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마음… 그것이 무너져 가는 것이 세상이다
몸·마음… 그것이 무너져 가는 것이 세상이다
  • 위오기 교수(공주대 경영학과)
  • 승인 2014.03.2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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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성물질 下

형상·소리·냄새·맛·감촉은
감각의 문 통해 지각되고
마음의 문 통해서 인식돼

눈·귀·코·혀·몸 감각 대문 잘 지켜야

탐욕과 성냄으로 눈의 감각 제어 못하면
나쁘고 해로운 법 물 밀듯이 들어와

붓다 “오식의 相에 취하지 말고 통제하라”

몸·말·마음 잘 보호, 생각 안정되면
감각기능 조절 탐욕에 물들지 않아

 

다른 감성물질(빠사다 루빠)들 즉, 후각, 미각, 촉각 등에 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정의한다. 후각은 코에 있는 물질(루빠) 때문에 일어난다. 그것은 냄새 맡는 조건 중의 하나다. ‘청정도론’(15장, 39)에서, 비식은 코, 냄새, 공기(바람 성품)와 주의기울임으로 인해 일어난다.
바람 성품물성인 움직임이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에 관해서 ‘앗타살리니’(2, 2권, 1부, 3장, 31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코로 냄새 맡기 위해서는 바람에 의존하는 냄새를 가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사실, 비가 처음 내릴 때 소떼는 땅에서 계속 냄새를 맡으며 하늘로 재갈은 들어 올려 공기를 숨 쉰다. 그래서 향기 나는 덩어리를 손에 올려놓고 냄새를 맡을 때 숨을 들이쉬지 않으면 냄새는 나지 않는다.”

미각은 혀에 있는데, 이는 맛봄의 조건들 중의 하나다. 청정도론 같은 부분에서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맛봄’(지와 윈냐나_舌識)은 혀, 맛, 물기, 주의 기울임 때문에 일어난다.” 물의 물성 즉, 응집력도 맛을 보는 데 한 역할을 한다. 앗타살리니 (같은 절, 315) 에는 물 성품이 혀 의식의 한 조건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밤중에 세 번 관찰로 비구의 임무가 수행되더라도,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발우를 들고 가사를 입고 마을에 가서, (탁발을 하는데) 침을 적시지 않으면 마른 음식의 맛을 구별할 수 없다…”

몸의 촉각은 손발톱과 털을 제외하고 온몸과 몸 안에 존재한다. 그것은 감촉 대상을 지각하는 조건 중의 하나다. 청정도론의 앞에 언급한 같은 절에서 “신식은 몸, 감촉대상, 땅 성품, 그리고 주의 기울임 때문에 일어난다.”

‘앗타살리니’(같은 절 315)에서 설명하기를, “…안과 밖의 땅 성품은 대상을 잡을 때 느끼는 촉감의 원인이다. 천을 잘 씌운 침대가 부드러운지 딱딱한지, 또 손안에 있는 과일이 부드러운지 딱딱한지는 앉아 보거나 눌러 보기 전에는 잘 모른다. 이렇게 몸 안과 밖의 땅 성품은 몸 감촉기관인 피부가 촉감지각의 원인이 된다.”

