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참회진언

성문은 부처님 말씀을

직접 들은 대제자

불멸 2백년 후의 대천 스님

“도는 소리로부터 일어난다

소리가 없으면 전도 안돼”

음성과 문자로 포교 가능

밀교의 성자관에 의하면

음성을 다양한 변화표현

불멸 천년후 비밀 불교 흥왕

용수보살이 비밀의 법장 연

‘남천축 철합개안’ 밀교 근거

 

불교에서는 이 음성이 어떻게 다루어 졌을까? 불경에는 번번히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말이 나온다.‘이와 같은 것을 나는 들었다’. 무엇을 들었다는 것일까.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직제자를 존칭하여 성문(聲聞)이라고 일컫는다. 성문이란 ‘소리를 들었다’는 것인데, 들었다는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하시는 소리를 이른 것이다. 이로 보아 불교에서 음성을 중요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문은 직접 부처님의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은 대제자(大弟子)라는 뜻인데, 이를 기준으로 하여 불교를 나눈다면 부처님 말씀을 들은 불교라는 뜻으로 문불교(聞佛敎)와 부처님의 제도를 어떻게 차렸느냐 하는 제불교(制佛敎)의 두가지가 될 것이다. 제도상의 문제는 그 뒤 오늘날까지 많이 논의되는 바인데, 여기서는 계율(戒律)이 중요시되어 왔다.

부처님의 정신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부처님의 정신을 우리가 어떻게 받들어 왔느냐? 이러한 문제는 전불교(全佛敎)에 속하는 것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불멸 후 2백년이 지나 대천(大天)이라는 큰스님이 나셨는데 이 분은 도인성고기(道因聲故起)라는 말씀을 하셨다. 도는 소리로부터 일어난다. 그러므로 소리가 없으면 전도가 되지 않는다. 도가 펴지지를 않는다. 전도니 포교니 하는 것이 모두 다시 말하자면 음성으로써, 음성을 기록한 문자로써 얘기되는 것이다.

불교의 교리(敎理)가 전도로써 알리어질 수 있느냐, 없느냐 ?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해명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는 부처님 당시에나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모든 제자들이 얼마나 중요시하였던가 하는 것을 알게 한다.

불멸(佛滅) 후 천년이 지나 비밀 불교(秘密佛敎)가 흥왕한다. 이 밀교(密敎)의 근원은 물론 불타(佛陀)재세시에,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에 부처님의 신변불가사의(神變不可思議)한 위덕을 칭양 찬탄 우다나(優陀那)에서 나오는 모든 신비성(神秘性)을 말한데서 찾을 수 있는 바이지만 이 요소는 후대에 이르러 밀교가 가지(加持)하는 그곳에서 한층 더 승화(昇華)하는 이상(理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밀교의 직접적인 근거는 불멸후 7백년 대에 나신 용수보살(龍樹菩薩)에게서 얻어진다. 용수보살이 이런 대신비의 법문(法門)인 진리를 어디서 열었느냐 하는 것이 밀교에서 일컫는 용수보살의 남천축(南天竺)의 철탑개안(搭鐵開眼) 이라는 것이다. 쇠로 된 보탑(寶塔)을 열었다는 것이다. 용수보살이 나기 전까지는 이와같은 대 비밀의 법장(法藏)을 진리의 고방을 알아내어 열 사람이 없었다 한다.

밀교에서 음성을 다루는데는 성자관(聲字觀)이라는 한 테마를 제출하고 있다. 성자관에 의하면 우리들의 음성(音聲)이란 것은 한정 없이, 헤아릴 바가 없는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며 이 음성의 변화로써 사물의 움직임을 잘 포착 전달토록 되어 있지만, 통털어 대별한다면, 결국 이를 두 가지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모음, 홀소리고 다른 하나는 자음(子音), 닿소리다. 모음은 보다 더 근원적이고 ㅏ·ㅓ·ㅗ·ㅜ·ㅡ·ㅣ 하는 등의 소리, 자음은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등이다. 우리나라 세종대왕께서는 이를 28음으로 정리하셨지만 인도에서는 50 음으로 되었다. 모음과 자음을 합해서 50 음을 내고 있다. 그런데 모음은 자음보다도 더 근원적이고 모음 가운데서도 무엇이 제일 기본음이 되느냐 하면, 우리나라 한글에서 세종대왕이 제정한, 점 찍은 ‘·’자, 이것이 바로 그것이 된다. 범어에서는 이를 아(짧게)라고 발음한다. 아-가 아니다. 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종대왕의 점찍은 ‘·’그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세종대왕은 이를 훈민정음에서 천(天)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하늘을 표시했다는 뜻 보다는 하늘이란 지경 아닌가, 다시 말하자면 위치를 가리킨 것이다. 위치에는 장단·고저·대소라는 것이 없다. 다만 위치 그것을 지정하였을 따름인 것이다. 위치를 지정하였다는 것. 그런데 이 위치는 어떻게 보면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다. 한 위치에는 다른 위치가 비벼들 수 없으면서 그 스스로 완성되어 있다. 극소이면서 극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써 세종대왕께서는 이를 하늘이라고 지칭하신 것 같다. 이는 나의 주장이다.

모든 음 가운데 이‘·’자, 우리가 보통 속된 말로 아래아 ‘·’자라고 하는 이것은 모든 음의 중핵이 된다. 모든 법문은 자음에 모음이 붙어서 낱말이 되고, 낱말이 여러개 구성되어 구절이 되고, 구절이 합하여 한 문장을 이룬다. 한 문장은 하나의 사상을 완전히 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진리란 것은 이 자음과 모음이 종횡무진으로 서로 읽히어들어 그 진리의 내용을 외면적으로 감싸서 우리에게 알도록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은 보재기와 같은 하나의 도구나 기관인데, 그리고 보면 음성도 역시 우리들로 하여금 의사표시를 충분히 하게끔 하고 또 남의 의사표시를 알아 듣도록 하는 하나의 도구일 따름이다. 그것을 분해하면 자음과 모음이고 또 자음보다는 모음이 더 근원적이고 모음 가운데는 기본음이‘·’란 것으로 낙착된다. ‘·’이것은 아도, 어도, 오도, 우도, 으도, 이도, 온통 다 포함하고 있는 아주 근본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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