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수 교수(동국대 생사의례학과)-불교아카데미 리더스 클럽 강좌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 웰다잉 분야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삶의 마무리가 정갈해질 때 삶도 같은 수순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 이범수 웰다잉본부 교육위원장은 죽음 준비 교육을 받으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의 방식을 고민하며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4월 불교아카데미 마이 리더스 클럽 강좌 네 번째 시간은 삶을 반추해보는 웰다잉에 관한 시간이었다. >

▲ 이범수 교수는 동국대학교에서 응용불교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전 육군 2군 사령부와 경기도 지방경찰청 경찰관 상담전문위원을 지냈다.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생사의례학과 교수며 을지대 장례지도과 외래강사다. 2009년부터는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여성개발원 웰다잉운동본부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사단법인 지혜로운 여성 감사와 불교상담개발원 자문위원이며 한국불교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아

죽음의 공포 제거하는
웰다잉 교육 통해
삶의 본질 되찾아야

죽음의 불안과 공포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첨단 의료기계에 둘러싸여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면이 죽음이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사람의 수명 역시 줄기세포 등의 발전덕분에 연장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부자연스럽게 여기게 하고 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뭔가를 상실하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죽음은 인간이 가진 가장 심오한 불안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불안으로 시작한 죽음에 대한 심리는 죽음에 다가서면서 충격,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허탈 등의 복합적인 갈래로 변화된다. 다만 이는 차례대로 발현하지 않으며 죽음의 순간까지 희망도 포기하지 않는다.

죽음의 실체
그렇다면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봉하고 의지하는 종교가 수시로 “삶과 죽음은 하나” “이 세상에서 삶을 누리는 순간부터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죽음을 동반자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등의 말을 해도 애써 그를 외면한다.

삶에 초점을 맞추기만 하고 죽음은 애써 외면하고 사는 듯 보이지만 정작 우리는 죽음에 대한 주의를 거둔 적이 없다. 죽음을 부정하는 행위는 자신을 부정하고 망각하는 것이며 중심 자아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우리는 실존과 소멸을 동시에 지닌 유기체라는 한계성을 가지고있다. 따라서 죽음을 외면하고 추방하려는 것은 우리를 부정하고 소멸시키는 행위이며 그러한 삶의 방식에 진정한 삶이 깃들 여지는 없는 것이다. 의미 없이 머물다 가는 방식일 뿐이다.

웰다잉 교육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이반일리치의 죽음>에서 판사 이반 일리치는 그의 삶에 나타난 모든 존재를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이거나 방해가 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 피어난 꽃들과 사람들은 아름다운 존재로 그의 삶에 위치하지 않았다. 그가 맺은 주변과의 사회적 관계는 공허한 것이었고 도구로서의 관계는 그 효용성이 종료된 시점에서 항상 해체돼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당연하고 자명한 일이라고 여겼지만 ‘일반 인간이 아닌 자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내내 나는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산을 오르는 것으로 보였겠지. 그러나 내 삶은 사실은 항상 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을 뿐이었어, …… 그리고 이제 벌써 …… 죽음이야!’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불치병에 걸리면서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 놓여져, 본래(本來)가 아닌 삶이 붕괴하는 것을 보게 되고 공허함에 직면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자신이 추종했던 관습과 사고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허비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처럼 그는 죽음을 통해 본래의 삶을 찾게 되는 것이다.

웰다잉 교육은 이반 일리치가 삶의 끝자락에서 얻을 수 있었던 본래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래서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교육수련 과정이다.

웰다잉의 목표를 이루려면 웰다잉 전문가가 되는 것이 그 지름길이다. 이는 웰다잉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교육과정들이 그 과정을 이수하고 익혀서 해당되는 영역에 접목해 활용하려는 목적이 있지만, 웰다잉 교육은 학습 과정 자체가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웰다잉 교육의 목적은 말기 환자와 사별 유가족의 애도를 돕고, 죽음과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데 있다. 또한 죽음과 연관된 윤리, 법, 의학적인 문제들을 착오 없이 처리하고 장례식 등에 관한 일을 무리 없이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죽음의 개인적인 철학을 탐구한다.
2) 종교가 가르치는 죽음의 해석을 탐구한다.
3) 개인의 죽음을 인식하고 사색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성취한다.
4) 죽음에 대한 극단적 공포를 제거한다.
5) 죽음을 터부시하는 생각을 바꾸게 한다.
6) 임종심리 6단계를 이해한다.
7) 자살을 예방한다.
8) 환자의 알권리를 인정하고 말기 환자와 소통을 배운다.
9) 안락사 등의 죽음에 과정과 연관된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촉구한다.
10) 의학, 법률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11) 장의(葬儀) 역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12) 타인의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슬픔과 괴로움의 과정을 습득한다.
13) 사별의 슬픔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인간적인 성장을 이룩한다.
14) 시간의 귀중함, 가치관의 재정립을 촉구한다.
15) 죽음의 예술을 배워 제3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
16) 사후 생명의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17) 노년의 삶의 질을 높고 풍성하게 만든다.

웰다잉 교육 과정은 죽음에 관한 철학, 종교, 심리, 의학, 임종과 호스피스, 장례, 사별애도, 회상과 영성의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 의사소통 등의 심리 훈련이나 사념처수행, 자애명상, 불교의 ‘사자의 서’에 대한 교육, 죽음명상과 같은 내용도 추가된다.

좋은 죽음(Good Death) 12조

다음은 미국의 리차드 스미스(Richard Smith)가 제시한 좋은 죽음(Principles of a good death)을 위한 조건 12가지이다.

• 죽음이 다가 오고 있다는 것과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 일어나는 일들을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 고통완화와 다른 여러 증상에 대해 적절한 통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 존엄성과 개인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 어디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정보나 전문가의 의견이 어떤 종류이건 접할 수 있어야 한다.
• 영적인 지지나 정서적인 지지가 필요할 때 그것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병원 이외에 어디든지 완화의료적인 돌봄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곁에 누가 있어야 하고 마지막을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한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
•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 자신의 원하는 바가 존중된 사전의료의향서 또는 유언장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삶을 공연히 연장시키지 않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위 조건들은 언뜻 보기에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위 조건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웰다잉 교육에서 제시한 분야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교육 수련이 필요하다.

죽음은 삶의 거울이다. 우리 실존의 타고난 본성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 타고난 이토록 큰 명제를 눈여겨보지 않고 외면하는 것은, 개학일이 정해진 방학 기간에 숙제를 하지 않고 빈둥대는 철없는 아이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금생(今生)의 숙제(宿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웰다잉 하려면 오히려 정말로 투철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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