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사찰 건축 4. 인제 만해마을

스님 직선의 삶, 직선의 길로 표현
허공에 쓴 ‘일획’ 만해사 서원보전
창살을 이용해 자연을 후불탱화로
숙박하는 기념관 ‘만해문학박물관’
2003년 8월 준공·설계 김개천 교수


만해마을의 절정 만해사 서원보전. 허공에 일획의 글씨를 쓴다는 생각으로 설계했다. 스님의 직선의 삶을 일획의 글씨로 표현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 때 우리 민족의 독백이었던 그 슬픈 곡조. 그 독백의 선창이었던 시인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갈망했던 만해 스님이다. 그토록 조국의 독립을 그리던 스님은 1944년 6월 29일,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그렇다. 한국불교를 걱정했고, 조국의 현실과 민족의 미래를 걱정했던 시대의 스승 만해 스님을 우리는 그의 곡조처럼 그렇게 쓸쓸히 보낼 수 없다. 조국의 독립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떠난 그 님을 그래서 우리는 보내지 아니하였다.

제 곡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랑의 노래가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돌듯이 님을 보내지 못하는 후손의 마음이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님의 침묵을 기리고 또 기리는 곳이 있다. 2003년 8월 9일 (재)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1136-5에 지은 ‘만해마을’이다.

숙박하는 기념관, 만해문학박물관
“만해 스님을 어떻게 기릴까, 그것이 문제였죠.” 만해마을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 김개천 교수(국민대 조형대학)는 ‘만해’라는 그 간단치 않은 이름 앞에서 건축가 이전에 후손으로서 고민했다. 만해마을의 설계는 ‘스님을 기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만해’라는 이름을 제대로 기리는 일은 스님의 생애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충분히 알리는 것이었다.

우선 스님을 기리는 기념관인 ‘만해문학박물관’은 흔치 않은 ‘숙박하는 기념관’이다. ‘숙박’에 포커스를 두었다. 별채의 숙박동(문인의 집)을 두었다. 지나가듯 보고 가는 기념관이 아니라 하루든 이틀이든 묵으면서 스님을 느끼라는 취지다. 위대한 한 인물의 지나간 삶을 쳐다보는 일은 단순히 진열된 자료를 들추는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진열된 자료도 보아야 한다. 자료를 통해 읽어낸 그의 삶을 오랫동안 생각하며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스님도 ‘인간’이었죠. 우리에게 그토록 거룩한 스님이지만 스님도 밤이면 번뇌하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자신과 수없이 많은 다짐을 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과정이 우리와 다른 것이죠. 위대한 것이죠.”

박물관 안쪽에서 유리벽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 스님의 동상이 보인다. 스님의 동상은 박물관 밖에 있다. 스님의 눈은 바라보는 이의 눈높이에 있다. 그리고 스님은 그저 어디론가 걷고 있다. 스님의 동상을 박물관 밖에 세우고 높고 크게 만들지 않은 이유는 스님을 살아있는 듯 다가오게 하고 싶어서다. 우러러 보아야 하는 존재이기보다는 우리 곁에 있었던 우리와 똑같은 가슴과 어려움을 가지고 살았던 한 인간의 모습이 먼저라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리고 스님의 동상은 박물관 입구에서도 볼 수 있는데, 스님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70평 규모의 만해문학박물관은 만해 스님의 저서와 유품 등 그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3층으로 된 전시공간이다. 콘크리트를 사용한 무채색의 외관은 전통의 건축 재료인 전벽돌을 연상케 한다. 내부의 나뭇살을 댄 창을 보는 듯한 콘크리트 벽과 기둥과 처마, 벽돌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프레임들로 ‘전통’을 재해석 하려했다.

빈 프레임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안팎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던 설계자의 의도다. 이렇게 빈 프레임에 자연을 담아내는 모습은 우리나라 전통의 기법 중 하나인 ‘차경(借景)’을 활용한 것이다. 내부 마감재는 주로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했는데 민족의 지조를 지키고 서릿발 같은 절개와 칼날 같은 의기를 보인 스님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직선의 삶을 표현한 직선의 길과 일주문 격인 경절문
직선의 삶, 직선의 길
“스님의 삶은 ‘직선의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타협하지 않고 변절하지 않았던 스님의 삶은 그 누구의 삶보다도 분명한 ‘직선의 삶’이다. 김개천 교수는 만해마을의 시작을 그 ‘직선의 삶’에서 시작했다. 만해마을의 입구인 경절문(經截門) 앞에 서면 건물들 사이로 너무도 분명한 직선의 길이 나 있다. 스님이 걸어간 그 분명한 직선의 ‘삶’을 직선의 ‘길’로 표현했다. ‘삶’이 ‘길’로 표현되는 것은 언어의 영역만이 아니었다. 건축에서도 ‘삶’이란 글자는 ‘길’이란 글자로 대신할 수 있었다.

