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버리면 그 뿐인데 뭐 거기에 붙을 게 있습니까

▲ 그림 최주현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맡겨서 해결을 하도록 하십시오.
죽는 것도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으니까요.
절실히 믿고 물러서지 않는 믿음으로서 하신다면
어떠한 거든지 풀리지 않을 게 없고
자유스럽지 않을 게 없다고 봅니다.

내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데…
문)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만 어떤 문제들에 부딪치면 어느 새 상대 탓을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마음공부의 길이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요?

답) 왜 자기를 자기가 못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용광로에 넣듯이 작업을 그렇게 하라고, 안되는 것도 찰나, 되는 것도 찰나라면 여러분, 고정된 게 하나도 없죠?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가고 오는 것. 고정된 게 하나도 없어요. 모두가 그러니 공했단 얘기죠. 현실로써 그것을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널리. 나와 상대 이 모두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 지구 안에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으로 뭉쳐서 찰나찰나 돌아가고 있나? 한 번쯤은 이런 거 생각해 볼 기회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지혜가 생기죠.
마음은 체가 없어서 가깝고 멀고가 없습니다. 저 우주 전체를 한 찰나에 탐험할 수도 있는 그런 심안의 눈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느냐. 내가 용광로에 놓듯이 전자의, 과거의 업을, 얽히고설킨 인과를, 악업ㆍ선업 지은 것을 다 오는 대로 놓아야 합니다. 전자에 한 것이 현실에 나타나서 여러분이 지금 현실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악업을 지었으면 악업, 선업을 지었으면 선업이 번갈아 가면서 닥치는 겁니다, 용도에 따라서. 그리고 안에서 솟아나오고 바깥에서 오고.

그러니 여러분이 이 도리를 배우지 않는다면, 기복으로만 자꾸 나간다면 공덕도 없거니와 이익도 없고 세세생생에 나를 건질 수 없기 때문에 일체를 다 건질 수 없는 겁니다. 용도에 따라서 내 앞에, 가정에서 살림하고 사회에 나가서 일하고 그럴 때, 용도에 따라서 내 앞에 큰 문제가 생기고 괴로움이 생기고 외로움이 생기고 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놈 또한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그것이 인과로 인해서 나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의식만 없으면 송장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하려 해서 하는 게 아니고 여기, 속에서 수십억 마리가 돌아가면서 선업ㆍ악업 지은 데서 자꾸 발생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일이 말할 게 아니라, 고렇게 놓고, 모든 게 안되는 거, 그렇게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거, 이런 것을 아, 잘돼서 좋은 생각이 나면 ‘아유, 참 감사하구나.’ 이러는 게 그냥 놓는 겁니다. ‘아 참! 내 주인공, 참 감사하구나.’ 하는 게 놓는 겁니다. 또 안됐으면은 ‘아, 내 주인공밖에 해결할 수 없구나.’ 이게 바로 놓는 겁니다, 또. 그런데 뭐가 어렵습니까? 왜 놓을 수가 없다고 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놓고 가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마음으로 자꾸 창살 없는 감옥에 다 자길 넣고 옹쳐매니까, 내가 되풀이하는 겁니다, 지금.

