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 추사 친필 편지
초의선사를 연구하면서 초의와 관련된 추사의 자료를 하나 둘 찾을 때마다 전율을 느낀다. 이는 초의와 추사의 인연의 돈독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추사의 친필 편지는 붓 끝에 서린 오묘한 기운 탓인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그의 글씨가 마침 흑용이 솟구쳐 하늘을 달리다가 문득 종이 위에 스며든 고요처럼 침묵의 잔잔함을 방점으로 찍은 듯한 묘미가 있다. 긴 여운 뒤에 남는 범접할 수 없는 비범함은 순간 빠져드는 마력을 지닌 것이 추사체의 힘이기도 하다. 이런 감동은 활자체의 자료에서는 느낄 수 없는 큰 울림이다.

추사의 문장은 간결하고 힘이 있다. 그래서 더욱 통쾌하고, 결연하며, 해학적이고, 맛깔이 지다. 호방함 속에 배어있는 문기(文氣), 선미를 담는 듯, 걸림 없는 포용력, 이런 안목은 이미 현대인의 지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언어를 이해하지 못함에 따라 시대를 관통할 어휘의 단절, 다시 말해 소통의 도구로서의 문장 기능이 상실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고금으로 이어온 고급문화의 이상을 소통할 통로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우리가 이런 문장을 더욱 낯설어 하고, 진부하게 느끼며,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게 된 연유이다. 하지만 인간다움을 실현하기 위한 이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이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이상 세계의 단계로 올라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사다리이다. 바로 추사의 편지는 고상한 이상의 차원을 오를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징검다리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편지란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이 나눈 미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 정보는 사람 간에 오고간 솔직한 언어이기에 꾸밈이 없다. 진솔한 인간의 언어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시대를 살펴보기에 충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기에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그의 지성과 인간에 대한 회한과 연민, 우정을 나눈 벗에게 보내는 순박한 온기를 느끼게 한다. 신분을 초월한 초의와 추사의 만남은 조선 후기 유불의 교유사를 빛낼 아름다운 우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성의 있는 교유와 속내는 바로 추사의 편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리고 추사는 학자다운 인품도 함께 담겨있다. 그의 천지를 가득 채울 듯한 호연한 기세와 학문의 탁마수준은 청대의 대학자였던 옹방강의 마음을 열게 한 이유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와 같은 대인을 포용하기에 너무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유배지에서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디며, 불교를 탁마하고, 차를 즐기는 동안 그의 정신세계는 더욱 견고하고 충실해졌다. 추사의 예술세계가 확고한 자리를 얻음은 이런 인고를 견딘 결과이다. 한편 그의 허허로운 마음을 위로했던 것은 초의였다. 초의는 추사의 지기요, 동반자였다. 동갑으로 태어나 동년의 시기를 살았던 이들은 태어난 부모의 인연도 다르고, 처세의 길도 달랐다. 그러나 1815년 학림암에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던 날, 이들은 숙연의 실마리를 서로 알았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나눈 인간의 아름다운 우정, 사람냄새가 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정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한다.

추사의 편지를 연재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제주도 유배 길에 일지암에서 묵었던 때의 정경이다. 이들은 산차를 앞에 놓고 밤새도록 세상 돌아가는 형세와 백성을 근심하였다. 서로의 우정을 ‘불망상사상애지도(不忘相思相愛之道)’라 말했던 초의는 정말 일생동안 ‘서로 사모하고 아끼는 도리를 잊지 않는 우정’을 나누었다. 후일 추사가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고 한 그의 인장은 초의의 이 말에서 나온 듯하다.

이 연재를 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는 초학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연재하면서 추사와 초의의 우정을 한없이 부러워했고, 동경했다. 그리고 사람과의 인연을 깊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끝으로 이 연재를 마치면서 지면을 할애해준 현대불교 관계자 여러분! 감사했습니다. 아울러 두서없이 나열한 빡빡한 글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들의 애정 어린 관심에도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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