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를 명찬 승려처럼

눈 밝은 수행자로 인식

추사가 편안할 수 있었던 것은

초의가 읽어주는 〈무량수경〉 덕분

어느 때일까. 초의에게 이 편지를 보낸 것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 편지를 보낸 것이 어느 해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객지의 울적한 마음이 더욱 오래되어’라고 한 것이나 초의를 ‘일로암향사(一?香史)’라고 부른 것에서 그가 이 편지를 쓴 시점이 제주 유배시절임을 짐작케 한다. 제주 시절 어느 해 섣달 11일에 보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일로암향사(一?香史) 한 해는 저물어 가고 또 (날씨마저)추우니 화롯불에 토란을 굽는 풍미를 생각할 만합니다. 곧 (그대에)묻노니 이즈음에 계의 실행이 길하고 상서로운지요. (그대를 향한)그리움이 엷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요행히 그대가 날마다 〈무량수경〉을 읽으며, 빌어주는 성의에 힘입어 편안하게 살고 있으니 기쁘고 감사하며 기쁘고 감사합니다. 다만 객지의 울적한 마음이 더욱 오래되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일 년의 반은 (내)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거의 (그대가 있는)산중에 머물러 있는 듯하니 세월을 어찌하는가. 첩의 이 글씨를 올려 보내지만 형상이 거칠어 더욱 부끄럽습니다. 글씨엔 반야를 함께 드러냈습니다. 후배들로 하여금 익히게 하여 이보다 잘 쓰게 하는 것이 어떨지요.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납월 11일 륵구(具:형식만 갖추었습니다)(一?香史 歲暮且寒 ?芋風味可想 卽問此際戒履吉羊 溯念不淺 俗人幸賴 師日誦無量壽經祝釐之力 得以安存喜荷喜荷 但客懷大淹尤苦 一曆伴似 領情留作山中 日月如何 來帖玆書呈而形穢甚愧 所書含出般若 使後生輩試爲之用工於此 如何 都留不式 臘月十一日 具)

이 편지의 말미에 납월 11일이라 하였으니 이는 섣달, 곧 엄동설한에 보낸 편지이다. ‘한 해는 저물어 가고’ ‘ 또(날씨마저) 추운’ 이 때 초의가 못내 궁금했던 추사였기에 편지를 보낸 것이다. 외우(?芋)란 화롯불에 토란을 넣어 굽는다는 뜻이다. 실제 외우에 대한 옛 이야기는 당 나라 이필(李泌)과 관련이 깊다. 그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필이 형악(衡岳)에 있을 때, 명찬(明瓚)이란 승려가 있었다. 이필은 그 승려가 비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밤에 그를 찾아가자, 명찬 승려가 구운 토란을 꺼내어 씹으며 하는 말이 ‘여러 말 마시오. 그대는 장차 10년 동안 재상 노릇을 할 것이요’라고 했단다.

따라서 외우의 풍미는 초의가 명찬 승려처럼 사람의 미래를 잘 점칠 수 있는 눈 밝은 수행자로 인식한 것은 아닐까. 추운 겨울, 뜨겁게 구운 토란의 풍미도 향기롭고 맛이 좋겠지만 추운 겨울과 뜨거운 토란, 이는 대비의 극점을 잘 드러낸 말로, 추사의 언어 구사의 묘미를 잘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아울러 초의에게 향한 추사의 마음은 ‘(그대를 향한)그리움이 엷어지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더욱 또렷이 빛난다. 특히 자신이 편안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의가 ‘날마다 무량수경을 읽으며, 빌어주는 성의에 힘입어’ 그렇다는 것이다.

이들의 우정은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객지에 오랜 머물던 추사는 울적한 마음이 일어 더욱 ‘고통스럽다’ 하였다. 따라서 이 편지는 추사가 제주 유배지에 머문 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보낸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그를 위로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시를 짓고, 글씨를 탁마했던 그였기에 제주 유배시절, 추사체를 완성했던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그의 서체 예술의 지선(至善)은 제주 시절 완성된 셈이다. 한편 자신이 쓴 글씨에 ‘반야를 함께 드러냈다’고 하였으니 반야는 곧 지혜이다. 법의 실다운 이치에 딱 맞는 최상의 지혜가 글씨에 드러났으니 ‘후배들로 하여금 익히게 하여’ 나보다 더 지혜를 담은 글씨를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떨지’를 반문하였다. 대흥사 승려들 사이에 더러 추사체를 잘 쓰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의 교유가 남긴 여훈(餘薰)이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