의 행불행을 갈라놓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씨 또한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성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으니 조심스럽게 말하고 덕담을 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말씨라는 말은 말에 내일의 씨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가능한 좋은 말. 긍정적인 말, 희망적인 말을 해야 자신의 운명도 그렇게 되어진다. 말은 행동의 시작이요 운명을 좌우한다.
글씨는 마음을 고르고 단정한 글씨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좋은 글을 쓰는 것도 포함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을 움직여서 좋은 쪽으로 변화를 이루게 한다면 훌륭한 보시가 될 것이다. 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없애고 희망을 주는 무외시가 되기 때문이다.
솜씨는 여성에게 있어 음식솜씨, 바느질 솜씨 등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다.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려면 많은 노력과 성실함이 필요할 테니 솜씨가 좋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표증이기도 할 것이다.
맵씨는 단정하고 품위 있게 몸가짐을 가지는 것인데 무엇보다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어야할 것이다. 옷을 품위 있게 입는 것을 맵씨라고 볼 수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이왕이면 단정한 모습 깨끗한 모습,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격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다섯 가지가 안팎으로 안정되게 자리할수록 내가 속한 가족, 시회가 풍요롭고 아름다워진다.
조선시대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昭惠王后)가 1475년(성종 6) 부녀자의 교육을 위해 편찬한 책인〈내훈〉에 의하면 여자가 지켜야할 네 가지 행실이 있다. 첫째는 부덕(婦德)으로, 재질이나 총명보다는 맑고 조용하고 바르게 처신하며 절개를 지키고 부끄러움을 알며 모든 행동에 다소곳한 태도를 임해야 한다. 둘째는 부언(婦言)인데, 항상 말을 가려서 하되 악한 말이나 남이 싫어하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는 부용(婦容)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이나 장식물도 청결하게 하라는 것이다. 넷째는 부공(婦功)으로 쓸데없이 웃고 놀지 말고, 집안살림살이를 잘해야 한다. 길쌈에 전념하고 바느질을 잘 하고 음식을 정갈하게 장만하여 손님을 잘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다섯 가지 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 내용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여성성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긴 적이 있다.
여여회를 운영하면서 언제나 뒤에 서서 공양주를 자처했지만, 저 생각을 늘 마음속에 담아두고 도반들을 대했던 것 같다. 어머니 제자리 찾기가 나의 평생 화두였기에 수행하는 사람 이전에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자비로운 어머니이자 아내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여여회를 운영하면서 한 번도 하기 싫다거나 쉬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경전을 공부하고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동안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이 가장 기쁘게 다가왔다. 한 달에 이 날 하루, 한 번 부처님들이 우리 집에 나툰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사실은 그런 생각도 없이 무심으로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우리 집에 오라고 하면 오겠는가? 전화해서 오라고 하면 오겠는가?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맞았다. 그날만큼은 연화대처럼 집을 장엄하고 대접해주되 그들이 돌아가면 내 삶으로 돌아와 나 자신에 주어진 일에 충실했다.
사람은 일이 있어야 안정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여여회 회원들을 받드는 게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포교라고 생각했다. 포교를 하려면 길에라도 나서야 집에서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우리 모임은 어디를 가도 잘 뭉쳤고, 벌써 반듯함이 드러나 긍지를 느꼈다.
내가 모범이 되어야 하니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했다. 나는 지금껏 시장에 가면서 슬리퍼 한 번 신은 일도 없으며 홈웨어를 입고 간적도 없다. 그곳 또한 나의 우주고 전부이니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인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에게 배울 점만 취했고, 그들이 모두 부처임을 잊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감사의 절을 올렸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