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감성물질 上

감성물질은 업의 육체적인 결과
오식(五識)은 업의 정신적 결과

‘본다’는 정신적 현상의 순간은
일어나고 바로 사라져 버리는 것
모든 시각은 일생을 통해
업에 의해 만들어져

그러나 인간은 ‘내 시각’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모든 시각 착각

시각이란 자아가 없는 물성일 뿐
‘본다’는 정신적 현상의 조건 중 하나

눈은 대양(大洋)과도 같아
바다가 채워질 수 없듯이
눈 또한 만족시킬 수 없어

태어날 조건이 있는 한 태어나게 되고 즐겁거나 괴로운 대상을 경험하게 된다. 일생을 통하여 일어나는 봄, 들음, 그리고 다른 오식뿐만 아니라 재생연결의식을 만드는 것도 업(깜마)이다.
감성을 통해서 대상을 경험하려면 감각기관이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업에서 만들어진 물질들이다. 감성물질(빠사다루빠)은 업의 육체적인 결과인 반면 봄, 들음 그리고 다른 오식은 마음(나마), 즉 업의 정신적인 결과인 과보 마음(위빠까찢따)이다.
봄이란 정신적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물질인 형상과 눈의 감성인 시각이라는 물질이 있어야 한다. 시각은 물질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시각은 보이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눈에 있는 하나의 물질(루빠)이므로 마음(찢따)이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 소리를 지각하는 들음이라는 정신적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각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귀에 있는 물질(루빠)이다. 냄새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후각이 필요하며 맛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미각이 필요하고 접촉대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촉각이 필요하다.
앗타살리니(2I, 2권, 3장, 306)에서는 눈을 ‘복합기관’과 눈에 있는 시각 물질(짝쿠빠사다 루 빠)인 ‘감성기관’으로 구분했다. ‘복합기관’으로서의 눈은 다음과 같다.

“…눈구멍에 살덩어리가 있어서 아래로 눈구멍의 뼈에 붙어있고 위로 이마의 뼈에 붙어있다. 양옆에는 눈꼬리에, 안으로는 뇌, 바깥쪽으로는 눈썹에 붙어 있다.….”

사람들은 눈을 희다든지 크기나 넓이 등으로 알지만 실재인 감성의 눈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다만 그것의 육체적인 기초만 알고 있다. 눈구멍에 있는 살덩이는 근섬유에 의해서 뇌에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는 희고 검고 붉은 것이 있고 땅의 물성, 물의 물성, 열의 물성, 바람 성품의 물성이 있다.

“눈은 많은 점액으로 인해 하얗고, 담이 많아 검으며, 혈액이 많은 곳은 붉고, 땅 요소에 의해 견고하며, 물 성품으로 인해 유동성이 있고, 열 성품으로 인해 열기가 있으며, 바람 성품으로 인해 진동이 있다. 이런 것이 복합기관으로서의 눈이다.….”

‘앗타살라리니’에 의하면 시각 즉, ‘감성의 눈’은 검은 동자 가운데 있고 흰 동자에 둘러싸여 있으며 ‘뿌려진 기름이 일곱 겹 무명 심지를 적시듯’ 눈의 박막에 골고루 퍼져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왕자가 네 명의 보모들이 안고, 목욕 시키고, 옷 입히고, 부채질하면서 보호받듯이 사대의 기능 즉, 지탱하고, 결속하며, 성숙시키고, 움직이는 기능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다. 온도, 마음, 영양분에 의해서 유지되고 생명기능에 의해서 보호되며 색깔, 맛, 냄새 등이 동반되는 이의 머리보다 작은 그 기관은 안식의 문과 토대의 본능을 아주 충실히 수행해 나간다.…”
청정도론 14권 37에서는 시각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눈의 특징은 모양, 색깔에 부딪혀 오는 것에 만반의 준비가 된 기본 물성(사대)으로 된 감수성이다. 대상을 보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기본 물성으로 된 감수성이 그 특징이다. 그 기능은 보이는 대상들 중에 한 대상을 안식이 선택하는 것이며, 안식에 잡힘으로써 표출된다. 그것의 가까운 원인은 보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기본 물성(사대)이다.”