그리하여 촉감을 지각하는 신식이 있으면 실제로 물성에 부딪치는 다른 물성이 있는 것이다. 몸의 촉각에 닿는 대상의 영향은 다른 어떤 감각들에 닿는 대상들의 영향보다도 더 격렬하기 때문에 청정도론의 주석서인 ‘빠라맛타 만주사’에서는 신식(까야윈나나_身識)은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을 동반하며 덤덤한 느낌은 없다고 했다. 반면에 다른 오식(봄, 들음 등)은 덤덤한 느낌을 동반한다.
몸의 감각이 지각되어지는 것을 통해서, 땅 성품이 부드럽고 딱딱함으로 나타나고 열 성품은 뜨거움과 차가움으로 나타나고 바람 성품은 움직임과 압력으로 나타난다. 이런 특성들이 나타나면 몸의 촉각 어디에서든지 바로 지각할 수 있으며, 몸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형상·소리·냄새·맛 그리고 감촉대상(사대 물성 중 세 가지)은 상응하는 감각의 문을 통해서 지각되며 또한 마음의 문을 통해서도 인식한다. 감각대상들이 지각되는 감성물질 자체는 물질(루빠)들인데, 이는 마음의 문을 통해서만 알 수가 있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토대(바투)이며, 상응하는 감각인지가 일어나는 곳이다. 마음(찢따)은 몸 밖에서 일어나지 않고 마음이 일어나는 물질적인 토대에 의존한다.
시각은 보는 마음이 일어나는 토대다. 청각은 듣는 마음이 일어나는 토대다. 다른 감각기관도 마찬가지다. 신식(身識)의 토대는 감수성이 있는 몸의 모든 부분에서 다 일어난다. 지각기관은 상응하는 감각인지가 일어나는 토대다. 그 외에 모든 마음은 또 다른 토대인 심장토대를 가진다. 심장토대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알아보기로 하겠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앞서 보았듯이 상응하는 다섯 가지 감각인지의 문이다. 문(드와라)은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는 수단이다. 시각은 보는 마음과 보는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마음들이 일어나는 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시시때때로 감성물질과 마음의 문에 부딪쳐 오는 대상들을 인식하는 마음들은 마음의 진행과정에서 일어난다. 눈의 문인 진행과정에서 일어나는 보는 마음 이외의 마음들은 보지 못하지만, 보이는 대상에 관해서 생각하거나가 조사하는 등 보이는 대상을 인지하는 그들 자신의 기능을 수행한다. 다섯 감각기관 각각은 그러한 문을 통해서 감각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 있는 모든 마음들의 문이 될 수 있다. 감각기관은 토대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다섯 가지 감각을 인지하는 문으로서도 기능을 한다.
감성물질은 늘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대상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지각할 때는 유일한 문이 된다. 예를 들어, 시각기관은 보이는 대상에서 일어나는 마음들에 의해 지각될 때 유일한 문이 된다. 소리를 들을 때, 청각이 문이며 이때 시각은 문으로서 작용하지 않는다.

‘앗타살리니’(2, 2권, 3장, 316)에서 “감각은 섞이지 않는다”고 했다. 감각은 각각 고유의 특성과 기능, 표출, 가까운 원인을 가진다. 그리고 그들 각각을 통하여 그에 상응하는 대상이 지각된다. 청각은 형상이나 맛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직 소리만 받아들인다. 듣는 것은 듣는 문을 통해서만 소리를 지각할 수 있다. 우리는 감각의 문이 각각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는데, 그 까닭은 모든 경험을 조정하는 어떤 사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이 조건 때문에 일어나며 한 순간에 하나의 대상만 경험하고 곧바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재에 관해서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붓다께서는 자주 여섯 가지 문이 분리되어 있음을 말씀했다. 붓다는 사람들에게 알아차리면서 감각의 문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문을 통해서 지각할 때 많은 오염원인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상윷다 니까야’ (4권,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 세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3장, 127, 바라드와자의 경)에 우데나 왕이 바라드와자에게 젊은 비구들이 어떻게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물었던 이야기가 있다. 바라드와자 비구는 몸의 더러움을 보는 것과 여섯 감각의 문을 지키는 것에 대해 붓다의 말씀을 이야기해 주었다. 바라드와자 비구는 말하기를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라. 그대들은 눈으로 형색을 봄에 그 표상을 취하지 말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도 취하지도 말라. 탐욕과 성냄 때문에 눈의 감각기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물밀듯이 흘러 들어올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대들은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지키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라. 귀로 소리를 들음에…. 코로 냄새를 맡음에…. 혀로 맛을 봄에….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마음으로 법을 자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도 말며, 또 세세한 부분 상을 취하지도 말라…. 그것을 잘 통제하라…”
그때 우데나 왕이 붓다의 말씀을 경탄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바라드와자 비구시여, 저도 왕궁으로 들어올 때 몸과 말과 마음을 보호하지 않고 생각이 흩어지고 감각기능을 조절할 수 없으면 그럴 때는 탐욕이 가득한 마음이 저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바라드와자 존자시여, 제가 몸과 말과 마음을 잘 보호하고 생각이 안정되어 있고 감각기능이 잘 조절될 때는 탐욕스런 마음이 저를 압도하지 않습니다.” 그 후 우데나 왕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했다.

전체상과 부분상에 잘못 인도되는 것을 막는 것은, 그 순간 일어난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이해할 때다. ‘상윷다 니까야’ (4권,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 두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3장, 82, 세상 경)에 ‘전체상’에 집착하지 말고 여섯 감각의 문 중의 하나에 나타나는 그 순간의 대상만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때 어떤 비구가 붓다께 와서는 한쪽에 앉아 붓다께 질문했다.?
‘세상! 세상!’ 이라고들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비구여, 그것은 부서져 버린다. 그래서 ‘세상’이라고 한다. 무엇이 부서지는가? 눈과 대상, 안식과 눈의 접촉이, 눈의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덤덤한 느낌이 부서진다. 혀와… 몸과… 마음과… 비구여, 그것들은 무너져 간다. 그래서 세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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