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업에 기인한 섬세한 물질

살아있는 몸의 물질 생명기능으로 유지
우리는 이 특성을 ‘자아’라 여기지만
그것은 업에 의해 생성되는 물질일뿐
몸의 무상함을 잘 이해한 사람은
몸·느낌·지각·행온에 집착하지 않아

감각의 문을 통해 경험되는 대상물질들과 감성기관들 그 자체는 거친 물질들이고 그 외의 것들은 섬세한 물질들이다. 이미 보았듯이 일곱 가지는 감성대상들로 색깔, 소리, 냄새, 맛과 몸으로 지각할 수 있는 사대 중 세 가지인 땅 성품과 열 성품, 바람 성품이다. 다섯 가지 물질은 감성기관인 눈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다. 대상물질이 관련된 감성기관에 부딪혀서 일상에서 수시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 일어난다.
28가지 물성 중 감성대상과 감성기관 12가지는 거친 물성이고 나머지 16가지는 섬세한 물성이다. 감성기관은 물질을 생성하는 네 가지 요인 중 다른 세 가지인 마음, 온도, 영양분에서가 아닌 전적으로 업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오로지 업에 의해 생성되는 미세한 물성들은 또 있다. 여성 기능, 남성 기능, 생명기능, 그리고 심장토대다.
여성기능(잇틴드리야), 남성기능(뿌리신드리야)을 집합하여 성 물질(바와루빠)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은 생의 첫 순간부터 일생동안 업에 의해 생산되는 물질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 남자로 태어나느냐 여자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업에 기인된다. 〈앗타살리니〉(2, 2 권, 1부, 3장, 322)에 남성으로 출생하느냐 여성으로 출생하느냐는 다른 과보(위빠까)라고 설명한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선업과보(꾸살라위빠까)이지만 선행의 정도가 다르므로 그 결과도 다르게 된다. 남자로 태어나는 조건이 되는 선업(꾸살라깜마) 보다 여자로 태어나는 선업이 정도가 더 낮다. 일생동안 남성과 여성의 지위 간에 차이가 난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여성 보다 남성이 더 존경받는 것은 사실이다. 보통 여성은 사회에서 명예스런 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지혜의 계발에 관해서는 남성과 여성 양자 모두 할 수 있고 아라한이 될 수 있다. 〈상윳다 니까야〉 (4권,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 제37주제 여인 상윳따, 34, 증장 경)에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덕목을 증장시킴으로써 성스러운 여성수행자는 지혜를 키워, 가장 기본적인 것을 확립하고, 더 나은 것을 확립시켜 나간다. 이 다섯이 무엇인가?
믿음(삳다), 계(실라), 배움, 관용, 지혜이다. 비구들이여, 그것들을 증장시켜, 그녀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확립하고, 더 나은 것을 확립시켜 나간다…”

〈앗타살리니〉 (2, 2권, 3장, 321)에 남성과 여성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 외모, 직업,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 설명되어 있다. 여성의 특징 등은 여성기능이라는 물질에 조건 지어져 있다.

〈앗타살리니〉에 이런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그 기능 때문에 생성된다. 씨앗이 있으면 자라서 나무가 되어 큰 가지와 작은 가지가 무성하게 되어 하늘을 가리며 서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여성다움, 여성의 특징으로 불리는 여성 (통제)기능이 있으면, 여성이 된다….”
남성기능에 관해서도 같이 말할 수 있다. 여성기능과 남성기능은 ‘통제기능들’이다. 통제기능, 즉 인드리아는 그 자신의 영역에서 ‘리더’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남성기능과 여성기능은 온 몸에 퍼져있어 남성과 여성의 외관과 특징으로 드러나게 된다.
〈앗타살리니〉 (같은 절, 322)에 여성기능과 남성기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이 두 통제기능 중 여성기능은 여성의 상태를 알리는 특성을 가지며, ‘이 사람은 여성이다’라고 보이는 기능을 하며, 용모와 특징, 하는 일과 태도에서 여성의 원인이 드러난다.
남성기능은 남성의 상태를 알리는 특성을 가지며, ‘이 사람은 남성이다’라고 보이는 기능을 하며, 용모와 특징, 하는 일과 태도에서 남성의 원인이 드러난다.”

이 두 기능들은 〈청정도론〉(14, 58)에는 몸의 감성처럼 온 몸에 퍼져있고 안식(眼識)으로는 알 수 없고 의식(意識)으로만 알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앗타살리니〉 (321)에는 그들 각각의 기능에 의해 조건 지어진 특징 등은 안식과 의식 양자 모두로서 알 수가 있다고 서술되어 있다.
색깔만을 감지하는 안식으로 “이것이 여자다.” 또는 “이것이 남자다.”라 하는 것은 알 수가 없다. 여성 또는 남성의 특징을 인식하는 마음이 마음의 문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이 인식은 안식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주석서에 안식과 의식 양자 모두에 의해 이것들의 특징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은 눈의 문과 마음의 문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다른 마음의 인식과정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화장과 옷으로 여자다움을 강조하기를 좋아하고 남자들 또한 외관과 행동으로 그들의 남자다움을 강조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여성이나 남성의 특징과 처신방법에 집착한다. 그것은 남성기능 또는 여성기능이라는 업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로 이것이 남성 또는 여성 각각의 외관과 태도를 조건 짓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성을 자아로 여기지만 그것은 무아이며 단지 조건 지어진 성품일 뿐이다.
생명기능물성(지위띤드리야루빠)은 이 또한 일생의 첫 순간부터 일생동안 생성되는 섬세한 물질이다.
물질생명기능(루빠지위띤드리야) 외에도 마음생명기능(나마지위띤드리야)도 있다. 마음생명기능은 모든 마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마음부수(쩨따시카)들 중 하나다. 이 마음부수는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들을 지지하여 그들의 생명을 유지시킨다.
생명기능인 물질생명기능은 물질의 한 그룹에 수반되는 물질들을 지탱하고 유지시키는 물질이다. 이런 물질은 전적으로 업에 의해 만들어지며 살아있는 생명에게서만 일어난다.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의 몸에 있는 물질들은 온도 즉 열 성품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생명이 없는 사물이나 식물의 그것들과는 다르다. 생명기능인 물질은 업에 의해 생성된 몸의 각 그룹의 물질들에 포함되어 있다.
생명기능은 ‘통제기능인드리야’으로 그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때문에 함께 일어나는 다른 물질들에 대해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청정도론〉(14, 59)에 생명기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생명기능은 함께 일어나는 물질 종류들을 지탱시키는 성질을 갖는다. 그 기능은 그들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현재 나타나는 것을 확립시키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의 가까운 원인은 지탱시키려는 주된 성품들이다.”

