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찰건축5- 서울 상도선원

2009년 완공ㆍ경건축 백경국 설계
은동불상ㆍ사각연등ㆍ미술품 이용
사찰에 ‘문화’ 접목 시도
유리창 108개 등 곳곳에 불교관
공간적 한계 ‘분할’로 극복하고
전통 가람배치 살려
부분보다 전체 감상해야

▲ 상도선원의 108유리창에는 삼존불과 6근, 6진, 6식에 대한 상징이 담겨 있다
현대식 사찰 불사를 생각중이라면 꼭 한 번 들려봐야 하는 곳. 상도선원은 도심에 위치한 현대식 사찰의 롤모델로 손꼽히는 곳이다. 날렵한 ‘은동불상’, 네모난 한지 연등, 인테리어 소품처럼 곳곳에 놓아둔 미술품 등 사찰에 문화를 접목하고 싶었다는 미산 스님의 의도대로 갤러리 사찰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09년 완공당시 언론마다 선원의 세련된 미감을 입에 마르도록 칭찬했지만 그러나 정작 이를 가능케 한 건물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상도선원 설계자, 백경국(55)씨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이루어지게 됐다.


창없는 상도선원?

“상도선원덕에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은 처음이네요”

의외였다. 완공된 지 4년이 흘렀지만 그간 인터뷰 요청을 한번도 받은 적 없다니. 워낙 유명세를 탄 상도선원이었기에 사전조사작업에서도 건축가 말 한마디 정도는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준공당시 현장 사진 한 장에서 겨우 ‘설계 시공 경건축’을 발견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건축가의 운명이라 생각해요.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상도선원이라는 공간을 인정해줄 때 보람, 희열을 느껴요.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상을 드러낼 필요는 없어요.”

익숙한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는 불자였다. 한 때는 심각하게 출가를 고민했을 정도로 불교에 심취했었다. 들을 이야기가 많겠다 싶었다. 상도선원 또한 그저 번듯한 외관에 머무는 곳은 아닐것 같다.

“일단은 종교 건물이잖아요. 현대적 건물이지만 불교의 상징성을 외부에 표현할 필요가 있었어요. 우리가 석가모니 상을 보며 자신을 반추하듯 사람들을 내면적으로 투영시킬 수 있는 종교성을 사람들이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건물 초입에 넣자 생각했어요. 아마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일겁니다.”

상도선원 전면부에는 창호문의 격자무늬처럼 빼곡한 유리창이 108개다. 불투명창과 투명창이 교대로 늘어선 것이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이 안에 삼존불과 6근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가운데 불투명 유리창은 석가모니를, 양측 불투명창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상징한다. 투명창은 세로로 6개 덩어리로 분할시켜 6근, 6진의 불교 기초교리를 표현했다. 가로 6줄의 유리로는 6식을 표현했다. 6근과 6진이 만나 6식을 일으킨다는 불교 기본 세계관을 담아냈다. 사람들은 절에 들어가기 전 모든 것이 안이비설신의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되새김질하고 들어간다. 명료한 가르침을 닮은 투명한 유리는 의식을 정화시킨다. 이는 10여개의 시안을 놓고 고민한 끝에 결정됐다. 다른 디자인이 선택됐다면 지금의 상도선원 모습과는 또 달랐을 것이다. 창을 내지 않고 전체를 콘크리트로 마감했을 수도 있었다. 재료 선택은 차후였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닙니다. 건축양식은 시대 변화에 따라 순응되어야겠죠. 그러나 불교의 상징성은 시대 흐름에 관계없이 건축양식안에 녹아있어야 해요. 그게 바로 전통의 맥을 잇는 일입니다.

지금껏 몰랐던 상도선원

상도선원의 입지조건은 전통사찰과 전혀 달랐다. 주변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었고 허락된 땅이래봤자 경사진 언덕의 124평이 전부였다. 겉모양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건물 한 동에 필요한 공간을 넣어도 될 일이었다. 평범한 회사나 상가 건물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건축물이었다. 1600년 한국불교의 전통을 현대라는 이름으로 단절시킬 수 없었다. 그렇다고 기와지붕의 건축양식만 차용하는 것은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가지고 오는격이었다. 불교건축에 담긴 의미, 본질이 중요했다. 건축가는 불교 의미를 드러내는 구조에 천착했다.

일심(一心)으로 진리 세계로 향하라는 의미를 지닌 일주문에서 보듯 사찰의 구조는 보리심을 되새기며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점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간 후 보이는 너른 마당, 그 끝의 대웅전. 길어진 동선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공간의 변화는 길을 걷는 이에게 종교적 이상향을 체험케 한다. 출세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지만 공간에는 세속을 뛰어넘어 정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러한 불교의 상징성과 전통성을 조그만 땅에 집약시켰다. 우선 4층 높이의 한 덩어리 건물을 두 공간으로 나눴다. 앞 건물은 어린이법당, 나한전, 장경각 등 법당으로 활용했고 두 건물을 잇는 계단을 만들어 뒷 건물을 승방, 공양간 등의 요사채로 구분했다.

▲ 앞건물과 뒷건물을 잇는 통로

앞 건물을 누각처럼 들어올리니 그대로 일주문이 되었다. 양 옆에 사천왕상을 조각할 벽면도 남겨두었다. 일주문에서 몇 걸음가면 갑자기 사방이 트이고 하늘이 드러난다. 왼쪽에는 두 건물을 잇는 유리통로가 있다. 그 너머로 나무도 보인다. 극대화된 공간적 체험을 통해 자연이 주는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상도선원의 법당을 보고 감탄하지만 그는 이 ‘구조’야 말로 상도선원의 핵심이라 말한다.

