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사찰건축7 - 안양 비웅사

아파트 등 주변을 제2의 자연으로
전통, 현대 대표 재료 사용 
비웅사 외벽 허공과 창은
안팎 경계 허무는 소통 접점

▲ 비웅사 마당 옆으로는 주변 풍경을 담아내는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체가 있다.

건물 우측에 크게 걸린 현판만 아니었으면 몰라봤을테다. 아파트와 상가사이에 자리한 절집은 겉으로보면 세련된 주택같기도, 카페 같기도 했다. 특징없이 평범한 건물들 사이에 나란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튀어보이지 않았던 건 나무와 콘크리트가 적절히 섞인 덕분인 듯했다.

겉모습만으로 셈한다면 이제 겨우 10살이 된 사찰. 신 사찰건축의 7번째 주인공은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에 위치한 비웅사이다.

주변 생각한 신 사찰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이루어진 직육면체 형태인 비웅사는 외관부터 범상치않다. 두 개 동으로 나뉜 나무건물사이에 날렵하게 뻗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끼워넣은 느낌이다. 전통과 현대건축의 대표 재료가 맞물려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측면 벽은 텅 비었다. 벽이라지만 사실 건물의 구조체다. 콘크리트 뼈대가 마치 액자가 되어 건물내부 마당을 담아낸다. 요사채와 법당을 ㅁ자로 배치해 들여둔 마당은 모든 시선들이 지나가는 풍경의 중심이 된다. 덕분에 리드미컬해진 벽면은 자칫 지루하게 길어져 긴장감을 잃고마는 공간에 닫힌 듯 열린 듯 변주를 준다.

“건축물이 지역경관과 동화되는 과정이죠. 내부에서도 부담없이 외부 풍경을 지각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해짐으로써 공간적 상호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도시형 사찰이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이윤하 노둣돌 소장이 2004년 비웅사 설계를 의뢰받고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었다. 아파트, 상가 등이 밀집한 주거지역에 세워지는 비웅사는 특출나지도, 독보적이지도 않아야했다. 주변과 동화되지 않는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한다면 종교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 될 터였다. 포교를 우선으로 하는 도심 사찰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벽으로 둘러싸인 보편적 건물의 모습은 개인적이고 배타적이다. 그러나 비웅사가 건물에 빈공간을 들임으로써 생기는 시각적 쾌락은 이 공간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자각시킨다.

스님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개념이었다. 이 건축가는 이를 두고 ‘건축에 자연을 표현한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란 옥상과 마당에 깔린 잔디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산을 경치로 끌어들일 줄 알았던 전통 건축의 그것이었다. 주변과 건물이 다툼없이 어울렸던 ‘자연스런’ 모습처럼, 비웅사를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 단지와 주변환경을 제2의 자연으로 본 것이다. 화쟁과 원융, 상생과 조화가 비웅사에는 녹아들었다.

불교건축 본질 놓치지 않아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의 가람배치가 속계와 성계의 구분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마음을 정화시키는 과정을 공간 안에 구현하려고 했습니다.”

이 소장은 전통사찰의 형태만을 가져오는 일은 오히려 전통의 미감을 퇴색시킬게 분명하다고 봤다. 어정쩡하게 주변에서 겉도는 건물을 만들기보다 전통을 재해석하고 종교적 특성을 살리는 것이 의미있지 싶었다.

비웅사가 들어설 땅은 좁고 길게 뻗은 250평의 대지. 건물의 정면이 위치할 부분은 좁은데 반해 측면은 지나치게 길었다. 이 소장은 사찰건축이 공간적 상징성에 무게를 둔다는 점에 주목, 이를 드러내는데 측면을 적극 활용해보기로 했다.

▲ 법당으로 향하는 계단. 동선을 확장함으로써 속계를 떨치고 성계로 나아가는 구도의 길을 표현했다.

