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 살면서 값진 내 보배를 활용하면서 살아가세요

여러분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믿지 못하니까
모든 것을 거기다가 맡길 수도 없고
맡기지 못하니까 방황하게 되고
방황하니까 일이 잘 안되고 이런 거뿐입니다.
그러니까 알아서들 하십시오.

(지난 호에 이어서)
한마디로 말해서, 요새 그 어디 화엄경에 보니까 뭐가 써있느냐 하면요, ‘이외에 공심(共心)인 부처님 세계에 작은 티끌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서 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광대무변이라. 광대무변하니라.’ 그게 이름이라는 거예요. 또 ‘보배장엄이라.’ 이 이름을 똑같이 써놓고 똑같이 그렇게 해나가는 거예요. 그러니 그 이름이 전체 부처님 이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얼마나 광대합니까, 이게. 그러나 따지고 보면 형체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그러한 그 보이지 않는 속에, 마음속에 그게 다 들어있다는 얘깁니다. 다 들어있고, 다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고 꺼내도 줄지 않는 그런 마음입니다. 마음이라는 건 누가 어떻게 들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아, 종소리를 들었으면 귀에다 넣고 다닐 수가 있습니까? 들고 다닐 수가 있습니까? 잡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그 순간에 듣기는 했거든. 그러니까 듣는 사이 없이 들었다, 이게 묘한 묘법이에요. 듣는 사이 없이 들었기 때문에 광대한 거지, 듣는 사이가 있고 들은 거를 가지고 아주 잡아가지고 갈 수 있다면 그게 무슨 광대한 법입니까? 그러고 이렇게 발전도 될 수가 없고요.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주적으로도 그렇고 대천세계적으로도 그렇고 말입니다, 끊임없이.

하여튼 내가 오늘 얘기해드린 건요, 어떤 회사를 하더라도 사무실에서 화목재를 한 달에 두 번을 지내든지 한 번을 지내든지 지내라. 그건 왜냐하면 예전에 고사라고 하고 모두 지냈는데 그게 고사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 화목재라는 건 보이지 않는 ‘자’와 ‘신’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나 기계의 마음들이나 보이지 않은 마음들이나 보이는 마음들이나 둘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 모여서 떡이라도 썰어놓고 음료수라도 사다놓고 먹을 과일이라도 더 사다놓고 그렇게 해서 같이 화목하게 얘기를 주고 받는 겁니다. 또 일하는 데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면 아주 꺼끌꺼끌했던 것도 다 녹아지고 모두 일을 내 일처럼 하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 이게 산 사람의 화목재지 뭐냐 이런 소립니다. 이게 하나의 마음이 튕글어지면 얼마나 손해가 되는지 아시죠. 그리고 우리가 재(齋) 지낸다 하는 것도 그것이 결국은 화목재입니다. 그러고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도 그렇고….

부모의 생일이든가 자식의 생일이든가, 생일날도 구태여 요새는 케익을 사다가 놓고 모두 초를 꽂아놓고 하는데 난 그거 반대예요. 요새 기주떡 참 맛 좋습디다. 기주떡 아, 세 켜만 해다가 탁 똥그랗게 해놓고 거기다 초 꽂아놓고 불을 밝힐 때 자기 생일이라고 뭐, 뭐 생일 축하합니다, 그러던가? 그게 생일 축하가 아니에요. 불을 켜놓고 ‘나를 일년 내내 배고 또 낳아서 이렇게 길러주신 어머니 아버지의 그 은혜를 백분지 일이라도 갚을 수 있도록 밝게 되소서.’ 하고 그냥 간절하게 그 태어난 놈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위해서 축하합니다지 어째서 자기가 축하를 받습니까? 세상에 생각해보면 변소에 가나 나오나 들어가나 걱정하던 부모의 그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더불어 그렇게 지내시던 생각을 하면 속을 안 썩여도 기가 막힌데 말입니다. 저는요, 나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굶어죽었는지 얼어죽었는지 모르게 이렇게 했으니 그 속을 얼마나 썩였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열 달 내 배고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낳으면서도 고생하고, 기르면서도 고생하고 또 길러놓으니까 또 고생을 해, 마음 고생을. 그러니 얼마나 불효입니까, 응? 그런데도 생일날 닥쳐왔다고 자기가 좋다고 술을 먹고 그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좋다고 자기 생일날 뭐 안 해준다고 야단. 이거 있을 수가 없어요. 이건 있을 수가 없어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그 삶의 진리가 있는 것인데 인간이 뭐 때문에 인간이 되겠습니까? 인간이라면 이 모두가 99%가 다 부처입니다. 다, 생물들도 다 불성이 있고요. 불성은 그대로 태어나면서 불성이 주어지는 거고요, 생명의 근본이니까. 우리가 차원이 낮아서 짐승으로 된다, 벌레로 된다 이러더라도 살아가면서 터득이 되는 거거든. 터득이 되면은 다리가 짧다 하면 조금 길게 요다음에 탄생을 하고 또 요게 내가 살기가 참 거북하다 그러면 다른 걸로 화(化)해서 또 태어나고….
아, 저 광명사 앞 밭에 모두 깨를 심어놨더랍니다. 그랬는데 깨를 그냥 진딧물이 모조리 앉아서 그냥 다 먹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거 심어놓은 분이 마음공부를 하는데 ‘아이고, 이 진딧물을 어떡하면 없앨 수 있을까 하면서 없는 사람이, 이 깨를 어떻게 추릴까 하고 걱정을 했는데 아, 사흘 되던 날 가보니깐요 고 빨간 풍뎅이 같은 그 무당벌레 있잖습니까? 날아다니는 그것이 그냥 아주 빈틈없이 들어와서 앉더니만 그냥 그 진딧물을 다 먹더랍니다.

