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보살의 인과이야기

〈승만경〉 수지 독송하며
여성불자으로서 정체성 정립 기회

나의 모델 승만부인
〈승만경〉은 여러 경전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독송한 경전일 것이다. 읽을 때마다 좋았고, 읽을수록 내가 불자로서 행해야할 서원과 실천이 마음속에 새겨졌다.〈승만경〉을 공부하면서 여성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었기에 〈승만경〉은 특히 여성 불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경전이다. 해인사 종진 스님에게 처음 강의를 들었고, 이후 동국대 고영섭 교수님, 동국대 역경위원인 이인혜 선생에게도 강의를 들었다.
처음〈승만경〉을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우리 선생님(고등학교 은사님)이 내 삶의 롤 모델이었는데. 불교에 입문해서는 승만보살이 모델이다. 이제 승만보살의 삶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승만경〉을 공부하고 나서 승만보살이 정법을 수지, 유포하고 대중들과 함께 하며 상담사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서 승만보살과 같은 삶으로 회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요즘도 매일 일과수행으로 승만보살 10대원을 읽고 있다.
〈승만경〉을 일컬어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勝曼獅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이라 한다. 승만부인이 일승의 대방편을 널리 사자후하는 경이라는 뜻이다. 승만부인은 유마거사와 더불어 재가 불교, 즉 출가를 하지 않은 일반불자라도 세속의 삶을 영위하면서 성불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실례를 보여주고 있어서 재가 여성불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경전이다.
승만은 산스크리트어 슈리말라(SRI MALA)를 음역한 말로, ‘아름다운 꽃다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승만보살의 아버지는 중인도 코살라국 사위성 파사익왕인데, 성장해서 아요디아국의 우칭왕과 혼인하여 일국의 왕비가 된다.
어느날 파사익왕과 말리왕비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쁨에 넘쳐 총명한 딸인 승만에게 가르침을 전해주겠다고 결심하고 불교를 믿을 것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받은 승만은 결국 부처님을 찬탄하기에 이른다. 그때 부처님께서 출현하여 그녀가 장차 보광여래(普光如來)가 될 것임을 수기한다.
“여래의 참된 공덕을 찬탄한 인연으로 부인은 한량없는 미래에 천상과 인간세계에 자유자재한 몸이 될 것이요. 어느 때, 어느 곳에 있더라도 여래를 볼 것이며, 아승지겁 이후에는 붓다가 될 것이니, 그때의 이름은 보광여래라 할 것이오.”
이 말을 듣고 승만은 열 가지 서원을 세우게 된다.

승만보살 10대원
1.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받은 계율에 대하여 범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2.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모든 어른들에 대하여 오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3.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모든 중생에 대하여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4.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다른 사람의 모습이나 가진 것에 대하여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5.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 내 몸과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하여 인색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6.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제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모으지 않으며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중생을 성숙시키는 데 쓰겠습니다.
7.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자신만을 위해서 사섭법(四攝法)을 행하지 않겠습니다. 애착하지 않고, 싫증내지 않고, 걸림 없는 마음으로 중생을 받아들이겠습니다.
8.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고독한 사람, 갇힌 사람, 병든 사람 등 괴로움에 처한 중생들을 보면 잠시도 외면하지 않고 반드시 편안케 하겠습니다.
상황에 맞게 이로움을 주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다음에 떠나겠습니다.
9.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동물을 잡거나 기르는 등의 옳지 못한 행위와 계를 어기는 것을 보면 절대로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힘을 얻었을 때 이런 중생을 보면 그때마다 막을 일은 막고 받아들일 일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야만 가르침이 오래도록 머물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이 오래도록 머물게 되면, 좋은 길로 가는 사람은 많아지고 나쁜 길로 가는 사람은 줄어들어, 여래께서 굴리신 법륜이 점점 더 잘 굴러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을 때까지, 정법을 항상 몸에 지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가르침을 잊으면 대승을 잊는 것이며, 대승을 잊으면 바라밀을 잊는 것이며 바라밀을 잊으면 대승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승에 굳건한 마음이 없는 보살은 정법을 받아들일 욕구도 없고 취향에 따라 들어갈 능력도 없어서 범부의 경지를 뛰어넘는 일을 영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와 같이 한없는 잘못을 보며, 또한 미래에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일 보살마하살들의 큰 복덕을 보기 때문에 이 10대원을 세웁니다.

다문(多聞)이면 지혜가 증가하여 성불하리란 서원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경전을 읽는 것도 많이 듣는 다문에 속하는데, 마음속에 스며들도록 지속해서 읽다보면 저절로 실천하게 된다. 그래서 경전을 사경(寫經)하고 법문을 듣고 또 듣는 것이다.
도덕적인 삶을 살며, 어른들을 공경하고, 화를 내거나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겠다는 내용은 일상생활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다. 나에게는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인색한 마음을 갖지 않고 베풀 것이며, 나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모으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풀겠다는 내용이 깊이 다가왔다. 승만보살이 세운 10가지 큰 서원은 오늘날 승만의 후예들을 늘려가며 여성불자들에게 자긍심을 키워주고 있다. 나 또한 하루도 빠짐없이 이 서원을 외우며 실천에 옮길 것을 다짐하고 있다.
승만보살은 이와 같은 열 가지 서원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부처님께서는 증인이 되어주기를 부탁한 뒤 다시 3대 서원을 세우는데, 정법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정법을 알리기 위해 몸과 마음과 목숨, 재산을 아끼지 않고 바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고 감명 깊었다.

첫 번째, 진실한 서원으로 끝없이 가없는 중생들을 편안하고 안온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 선근의 인연으로 태어날 때마다 정법의 지혜를 얻겠습니다.
두 번째, 정법의 지혜를 얻은 뒤에는 게으르거나 싫어함이 없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겠습니다.
세 번째, 바른 진리를 거둬들이고 몸과 목숨, 재산 등을 바쳐 정법을 보호하고 지키겠습니다.

승만보살은 여성으로서 최초로 붓다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으며, 그 붓다의 경지에 이르러 모든 중생에게는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그 일체중생실유불성의 이치를 이 사바세계 중생들에게 사자의 포효처럼 울려대며 오늘날까지 많은 여성불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여여회에서는〈승만경〉을 배운 다음, 승만보살의 10대 발원문을 외우고, 나무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을 부르면서 108배를 한다 . 그리고 만나면 서로에게 “승만보살이 되십시오.” 하고 축원했다. 그때 집에서 함께 공부한 도반들은 이제 이순(耳順)을 전후한 나이가 되었는데, 나는 그들이 승만보살의 삶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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