우리는 볼 때 욕망이 일어나기에 모든 지각인상들에 집착한다. 자연히 재탄생을 만들고, 봄과 들음과 다른 지각인상들을 만든다. 또한 감각대상을 지각하고 조건이 되는 감각기관을 만드는 업의 조건들이 충족된다. 이것 역시 미래의 삶에서도 지각인상들에 구속되어 버린다.
시각이 지속되는 것처럼 여겨져 우리는 그것을 ‘자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봄’이라는 정신적 현상의 순간이 긴 순간일 것 같고, 동일한 시각이 그 기능을 계속 수행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시각은 일어나고 바로 사라져 버린다. 그 다음 이어지는 봄의 순간에는 또 다른 시각이 있다. 이 모든 시각은 일생을 통하여 업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내 시각’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이 오래 지속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시각은 ‘이의 머리보다 작은 크기’로 매우 작지만 눈을 통해 전 세계가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보이는 모든 것은 눈을 통해서 지각되지만, 우리가 세계를 본다고 믿는 것은 실재가 l개념인 생각하는 것이지 보이는 대상을 실재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은 ‘봄’과 다른 지각인상들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눈은 대양에 비유된다. 왜냐하면 바다는 채워질 수 없듯이, 눈 또한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각에 집착되어 계속 보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상윷다 니까야” (4권,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 네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3장, 187, 바다의 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했다.

“…비구들이여, 눈은 사람에게 형상의 흐름이 계속되는 대양이다. 이런 계속되는 형상의 흐름을 견딘 자는 파도와 소용돌이와 상어와 악마가 득실대는 눈의 바다를 건넜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자는 그것을 건너 위대한 피안의 대지에 우뚝 서다.”

다른 감각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언급되어 있다.
아나함 성인(아나가미)이 된 수바라는 비구니 테리에 관해서 ‘테리가타’(Psalms of the Sisters, Canto XIV, 71, Subha of Jivaka’s Mango-grove)를 인용하면, 수바 비구니는 감각대상에 대한 갈망을 뿌리째 뽑았다. 젊은 남자가 수바 비구니의 아름다운 눈에 반하여 유혹하려고 했다. 수바 비구니는 그 남자에게 사물의 외양에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실재계에서는 자아는 없고 단지 물성들만이 있을 뿐이다. 테리는 자기 눈에 관해서 말하기를(vs. 395)

“이 눈이라는 것은 속이 빈 나무의 가지에 박혀있는 작은 공 모양으로 생긴 것이고, 눈물이 담겨 점액이 스며 나오는 거품 막에 지나지 않으며, 다양한 기관의 양상들이 눈의 형태를 구성한 혼합물이기에…….”

수바 비구니는 한쪽 눈을 뽑아서 그 남자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설교는 그 남자의 욕망을 치유하지 못했다. 나중에 붓다의 앞에서 그녀의 눈은 다시 회복되었고, 수바 비구니는 계속 통찰지혜를 계발시켜 결국에 아라한이 되었다.
시각이란 자아가 없는 물성일 뿐이다. 봄이라는 정신적 현상의 조건들 중 하나일 뿐이다. ‘청정도론’(15장, 39)에서는 ‘봄’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안식은 눈의 감각기관과 보이는 대상과 빛과 주의 기울임으로 인하여 일어난다.’
청각은 또 다른 감성물질의 하나다. 그것은 황갈색의 부드러운 털로 귀의 내부 가락지 모양의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청각감성물질은 소리를 받아들이는 능력의 물성(루빠)다.
‘청정도론’(14장, 38)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귀의 특징은 소리가 부딪혀 오는 것에 만반의 준비가 된 기본 물성(사대)으로 된 감수성이다. 대상을 듣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기본 물성으로 된 감수성이 그 특징이다. 그 기능은 소리들 중에 한 대상을 듣는 마음(이식)이 선택하는 것이며, 듣는 마음에 잡힘으로써 표출된다. 그것의 가까운 원인은 듣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업에서 생겨난 기본 물성(사대)이다.”

듣는 마음인 이식이 없다면 들을 수 없다. ‘청정도론’(15장, 39)에서 말하기를, “귀와 소리와 공간과 주의기울임으로 인하여 이식이 일어난다.” 공간이란 귓구멍을 말한다. 이 조건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들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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