마음이 체가 없어서 우주 전체를 탐험할 수도 있다고 해도 믿지 않는 겁니다. 또 당신 마음으로서 옹쳐매고, 바로 창살 없는 감옥에 뭉쳐 놓고 고게 바로 지옥이라 해도 믿지 않는 겁니다. 왜들 그렇게 믿지 않기를 좋아합니까? 자기를 자기가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습니까? 이 세상에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혼자 왔다 혼자 가요. 내가 얘기 했죠? 다섯 가지는 대신 못해 준다고. 똥누는 거하고 먹는 거, 자는 거, 죽는 거, 아픈 거, 이런 거 대신 못해 줘요.
그러니 여러분이 생활에서 생활선, 그냥 행선입니다. 화두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이 몸뚱이를 화두로 생각하십시오. 화두는 따로 없는 것입니다. 화두를 남한테서 받는 것도 다 화두가 아니요, 내가 그냥 저절로 생겨 있는 이 몸뚱이가 난 것이 태초요 바로 화두인 것입니다. 그러니 내 집도 되고 화두도 되고, 내가 바로 이 세상에 그 인과응보, 악업ㆍ선업이 한데 뭉쳐서 났으니 고덩어리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 고덩어리를 녹여서 벗어나야 되겠다 그러면은 여러분이 부부지간에 살든지, 자식과 부모와 모두 형제와 살든지, 또는 회사의 직원으로 살든지 사장으로 살든지, 회장으로 살든지 학생으로 살든지 어떻게 살든지를 막론하고, 각자 여러분의 탓이지 누구의 탓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모든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고,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그놈이 잘못해 가지고 이렇게 집안이 어수선하고 이렇게 되었다고 그러죠? 자식이 나가서 학생으로서 잘못해서 부모가 성가시면 아이고, 저놈의 자식으로 인해서 그렇다고 그러거든요. 왜? 그놈의 자식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일체가 다 남으로 인해서 잘못된 게 아닙니다.

저 상점에 가 보십시오. 깡통은 깡통대로 깡통전에 깡통끼리 모여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과거로부터, 자기가 지은 대로, 차원대로 만납니다. 자식들의 인연이 바로 그런 것이고 부부지간 인연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깡통끼리 만나야 깡통끼리 그렇게 얼그덩덜그덩 하죠? 소리가 납니다. 넝마는 넝마전에 모여 있고. 그 차원끼리 또 모입니다. 그러니 서로 고생을 하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증오하고 서로 그냥 욕하고 때리고 온통 이년 저년, 이놈 저놈, 이놈의 새끼 저놈의 새끼, 온통 이 야단입니다. 왜 그런가. 그게 아수라장이거든요.
이거 보세요, 세상에 이 몸뚱이로 태어나 가지고 철모를 때 지내 놓고 잘 때 빼놓고 그래 사는 거, 늙었을 때 빼 놓고 몇 푼어치나 산다고 그렇게 얼그렁덜그렁거리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즐겁고 패기 있고 자유스럽게 야! 좋으면 껄껄 웃어 보고…. 그런데 아이, 그거 뭐 보잘것없는 것 가지고도 싸우거든요. 참 이상해요. 내가 가만히 보면요, 조그맣고 아무것도 아닌데 오만상을 찌푸리거든요. 난 우스워 죽겠어요. 아니, 정말 그래요. 어떤 때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요. 어떤 때는 그냥 웃음이 나고요.

오늘도 차타고 오는데 차마다 노랫소리가 흘러나와요. 저게 바로 부처님의 소리가 저렇게 퍼져나오지 않느냐 이겁니다. 부처님의 소리 아닌 게 하나도 없어요. 부처님의 도량이 아닌 데가 하나도 없고, 도인이 없는 데가 하나도 없고. 오는데도 애가 차에 치여 죽지 않으려고 빨리 뛰어가더라고요, 네 살 먹은 게. 아, 이것도 도인이더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글쎄. 아니, 개새끼도 불성이 있는 겁니다. 없다고 해도 없는 것이고 있다고 해도 있는 거고. 사람에 따라, 차원에 따라 그거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겠죠. 그 왜? 여러분이 부처기 때문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개도 보니까 저기서 차가 오는가 안 오는가 요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선 차가 오니깐 탁 서는 거예요. 그리고 차가 지나가니까 쏜살같이 건너가요. 개도 도인이 될 수 있다 이겁니다, 고렇게 하고 있으니. 아이, 그런데 여러분이 부처가 아니라고요?