우선 건물 옆을 따라 계단을 길게 냈다. 3층 높이의 완만한 계단을 따라 오르다 몸을 180도 틀게 되면 2미터가 채 못되는 좁은 복도가 나온다. 길을 따라가다 다시 ㄴ자로 발걸음 방향을 바꾼다.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대웅보전이 나타난다. 대략 70m에 이르는 길이다. 이 과정 중에 세 번이나 몸을 튼다. 외부에서 시작한 길은 실내로 들어가고 다시 천장이 반쯤 트인 공간으로 이어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바로 부처님을 뵐 수도 있었지만 동선을 확장함으로써 속계를 떨치고 진계로 나아가는 ‘구도의 길’을 표현했다. 넓은 대지에 조성된 백제가람과 산지형 계단식 신라가람도 결합했다. 평지지만 공간에 위계를 줘 종교건축이 지닐 수 있는 공간감을 극대화시켰다. 일반 건축물이었다면 동선의 낭비라며 실현되지 않았을 건축공간이었다.

불교적 맥락은 재료에서도 찾을 수 있다. 건축자재의 물성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부식이 적은 적삼목은 외부 마감재가 되었고 콘크리트는 거푸집의 줄 모양을 그대로 살렸다. 동그란무늬의 콘은 밋밋한 콘크리트에 표정을 더했다.

흔히들 콘크리트가 인공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건축가의 설명. 석회로 이루어진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 골재를 섞고 물에 반죽해서 구워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의 물성은 검박함이에요. 콘크리트 재료 자체도 원래 자연에서 온 것이죠. 그대로 보여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 소장은 생태주의 건축가다. 생태주의란 말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건물을 지을 때, 다양한 생물과 환경을 고려해 이를 표현한다. 건축가의 말을 빌리면 “빈 터에 건물을 들일 때는 대지 위를 노니는 바람, 햇빛과 곧 방문할 비, 물과도 상의해 서로의 입장을 훼손하지 않는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자연과 닿아 있죠. 자연과 인간이 일체가 된다는 것도 그렇고, 뭔가를 지으려고 해도 풀 한포기, 땅에 있는 벌레 등 토양생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친환경건축이 각광받는 요즘, 불교는 상호성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생각합니다. 고려해야할 것은 환경입니다. 환경적 다양성과 배려가 녹아있는 곳을 만들어내야하죠.”

지금 설계했다면 또 달랐을 것
비웅사를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유독 창문에 눈길이 머문다. 창을 위해 1층 벽 한면을 통째로 내어준 것을 비롯, 건물 내부를 드나들며 곳곳에서 외부와 만날 수 있다. 1층 창이 가로가 길다면 다른 창은 세로가 길쭉한, 1자에 가깝다. 극적인 형태의 창을 통해 자꾸 외부로시선이 가고 건물내부로 눈길이 향한다. 창은 이곳이 소통의 공간임을 주지시킨다. 끝없이 내가 있는 위치를 일깨우고 반추하게 하지만 안과 밖의 경계는 이미 흐트러진다.

이 소장은 비웅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00년의 건축가와 2005년의 건축가는 달라야하겠죠. 지금 비웅사를 설계했다면 또 다른 건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건축에는 그 시대의 철학과 사회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대성이죠. 그러면서도 과거에 쌓여왔던 건축적 전통, 풍토성을 담아내야하죠. 마지막으로 자연과의 친밀성을 통해 건강한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생태성. 이 세 가지가 비웅사에는 녹아들었습니다.”

비웅사는 산 대신 도시를 택했다. 그리고 전통이 아닌 현대를 택했다. 현실적으로 빠듯한 공사예산에도 적합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사찰의 본질은 버리지 않았다.

대웅보전은 부처님을 모시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사람들이 와서 예경하고 기도하는 곳이다. 박물관 유리 전시실처럼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법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들어 문지방이 닳아야하는 공간인 것이다. 비웅사는 현대 사찰이 어떤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야할지 고민하게 한다.

비웅사 정면. 일주문은 나중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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