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처마다 보살 있으니, 중생 모두 깨닫네
주처마다 보살 있으니, 중생 모두 깨닫네
  • 노덕현 기자
  • 승인 2014.05.01 2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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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구법승 - 9. 의상 대사

합천 해인사에 있는 의상대사 진영
화엄종 정수 갖고 신라 귀국
교단 정비·왕권 강화에 기여
통일신라 혼란 막고 화합 이끌어
보살 상주 신앙 불국토사상의 기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사회 혼란을 극복하는 중심사상으로 자리한 불교의 기반을 다진 이가 있다. 바로 ‘해동화엄초조’로 불리는 의상대사가. 의상대사는 화엄종의 교리를 집대성하고, 교단을 정비해 통일신라에서 불교가 융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의상 대사의 아버지는 김한신(韓信)으로 신라의 귀족이었다. 진평왕(眞平王) 47년(625)에 태어난 의상 대사는 일찍이 선덕여왕 13년인 644년 황복사(皇福寺)에서 출가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의상대사의 한자표기를 ‘義湘(의상)’으로 하고 있지만 ‘義相(의상)’이나 ‘義想(의상)’으로 기록되고 있는 문헌도 있다.

화엄종 지엄 스님 회상서 8년 수학

스님은 처음부터 중국으로 유학 갈 것을 결심하였다. 650년 원효(元曉)스님과 함께 현장 스님이 인도에서 새로 들여온 신유식(新唯識)을 배우기 위해 중국의 당(唐) 나라로 유학을 떠나려 했다. 마침내 당나라 유학길에 나서는데 요동까지 갔다가 고구려에 붙잡혀 수십 일간 갇혀있다 돌아왔다. 스님은 문무왕 원년인 661년 당나라 사신을 따라 뱃길로 중국 유학을 떠나 양주(揚州)에 도착한다. 양주의 유지인이 의상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관아에 머물게 하며 풍족하고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의상대사는 이듬해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서 중국 화엄종(華嚴宗)의 2대 조사인 지엄(智儼, 602∼668) 스님에게서 화엄(華嚴) 사상을 배웠다.
종남산 지상사로 가서 지엄을 알현했더니 지엄은 의상을 맞이하여 방에 함께 들어가 〈화엄경〉의 내용을 문답했다고 한다. 지엄 스님은 의상대사를 만나기 전날 밤 꿈을 꾸었으며 그 꿈 내용이 해동(海東)에 큰 나무 한 그루가 나서 가지와 잎이 번성하더니 중국에 와서 덮었는데, 그 위에 봉(鳳)의 집이 있어 올라가 보니 한 개의 마니보주(摩尼寶珠)의 밝은 빛이 멀리까지 비쳤다. 지엄 스님이 꿈에서 깨자 놀랍고 이상스러워서 절을 깨끗이 청소하고 기다리니 의상대사가 왔다고 한다. 지엄 스님은 의상대사를 맞이하며 말했다.

“어젯밤 내가 꾼 꿈에 그대가 올 징조였구려.”

입실을 허락하고 지엄 스님은 의상대사에게 〈화엄경〉의 미묘한 뜻을 은밀한 부분까지 분석하며 전수하였다. 의상 대사는 당나라에 머무르며 지엄 스님으로부터 8년 동안 화엄사상을 공부한다. 의상대사의 나이 38세에서 44세 사이의 일이었다.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을 집약해 표현한 화엄일승법계도
관세음보살 친견 후 낙산사 창건

〈삼국유사〉에는 의상대사가 671년(문무왕 11년)에 신라로 돌아왔다고 전한다. 의상대사가 신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통일신라와 당나라간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삼국유사〉에는 당 나라 군대가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알리기 위해 서둘러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는 신라의 김흠순과 양도 등이 당나라에 갇혀있었다. 당나라 고종이 장차 크게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함에 김흠순 등은 의상대사에게 귀국을 권한다.

의상대사가 귀국해 당의 거병을 조정에 알려 신라는 이를 대비해 국난을 면할 수 있었다. 귀국한 의상대사는 그해 동해 현재 낙산사(洛山寺)가 위치한 한 굴에서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올렸다. 여기서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친견(親見)한다. 스님은 이곳을 낙산이라 불렀는데 이는 서역에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보타 낙가산이 있는 까닭이었다. 이것을 소백화라고도 했는데, 백의대사의 진신이 머물러 있는 곳이므로 이것을 빌어다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의상대사는 재계한 지 7일 만에 좌구를 새벽 일찍 물 위에 띄웠더니 용천팔부의 시종들이 그를 굴속으로 안내했다. 공중을 향하여 참례하니 수정 염주 한 꾸러미를 내주었다. 의상대사가 이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동해의 용이 또한 여의보주 한 알을 바치니 의상대사가 받들고 나왔다. 다시 7일 동안 재계하고 나서 이에 관세음보살의 참 모습을 보았다. 관세음보살이 말했다. “좌상의 산꼭대기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당에 불전을 마땅히 지어야 한다.”