그러니 부처 노릇을 하시려면요, 오늘부터라도 그 개의치 않은 거 가지고 남의 탓을 하고 성내지 말고, 부부지간에 살면서도 들어오면 “여보! 오늘 당신 얼마나 노고가 많소?” 하고 웃어 주고 그러면 아유, 그냥 죄송하고, 그냥 “당신은 얼마나 그 일하시느라고 저거 했느냐.”고 이렇게 좋게 나오거든요. “당신 뭐, 하루 종일 뭐 했어?” 이러고 들어오면 “아니!” 이렇게 나오죠. “아니, 뭐?” 이렇게. 그러니까 우리가 조그마한 거 가지고 실랑이하다 보면 이렇게 좋은 법을 못 배워요. 그리고 이렇게 좋게 자유스럽게 못 살아요. 먹는 것도 착을 두지 않으니깐 먹을 게 들어와요. 착을 두고 요걸 가지려고 애를 쓰면 자꾸 달아나가요. 돈도 그렇고. 병고도 탁 놓고 ‘아이고, 네가 모두 업보로 인해서, 인과응보로 인해서 뭉친 거니까, 너한테서 나온 거니까 너 알아서 해라.’ 이러고 탁 놓으니까 심심하거든요, 이게. 그러니까 ‘아이고! 난 내 그릇이나 가지고 가야 되겠다.’ 그러고 달아나가거든요.
그러니 여러분도 그렇게 좀 내버리세요. 죽고 사는게 뭐 그리 원통합니까? 예? 내일 죽은들 어떻고, 모래 죽은들 어떠리. 좀 더 살면 어떻고 덜 살면 어떠리. 이렇게 좀 하면 어때요? 아, 그러면은 좋은 밥에 좋은 옷에 화목한 가정에, 자유스런 마음에서 일로 가도 좋고 절로가도 좋고 아,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 이 공부하는 데는 미쳤다는 소리 한마디 듣지 않고는, 이 공분 못합니다. 넘어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 진심으로서, 자기한테 자기가 미쳐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물론 길잡이한테는 지혜를 구하고자 하고 따르는 거고. 자기를 발견하는 거는 자기를 믿어야만이 합니다. 기복으로 자꾸 끄달린다면 만날 여러분들이 귀신 짓을 하기 때문에 귀신이 되는 거지, 여러분이 귀신 짓을 하지 않는데 어찌 귀신이 있겠습니까? 정말 여러분이 진짜로 아주 중심에다 활을 꽂을 수 있다면 진짜로 아니 되는 게 없는 겁니다. 아니 되는 거 없어요.

팔자 운명을 뛰어넘고 싶어요
문) 팔자 운명도 붙을 게 없다 하시지만 어떤 난관에 부닥치면 스스로 내 팔자가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게 됩니다. 내 운명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채찍을 좀 가해 주십시오.
답) 우리가 중요한 게 뭐냐 하면 과거에 살던 것이 입력이 다 돼 있는 거예요, 자동적인 컴퓨터에. 그래서 지금 현실에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왜 나는 나쁜 일도 안 하고 그랬는데 지금 내 팔자가 왜 이렇느냐고 하죠. 내 운명이 왜 이렇느냐고. 과거에 그렇게 입력된 거는 모르고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팔자 운명이 붙을 자리도 없고 병고도 붙을 자리 없고, 그냥 공해 버려서 아무것도 붙을 자리가 없다고 그러는 건 주인공에다 되놓는다면 그 입력이 됐던 것이 다 녹아버리고 없다. 시간과 공간이 초월돼서 비행기 프로펠러 돌아가듯 하는 건데, 진리가 그런 건데 거기 먼지 앉을 자리가 어디 있으며 죄 붙을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들이 말입니다, 의식 자체가 있다 없다 이것이 하상 뒤범벅이 돼 돌아가거든요. 그것이 바로 날 끌고 다니는 지배인이에요, 그 마음이. 그럼 속에 있는 그 수없는 생명체들도 의식이 다 그 지배인의 마음에 의해서 다 움죽거리게 되죠. 그것이 과거에 인으로 인해서 현재로 과로 나온 거거든요. 그래서 거기에서 그렇게 나오는 대로 놓는다면 무슨 병 붙을 자리가 어디 있겠느냐 이겁니다. 언젠가 어느 분이 그렇게 아프다 그래서 병 있다면 내놔 봐라 그랬습니다, 고쳐줄 테니까. 그 소리를 듣고선 뚱하니 갔습니다. 지금 말짱하게 그냥 건강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공부 잘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한마음이라는 것이 모든 게 이 구조를 변경시킬 수도 있고 몸의 상태의 모든 것을, 체질을 바꿀 수도 있고 기를 넣을 수도 있고 기를 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자기죠. 지금 이 오장육부 안에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자기 소임을 맡아 가지고 있습니다. 공장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장이라고 표현한다면. 그 사장이나 회장의 말 한마디면 공장장은 다 듣죠. 그와 같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라는 게 마음내기 이전은 힘이요, 마음을 내는 거는 법이고, 움죽거리는 것은 바로 우리 생활입니다. 모두가 이 행이죠. 그래서 삼합이 한데 합쳐서 일체가 돌아가죠. 그래서 주인공이라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 도리를 알면 그저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삽니다. 강당에만 들어가야 하나님이 있고 예수가 있고, 또 법당에만 들어가야 부처가 있고 법신이 있습니까? 자기가 가는 곳마다, 어디를 가든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자기부터 알아야 한다 이겁니다.