생명기능은 한 그룹에서 함께 일어나는 다른 물질들을 유지시키고 그러고 나서 그들과 함께 사라진다. 〈청정도론〉(같은 절에)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생명기능은 사라지는 순간에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등불이 심지와 기름이 없어지면 스스로 사라지듯이 함께 사라진다….”

우리는 살아있는 우리들 몸에 집착한다. 살아있는 몸의 물질들은 죽은 물질이나 식물에는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생명기능에 의해 지지되어진다. 우리는 이 특성을 ‘자아’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업에 의해 생성되는 한 물질일 뿐이다.

심장토대(하다야왓투)는 업에 의해 생성되는 또 다른 물질이다. 정신과 물질현상이 있는 존재계에서 정신현상은 발생하는 물질 장소인 토대를 가진다. 안식은 눈의 감성물질, 즉 안근을 토대로 가진다. 이와 같이 다른 오식(五識)들도 그들의 적합한 발생 토대를 가진다. 이러한 오식토대와 달리 또 다른 토대인 심장토대가 있다. 이것은 오식 이외의 모든 마음이 일어나는 토대가 된다.

생의 첫 순간에 재생연결의식(빠띠싼디-찢따)은 업에 의해 생성된다. 이 마음이 마음과 물질이 있는 존재계에서 일어났다면 반드시 육체적 토대를 가져야만 한다. 이 토대가 업에 의해 생성되는 심장토대다. 업은 생의 첫 순간과 일생동안 이 심장토대를 생성한다.
심장토대인 물질은 ‘담마상가니’ 같은 곳에는 분류해 놓지 않았지만, 논장 7권 ‘빳타나(발취론)’에 이 물질을 언급하고 있다. ‘의존조건’(2부, Analytical Exposition of Conditions)의 절에서 오근에 의존하여 오문인식이 일어나고 ‘이 물질’에 의존해 의계(마노다뚜,意界)와 의식계(마노윈냐나다뚜,意識界)가 일어난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물질’은 심장토대의 물질이며 의계(마노다뚜)와 의식계(마노윈냐나다뚜)는 오문인식 이외의 모든 마음들이 포함된다. 안식 등은 적합한 감각토대를 물질적 토대로 가지며, 모든 다른 마음들은 심장토대를 물질적 토대로 삼는다.
〈청정도론〉(14, 60)에 심장토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심장토대는 의계 마음(마노)과 의식계 마음(마노윈냐나)의 물질적으로 토대가 되는 특성이 있다. 기능은 그들에게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며 그들이 일어남으로 드러난다…”

〈청정도론〉(8장, 111, 112)에 심장토대는 심장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심장토대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추측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문인식 외에 나머지 모든 마음의 토대가 되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족하다. 우리가 심장토대를 그렇게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나 만약 심장토대가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생각할 수 없고 어떤 대상을 지각하는지, 행불행을 느낄 수도 없을 것이다. 마음과 물질이 있는 존재계에서는 모든 마음들은 육체적 토대를 가져야 하며, 몸 바깥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예를 들면 화날 때 성냄에 뿌리를 둔 마음들이 심장토대에서 일어난다.

만약 아비담마를 공부하지 않았었다면 우리는 관습적 언어로 ‘뇌’ 라고 하는 곳에서 모든 마음들이 나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은 ‘뇌’라는 개념에 매달려 그것을 자아라고 집착할지 모른다. 논장을 공부하면 몸과 마음의 현상과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한 잘못된 이해들을 깨끗이 없앨 수 있다. 그것은 몸의 현상과 마음의 현상들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설명한다. 정신적 현상들은 육체적 현상들에 의존되며 육체적 현상들은 정신적 현상들을 조건요인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부르고 있는 것의 조건요인들은 무상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몸과 마음을 영원한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상윳다 니까야〉 (3권, 존재의 다발, 사대의 품, 제 1 50경, 2장, 18, 원인의 경)에 의하면 붓다는 사왓티에서 비구들에게 이렇게 설했다.

“비구들이여, 몸이란 무상한 것이다. 그 몸의 발생의 원인과 조건도 역시 무상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무상한 것으로 구성되어진 몸이 어떻게 영원할 수 있을까?”

정신적 현상(네 가지 무더기칸다)에 관해서도 같은 말씀을 하였다.

“이와 같이 잘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몸에 집착하지 않고, 느낌에, 지각에, 행온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의식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그것을 갈망하지 않게 되고, 갈망하지 않음으로 그는 자유롭게 된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깨닫게 된다. ‘재생은 단절되었다. 바른 삶은 실현되었고, 나의 할 일은 끝났고, 이러한 조건들로 이루어진 삶은 이제 더 이상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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