“법당에서 종교적 감흥을 받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고요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위해 법당에 높이를 주고 상을 세우면 누군들 그러한 감정을 못 느끼겠어요. 일주문, 사천왕문, 해탈문을 지나고 나서야 법당은 드러나요. 사람들은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모르게 진계에 대한 감정을 고양시킵니다. 공간과 건물의 관계는 바로 이런 데서 의미를 띤다 할 수 있죠.”

사람들의 심리선을 따라 동선을 만들고 공간을 나누는 것. 백 건축가는 ‘분절’에서 전통건축의 요체를 짚어냈다. 석굴암에서 전실과 주실을 통로로 이었듯 분절을 통해 공간은 확장되고 종교적 감동에 대한 여지도 확보된다. 백 건축가는 여기에 덧붙여 “건축은 공간과 형태 두 가지로 나뉜다”며 “공간을 만들기 위해 형태가 필요한 것”이라 강조한다. “형태를 위한 형태, 공간을 위한 공간은 없다”는 것이다.

지하에 부처님을 모신다고?

▲ 지하에 위치한 법당. 상도선원의 미감이 집약된 곳이다.
건물을 나눴더니 대웅전이 위치할 면적이 충분치 않았다. 땅을 팠다. 신도들은 난리가 났다. 부처님을 밟고 다닐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신도들을 설득해야 했다. 1년3개월이 걸렸다. 3개월만에 완성된 설계안은 착공하기까지 1년이란 시간을 더 필요로 했다. 전통과 현대의 접점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내홍이었다.

법당인만큼 높이를 고려해 땅을 깊게 팠다. 약 100평(연면적 311.87㎡)에 가까운 크기의 법당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그제서야 건축가의 의도를 이해했다. 확트인 공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운데 기둥을 없애고 양쪽 모서리로 밀어넣었다.

불상을 위해 조명, 높이, 구조에 신경썼다.

법당에는 상도선원의 조형적 요소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 은은한 나뭇바닥의 색감과 베이지톤의 부드러운 조명 가운데 위치한 날씬한 부처님은 석굴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조각가 서창원 씨가 비행기를 만드는 재료인 두랄루민이라는 금속으로 제작했다. 건축가는 원불이 위치한 뒷 벽면을 타원형으로 만들어 입체감을 부여했다. 불상에 음영이 생기지 않도록 조명에도 신경썼다. 한지연등은 한지공예가 김정순 씨의 작품이다. 연등 공간을 감안해 건축가는 천장에 홈을 팠다. 공기정화를 위해 벽면에 넣은 대나무 숯은 미산 스님의 의견이었다. 각자의 작품을 적재적소에 수용해 빛을 발하게 한 뒤편에는 백 건축가가 있었다. 법당은 모두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법당을 상도선원의 압권이라고 한다.

“이 시대 불교건축에는 시대 정서, 생각, 느낌, 색감이 묻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미산 스님은 “불자가 아닌 이들도 와서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상도선원을 중창불사했다. 때문에 선원은 날렵한 느낌의 유리외관과 달리 포근한 느낌의 ‘나무집’이다. 뒤편 건물은 적삼목으로 운치를 더했고 내부 역시 바닥, 계단, 벽 등 곳곳에 나무를 썼다. 나무의 종류만도 다섯 가지 이상이다. 특히 실내 계단은 붉은색 아프리카산 부빙가 나무를 써서 무게감 있는 고풍스런 느낌을 자아낸다. 법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7미터나 되지만 지루하지 않게끔 벽면에 조각상을 두었다. 갤러리를 두고 싶어 했던 미산 스님의 제안을 벽면에 배치한 것이다.

▲ 법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장경각에 쓰인 나무는 전통사찰의 느낌을 살리고자 고목(古木)을 사용했다. 재료를 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어딘가에서 쓰였을 나무는 상도선원에서 다시 살아났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나무의 시간성을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서재안에 나무테마냥 고스란히 새겼다.

상도선원의 주인공은 부처님이 아니다. 6식에 대한 가르침을 품고 일심합장하며 나아가는 우리들이다. 건물을 나누는 것이 먼저였고 법당은 그 후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상도선원은 건물을 통틀어 사람들에게 진계에 다가가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건축가 백경국

한양대와 미 오하이오주립대 건축과를 졸업했다.  재학당시 NBBJ라는 세계 2위 건축그룹에 스카웃되면서 8년간 미국에서 현장경험을 쌓았다. 한양대, 명지대 건축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경건축의 대표이사다.
고등학생 때 구인사에 가본 것이 불교와의 첫 인연이었다. 미국 유학당시 불경서적이 전공서적만큼 많았다. 학내 불교동아리를 만들어 쉬는 날이면 2시간이 걸리는 절까지 찾아갔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불광사 광덕 스님께 원명(願明)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특이한 이력이라면  16살 때 처음 작곡가로 데뷔해 문주란 등에게 곡을 줬다. 부친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만든 백영호 씨다.

설계: 용산 전쟁기념관, 오하이오 주청사, 신도림 푸르지오, 제주시 연동 관광특구 개발, 부산 안국불교대학, 중국북경컨벤션센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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