우리가 항상 그저 먹을게 없든 있든 다 먹고 살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걱정을 해서 병이 들고 그러면 외려 식구들한테 고난을 주는 거죠. 그래서 편리하게 생각하고 ‘네 몸에서 병이 났으니까 네 몸에서 고쳐야지 누가 고치는가.’ 의학적으로 지금 내가 볼 때는 70% 부족된다고 봅니다. 70%는 누가 그럼 보충합니까? 모두 각자 마음들이죠.
앞으로 점점 인제 발전이 돼서 이렇게 나간다 해도 인간들에게 인제 체내의 기가 점점 약해지지 더 늘어 나간다고는 볼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두 자기가 자신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 되지 않나. 인간들에게는 뭐든지 주어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주인공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걸 합쳐서 주인공이라고, 한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니 주인공에다 모든 걸 맡겨서 해결을 하도록 하십시오. 죽는 것도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으니까요. 절실히 믿고 물러서지 않는 믿음으로서 하신다면 어떠한 거든지 물러설 게 없고, 낫지 않는 게 없고, 또는 풀리지 않을 게 없고 자유스럽지 않을 게 없다고 봅니다.

한꺼번에 어려움이 몰아닥치니…
문) 관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잘되는 듯했는데 한꺼번에 어려움이 몰아닥치니 관할 생각조차 나지 않아요. 몸은 아픈데 병원비는 감당할 수 없고 건사해야 할 식구들은 많고요.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관하고 믿고 놓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고 관이 잘 안되네요. 제가 바르게 공부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답) 사람이 착잡하고 괴롭고 고독하고 가난하고 이런다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나지만 그렇게 됐을 때에 오히려 공부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을 모조리 그냥 놓는 거죠. 일체 만법을 확보해 돌아갈 수 있는 그 근원에다가. 근원에서 나오는 거니까 근원에다 다 놓는 거예요. 맡겨 놓는 거예요. 아주 그냥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이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없고, 그러니까 요렇게 아주 급박할 때에 내가 공부하기가 쉬운 거예요. 그 급박하게 만들어 놓는 것도 바로, 어떻게 빠져 나갈 구멍이 없이 만들어 놓는 것도 자기 주인공이거든. 자기가 자기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즉 말하자면 자기하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몸도 만들었는데 자기가 살기 위해서 또 공부를 시키는 거라고요. 그래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만들어 놓는 거예요. 그럴 때에 어떻게 하나 이거죠.

그러면은 이 색으로만 생각하고 사량으로 생각한다면 당장 죽겠으니까 내가 어떡하든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죠. 그건 소용없는 거예요. 벌써 자기가 어떻게 빠져나가나 그걸 보느라고 그럭하고 있는 거거든. 사량으로 빠져나가려면 저 창문이 문인 줄 알고, 그냥 나가려고 앨 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급박할 때 모든 걸 다 맡겨 놓는 그것이 바로 이 벽 봇장이 다 없이 그냥 확 뚫어 버리는 그러한 공부 하는 그 과정이에요, 옴패부득 못하게 됐을 때. 사람이 가난치 않고 돈 있고 말이에요, 친구들 많고 아, 내가 그냥 모든 게 풍족한데 내가 뭐 그렇게 답답해서 고놈의 거 그럭하겠어요? 그러니까 아예 그냥 쪼아서 요렇게 옴패부득 못하게 해 놨을 때, 진짜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 앞에는 그냥 요렇게 딱 조이게 만들어 놓거든요. 그래서 요것이 홀랑 껍데기를 벗고서 우주 바깥으로 벗고 나가나, 그렇지 않으면 그 껍데기를 쓰고 껍데기가 빠져나가려고 애를쓰나 그걸 보기 위해서 말이죠. 그러니 참 묘하죠, 모두가 다.

