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 추사의 건강 기원하며 차 보내

추사, 노쇠해 지지 않기를 소망

 

▲ 혜봉 스님 편으로 초의 스님이 보낸 편지에 화답하는 추사의 편지

 초의와 추사와 관련이 있었던 승려들은 상경하는 길에 초의의 편지와 차 꾸러미를 추사에게 전해 주었다.특히 운구는 추사의 과천시절, 일 년을 함께 지냈던 승려인데, 이러한 사실은 1853년 12월 16일에 쓴 추사의 편지에 ‘근일에 운구와 함께 지냈던 일 년은 흡족했습니다’라고 한 것에서 확인된다.

그는 아마 초의와 추사와 가까웠던 대흥사 승려일 것이다. 그의 이름은 한민(漢旻)이고, 금강경과 능엄경에 밝았다. 그를 추사에게 소개한 것은 권돈인이었다.

따라서 그는 추사와 학문적 담론이 통했던 학승으로, 추사의 불경 연구에 도움을 준 인물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추사는 그가 떠난 뒤, 몹시 쓸쓸해하던 중, 반가운 인편이 도착했으니 그가 바로 혜봉이었다. 이미 추사와 혜봉은 면식이 있었던 처지인데 고대하던 초의의 편지와 차를 가져왔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추사가 ‘위안이 됩니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략 1853년 12월 말이나 1854년경에 보낸 편지로 여겨지는 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둔사 초의스님 받으시오. 과노가 법식을 갖추어 씁니다.

병으로 먼 길 행차를 나서지 못했습니다. 운구 스님은 떠났으니 내 상황의 쇠락과 성함은 짐작이 될 겁니다. 혜봉 스님 편에 차를 부쳐주셔서 위안이 됩니다. 이번에 도모하시는 뜻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화엄의 신통력으로 멀리 볼 수 있고 탈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일을)시작하는 것을 의심하지 마세요. 간단히 씁니다(大芚艸衣尊者收 果老書式 病未拖長行 雲句去 可想此狀之委篤也 慧峰便 承?茗貼 可慰 聞有此圖之意 以華嚴神力 可以遠鑒無 卽起勿疑也 艱艸)

 

당시 추사의 건강 상태는 원만하지 않았던 듯하다. 먼 길을 떠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이런 정황을 짐작케 한다. 더구나 초의는 이미 운구를 통해 추사의 근황을 들었을 터이다. 그가 ‘내 상황의 쇠락과 성함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리라.

늘 서로를 잊지 않았던 벗, 초의가 보낸 차와 편지는 추사에게 가장 큰 위안꺼리였다. 아마도 초의는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지 추사는 ‘화엄의 신통력으로 멀리 볼 수 있고 탈이 없을 것’이라는 기원과 함께 ‘이제 (일을)시작하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는 격려를 보낸다. 운구와 함께 했던 추사는 ‘근일에 운구와 함께 지냈던 일 년은 흡족했습니다. 운구와 함께 노쇠해지지 않기를 밤낮으로 소망하는 것입니다’라는 대목에서 그의 흡족한 일상이 전달된다. 당시 운구와의 이별이 못내 아쉬웠던 추사는 <증운구상인(贈雲句上人)>을 지어 전별의 뜻을 이렇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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