의상대사가 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니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나왔다. 이에 금당을 짓고, 관음상을 만들어 모시니 그 둥근 얼굴과 고운 모습이 마치 천연적으로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대나무는 즉시 없어졌으므로 그제야 관음의 진신이 살고 있는 곳인 줄을 알았다. 이런 까닭에 그 절 이름을 낙산사라 하고, 법사는 자기가 받은 두 가지 구슬을 성전에 봉안하고 떠났다.

스님은 261자의 간결한 명문인 발원문을 남기는데 이것이 바로 〈백화도량발원문 (白花道場發願文)〉이다. 스님은 이어 낙산사를 창건했으며 676년에는 태백산에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고 화엄을 강술해 해동화엄종(海東華嚴宗)의 시조가 됐다. 의상대사가 7언(言) 30구(句) 210자(字)의 도인(圖印)이 바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다. 이후 화엄사상을 전하기 위하여 팔공산 미리사(美里寺), 지리산 화엄사(華嚴寺),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웅주(熊州) 보원사(普願寺), 계룡산 갑사(甲寺), 삭주(朔州) 화산사(華山寺),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 비슬산(琵瑟山) 옥천사(玉泉寺), 전주 국신사(國神寺) 등의 화엄10찰(華嚴十刹)을 짓고 강술과 전교에 힘썼다.

의상대사에게는 3000여 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을 사람들은 10대덕(十大德)이라 불리는 고승들이 배출됐다.

의상대사의 가르침은 귀천의 구분이 없었다. 이들 가운데 지통(知通) 스님은 노비 출신이었으며, 진정(眞定) 스님도 품을 팔아 연명하던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화엄사상은 신라 사회에 널리 확산되었고, 신라 하대(下代)에는 전국 곳곳에 화엄종 사찰이 건립이 이어졌다. 의상의 제자인 표훈(表訓) 스님에게 화엄사상을 배운 김대성(金大城)이 화엄의 세계를 형상화하기 위해 세운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남아 있다.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낙산사 홍련암 모습
적은 저술에도 후대에 큰 영향 미쳐

의상대사는 702년(효소왕 11년)에 78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하였으며, 고려 숙종에게 ‘해동화엄시조 원교국사(海東華嚴始祖圓敎國師)’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의상대사는 중국과 일본 등에도 큰 영향을 끼쳤지만 매우 적은 저술만이 남아있다. 〈십문간법관(十門看法觀)〉, 〈입법계품초기(入法界品鈔記)〉, 〈소아미타경의기(小阿彌陀經義記)〉 등은 전해지지 않으며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백화도량발원문(白華道場發願文)〉,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 〈투사례(投師禮)〉 등 만이 전해진다.
의상대사가 매우 적은 저술에도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을 두고 일연(一然)은 〈삼국유사〉에서 “온 솥의 고기 맛을 알려면 한 점의 살코기로도 충분하다”고 평했다.

〈삼국유사〉에는 의상의 전기(傳記)와 함께 낙산사, 부석사 등의 창건과 관련된 여러 개의 설화가 전해진다. 중국의 송(宋) 나라 때에 찬녕(贊寧)이 편찬한 〈송고승전(宋高僧傳)〉에도 의상의 전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날 경상남도 거창 우두산(牛頭山)의 의상봉(義湘峰)이나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의 의상대(義湘臺) 등의 명칭은 의상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엄사상과 함께 관음·미타신앙 전파

의상대사는 ‘해동화엄초조’라는 별칭처럼 화엄사상의 발전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중국에서는 법장(法藏, 643~712) 스님이 화엄종의 교리를 집대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의상대사는 부석사를 중심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 교단을 세웠는데, 이는 신라의 통일 이후 사회적 혼란 속에서 불교가 왕권강화 및 통합이념으로 자리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의상 대사의 화엄사상은 668년에 저술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 압축돼있는데 각 게송(偈頌)과 배열은 〈화엄경〉의 깨달음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의상대사는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을 펼쳤는데 중도를 강조하며 개체의 독자성과 개체 간의 융합을 동시에 인정하는 특색이 있으며, 중생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衆生隨器得利益)는 가르침으로 나타났다.

또 의상대사는 관음(觀音) 신앙과 미타(彌陀) 신앙을 중심으로 불교를 널리 보급했다. 의상대사의 관음 신앙은 그가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親見)했다는 낙산사(洛山寺) 창건설화에 가장 잘 드러나며 특히 자비(慈悲)로 중생을 보살피는 관음보살이 이 땅에 상주(常住)하고 있다는 ‘관음상주신앙(觀音常住信仰)’을 통해 신라인들의 자존감과 이후 불교가 융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화엄경〉의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에 기초해 신라땅 곳곳에 보살들이 상주(常住)하고 있다는 ‘보살주처신앙(菩薩住處信仰)’으로 확대되며 이는 신라가 불국정토(佛國淨土)라는 ‘불국토사상(佛國土思想)’의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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