그렇게 되면 언제나 자기 자신이 너무나 참, 모든 생활에 짓밟힌 것 같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 같고 그렇지마는 이 나의 주인은 떳떳하고 도도하기에 그 자기를 그렇게, 유의 법이나 무의 법이나 같이 도도하게 흐르기 위해서 자기를 그렇게 가르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을 못하면 ‘아하! 이건 내가 이렇게 되니깐 아이고,아이고….’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안 되죠. ‘아하! 여기서 그러는구나. 그건 당신이 다 알아서 해. 내가 이 자리에서 앉아서 죽든 나가서 죽든, 병이 들어 죽든 가난해서 죽든 나한텐 아랑곳없다. 네가 끌고 다니는 거니까 알아서 해라.’ 하고 놨을 때에 비로소 주인이자 나를 끌고 다니는 시자가 되니, 이 몸뚱이는 시자라 그랬는데 고만 마음이 주인이자 시자거든. 시자이자 주인이고. 하, 이게 둘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배울 때 주인공이라고 했는데, 주인공이 바로 자기 시자이자 주인공이자 부처자 자유인이죠.

언젠가 원주에서도 그냥 이렇게 미쳐 가지고 날뛰는데 벌거벗고선 그냥 팔을 쩍 벌리고 그냥 온통…. 그거 마음대로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 자체도 자기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성을 잃는 거죠, 다. 자기가 자기 몸뚱이를 뺏긴 거예요, 남한테. 그리고 전자에 그 마음이 미치광이처럼 돌아다니던 거기 때문에 남의 집을 뺏어 가지고도 미치광이 짓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부처님 도법은 자유자재 할 줄 아는, 어느 보이지 않는 사람을 들여다가 내가 써 먹었으면, 부려 먹었으면 그걸 제자리에다 다시 갖다 놓을 줄 알아야 돼요. 그래야 아무 일이 없잖아요. 쓰고는 제자리에 갖다 놓을 줄 알아야 된다 이겁니다. 물건 하나를 내가 갖다가 썼어도 그 자리에 도로 갖다 놔야 돼요. 그랬을 때에 내가 급할 때는 그 자리에서 빨리 집어다가 쓸 수 있죠. 그와 똑같은 겁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어떠한, 지금 의사가 필요할 때에 내가 얼른 집어다 쓸 수 있게끔 돼 있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이 주인공에다 모든 거를 일임해서 그렇게 되면 그 주인공에서 다 그냥 자동적으로 나오게 돼 있습니다. 주인공에서 다 수술도 하고, 거기서 다 벌써 자동적으로 의사가 나오고 간호원이 나오고 거기서 그냥 다 돼요, 자동적으로. 부처님 법은 손도 안 대고 하는 거고, 한계가 있는 것은 손을 대고 하는 것이에요. 손을 대기 이전이에요, 이 부처님 법이. 그렇게 빠른 것인데 왜 걱정을 하느냐 이겁니다. 아직도 착이 떨어지지 못해서 그러죠.
나 하나 버리면 그뿐인데 뭐 거기에 더 붙을 게 있습니까. 욕심도 삶도 아무것도 거기 붙을 게 없어요, 내 몸 하나 던지면. 이따가 죽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가다 죽는다 해도 상관없다. 거기서 알아서 해라. 있다 가다 죽이든지 집에 가서 죽이든지, 조금 더 살다 죽이든지 아주 살려 놓든지, 금방 이 자리에서 죽여 주든지, 죽이고 살리는 건 너한테 달렸다 하고 탁 놔 버려라 합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