만해마을은 이 길이 중심이다. 만해마을에 들어오면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모든 건물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알고 걷든 모르고 걷든 만해마을을 찾은 사람은 스님이 걸어간 길을 걷게 되어있는 것이다. 만해마을의 존재 이유를 실천적으로 옮긴 드라마틱한 도입이다. ‘만해마을’이란 건축에는 ‘길’이 포함되어 있다.
그 길의 시작에 서있는 경절문은 선종의 대표적인 수행을 상징하는 문이다.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교외별전, 참선을 통한 수행 방법을 말한다.

불교에서 수선(修禪)할 때 단계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진제(眞諦)를 터득하여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수행의 지름을 뜻하는 수행문이다. 경절문은 두 장의 큰 돌판을 ‘ㄱ’자로 이어붙인 듯한, 단순하면서도 현대적 공간감각을 살린 문이다. 만해마을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문을 넘어서면 마음의 번뇌를 씻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해마을의 절정 만해사 서원보전
만해마을의 ‘절정’은 만해사 서원보전(誓願寶殿)이다.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한 현대적 감각의 법당은 스님의 ‘조선불교유신론’을 계승하고 반야경의 무소유 정신을 기리기 위한 취지의 건물이다.

만해사 서원보전은 땅위에 지은 건물이 아니다. 허공에 세운 건물이다. 의도가 그랬다. 건물을 허공에 지을 순 없지만 허공에 지었다. 말이 안 되지만 말이 된다. 선사의 선문답처럼 서원보전은 그렇게 지어졌다. 기둥을 이용해 멀리서 바라보면 허공에 떠 있는 ‘일획’처럼 보인다. 허공에 세웠다기 보다는 허공에 쓴 글씨다. 역시 건축가의 의도다. 일획의 글씨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스님의 분명했던 ‘직선’의 삶을 이번엔 ‘일획’의 삶으로 표현했다.

스님은 시인이고 독립운동가 이기 이전에 부처님께 귀의한 부처님의 제자다. 연곡선사의 법을 받은 선사다. 만해사 서원보전은 다른 건물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오롯이 ‘불제자 만해’의 투영이다. 외관의 모습 ‘일획’의 의미는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문자 밖의, 생각 밖의 이미지다. 선사의 마음과 일언이 일상의 문자와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서원보전은 그런 건물이다.

서원보전은 전통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인 누마루 진입의 형태를 하고 있다. 누마루를 지나 건물 내부로 들어오면 건물이 사라진다. 분명히 내부로 들어왔지만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엔 산이 보일 뿐이다. 건물(법당)은 뒤에 놓이게 되므로 한 번에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건축가의 의도다. 건축가는 입정의 과정 같은 것이라 설명했다.

법당에 들어서면 불상 뒤로 탱화가 없고 창살만으로 만들어진 창문이 후불을 대신한다. 한지를 바르지 않은 촘촘한 창살 사이로 초록의 소나무 그림자가 들어온다. 밤엔 달빛이 창살을 메운다. 건축가는 우주의 한 부분인 자연을 후불탱화로 쓰고 싶었다. 그림자로 지어진 건축, 서원보전의 클라이맥스다.

법당의 사방은 모두 한지 없는 유리(창)문이다. 법당 한 가운데 앉아 있으면 건물의 내부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보인다. 투명한 창살이 자연스러운 띠를 형성하고 산의 전경이 건물의 진짜 벽이 되는 것이다. 건축가는 자연의 중심, 우주의 중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건축을 하고 싶었다.

‘만해마을’은 특별한 불사다. 안타깝게 떠나간 님을 보내지 아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해 스님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만해마을은 고단한 민족의 위로가 되어준 ‘님의 침묵’처럼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해 말없이 서 있는, 또 다른 ‘님의 침묵’이다.

70평 규모의 만해문학박물관은 만해 스님의 저서와 유품 등 그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3층으로 된 전시공간이다.
2004년 ‘올해의 건축상’ 만해마을

만해마을은 대지면적 17,450㎡, 건축면적 9,000㎡으로 만해 스님의 자유사상, 진보사상, 민족사상을 기리고 실천하기 위해 지어졌다. 만해문학박물관, 만해사 서원보전, 만해평화지종 등 10개 시설로 이루어진 문화, 교육, 휴식의 복합문화공간이다.
건축가 김개천 교수는 ‘만해마을’로 2004년 한국건축상 중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올해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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