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a in Comic & Ani - 문정후의 ‘용비불패’

한국 코믹무협의 양대산맥
지난해로 17년 연재 마무리
스토리·작화 당대 최고 수준

문파 아닌 주변인을 중심으로
주인공 ‘결자해지’ 과정 통해
잃어버린 ‘俠’의 의미를 찾아

▲ <용비불패> 1권 표지
동네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건달’이라고 부른다. 이 ‘건달’이라는 말이 불교의 팔부신중인 ‘건달바(乾達婆)’에 기인했다는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아무튼  동네 형님들이 스스로 즐겨 사용하는 호칭 중 하나가 바로 ‘협객(俠客)’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감격시대’에서 나오는 주먹패들도 스스로 ‘협객’임을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협(俠)’이라는 말이 가장 대중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중국 영화·소설 장르 중 하나인 ‘무협(武俠)’이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사파와 마교 등 공통된 세계관과 역사관을 바탕으로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펼쳐지는 무림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팩션’의 원조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깊이가 방대하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무협 장르가 만화를 통해 오래 전부터 자리하고 있었다. 故 이재학, 하승남 등 유명 대본소 만화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1980년대 무협 만화 시장을 이끌었다면 1990년대부터는 신진 작가들이 등장하고 대중 만화 시장에서 활약을 펼쳤다. 

대표적인 작품이 문정후 작가의 <용비불패>와 전극진, 양재현의 <열혈강호>다. <용비불패>는 지난해로 17년 연재를 마무리했으며, 1994년 시작한 <열혈강호>는 지금까지도 연재가 진행 중이다. 10년 이상의 연재를 기록한 장수만화인 두 작품은 현재도 한국 무협만화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 <용비불패>의 한 장면들. <용비불패>에서 황금성을 찾기 위한 과정이 표면적 이야기이다. 내면에는 용비는 대장군부 암살부대 시절 저지른 악업을 참회하기 위한 ‘결자해지’ 여정이 담겨있다.
이 중 <용비불패>는 매우 눈여겨볼 작품이다. 정파와 사파, 마교의 이념 대립 등 정형화된 무협 장르 특유의 거대 서사에 벗어났기 때문이다. 정파, 사파 등 문파 간 세력 다툼에서 벗어나니 인간이 이야기의 중심에 섰다. 이것이 <용비불패>의 매력이고, 이를 이끄는 것은 주인공 용비다. 여기에 촘촘한 스토리 전개, 당대 최고 수준의 작화는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용비는 대장군부 암살부대의 수장이었고, 전장에서 수 많은 전승을 기록한다. 모든 것이 걸린 마지막 전투에서 적 부족을 괴멸시키는 성공하지만 대장군부의 간계로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잃는다. 이후 용비는 ‘수전노’ 현상금 사냥꾼이 돼 범죄자들을 잡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당대 최고의 재벌인 율목인의 아들 율무기를 만나게 되고 엄청난 재물이 있다는 황금성의 실체를 알게 된다. 황금성에 대한 소문은 강호를 뒤 흔들고 물욕에 빠진 무림인들은 모두 황금성으로 간다.
이야기는 용비가 황금성의 재물을 얻기 위해 무림고수들과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전개되지만 이면에는 용비가 돈을 모으는 이유와 과거의 인과에 대한 ‘결자해지’가 있다. 특히 최근 완결된 ‘2부 외전편’은 용비의 ‘결자해지’가 주요한 이야기다.

작품의 후반에 가면 용비가 치졸할 정도로 돈을 모으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는 자신이 몰살시킨 부족 유민들의 생계를 돕고 있었고, 간계를 파악하지 못해 죽어간 부하들의 가족과 식솔들을 살펴왔다. 눈 한번 질끈 감고 넘어가도 되는 일이지만 주인공 용비는 자신의 저지른 원죄에서 눈을 돌리기 않고 참회의 길을 걸어간다. 여기서 우리는 무협물의 오랜 주제인 ‘협(俠)’과 마주할 수 있다.

‘협에 임함(任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信義)’이고, 자신을 알아주는(知己)에게 보답(報)하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사가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2002)>에 나온다.

“강호에 떠돌며 의지할 것은 사람들과의 사귐이야. 신의를 중히 여길 것, 그렇게 하는 사람은 강호에서 살아갈 수 있지. 신의를 지키지 못하면 오래 가지 못해.”

▲ <용비불패>의 한 장면들. <용비불패>에서 황금성을 찾기 위한 과정이 표면적 이야기이다. 내면에는 용비는 대장군부 암살부대 시절 저지른 악업을 참회하기 위한 ‘결자해지’ 여정이 담겨있다.
부족의 왕야는 자신들의 괴멸을 알면서도 적인 용비를 죽음에서 구했고, 자신들의 부하도 대장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다. 신의를 다하기 위해 용비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 현상금 사냥꾼 노릇을 하고 이렇게 얻어진 재화를 통해 참회와 보답을 한다.

‘협(俠)’이란 글자는 본디 ‘옆구리낄 협(夾)’에 ‘사람 인(人)’ 부수로 만나 만들어진 글자로 ‘호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호협하다’는 것은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하다’는 의미다.

요약하자면 ‘나의 뜻을 굽히지 아니하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며 이후의 일에 대해 그 댓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 바로 ‘협(俠)’의 길이다.

총과 대포가 무력을 결정하는 시대에 사람들이 권법과 병장기로 싸움을 하는 무협을 끊임없이 찾는 것은 결연한 의지를 가진 ‘협객’들을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불신과 불통의 시대에 필요한 정신은 ‘협(俠)’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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