그런 거와 같이 이 마음과 마음은 다 통해 있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되면 이 해신(海神)이나 주림신(主林神)이나 또는 산신(山神)이나, 그 ‘주(主)’ 자가 꼭 들어가야 되겠죠, 중심이 있으니까. 소임을 맡은 그 소임자니까. 그래서 모두가 같이 통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 어떠한 일이 있으면, 가령 주산신에 관한 건이면 주산신에다가 한 찰나에 마음이 들어가면은 벌써 생각이 나면 마음이 벌써 통하니까 그래서 건지게 되기 때문에 그저 주산신(主山神)도 자기 주인공입니다. 해신도 자기 주인공이요, 그 해신은 용신(龍神)이라고들 모두 그러죠? 주해신(主海神)도 바로 자기의 주인공이요, 모두가 한마음 속에서 천차만별로 벌어지는 거니깐요. 그리고 가다듬으면 또 두드러지지도 않고 펼쳐도 줄지도 않아요, 여기는. (가슴을 짚어 보이시고) 영원히 그대로 줄고 느는 법도 없고 움죽거리는 법도 없고 아주 광대하고 무변한 거죠. 즉 도리천에 자활할 수 있는, 그 경지에 이름해서 그것도 평등공법(平等空法)이다 이런 소리죠.

하여튼, 그래서 촛불재 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여기서 반야심경을 하죠? 우리가 반야심경을 외울 때 여기 (가슴을 짚어 보이시며) 감지되는 분이 있습니까? 또 천수경을 읽는데도요, 경(經)을 읽는데도 내가 모르면서, 읽으면 좋다고 하니까 그냥 읽는 사람들은 그냥 말로 떨어지는 거예요. 입으로 떨어진다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책이 자기를 보고 자기가 책을 보게 되죠. 남는 거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이 마음공부를 하면서 거기에다가 모두, 보게 하는 놈도 그놈이요, 응? 내가 책을 보는 게 아니라 그놈이 책을 보게 나를 형성시켰으니까 보는 거 아닙니까? ‘모두가, 보는 것도 자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앉는 것도 전부가 그놈이 하는 거니까.’ 그러고선 거기에서 보게 해서 보는 거다 하고서 보면은 그것이 납득이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해가 간다면, 이 가슴에 와서 닿을 때 비로소 그 말은 그대로 못해도 그 뜻은 다 같이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이 없이 했고 책을 보는 사이 없이 봤다 이런 결론이 나오죠. 또 보는 사이가 없이 봤으니 바로 실천을 하는데 함이 없이 했다. 이 뜻을 감지했으니까 말을 해도 뜻과 말이 첨보돼서 돌아가면서 이게 나가니까 에너지가, 즉 말하자면 그 원력이, 그냥 빛이, 거기도 광명이 가지만, 말로 알지도 못하고 경을 읽어서 얘기하는 거는 뭐가 갈 게 있어야지. 자기도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남한테 가느냐고. 내 집이 전깃불을 못 켰는데 남의 집의 전기 가설이나 또는 불을 켜줄 수가 없는 거 아닙니까.
모두 여러분이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걸망 짊어지고 한 철 나와서 모두 모여서 놀다가 해가 지면 제가끔들 헤어지게 돼 있어요. 그러니깐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놀고 어떻게 말을 하고 그러한 데에 따라서 금방 찰나에 벌써 한 생을 지나고 무대가 내리면은 벌써 요다음의 모습은 자기가 사는 데에 따라서 차원에 따라서 정해지죠. 그러니까 요 한동안 우리가 혼자 와서 모두 같이 놀다가 가는 거와 같은 거예요, 우리 인생이.

그리고 꿈도 생시도 둘이 아니란 얘기죠. 둘이 아닌 까닭에 여러분이 꿈을 잘못 꿨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도 ‘어허! 이거는 주인공의 뜻이니까 그것도 잘되게 하는 것도 너뿐이야.’ 하고 이렇게 바꾸어 놓으면은 구정물을 그냥 삽시간에 맑은 물로 바꾸어놓는 거죠. 체는 바꾸어놓을 수 없어도 바로 그 뜻은 바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체로 나오는 게 말갛게 나온단 얘기죠. 그러니 여러분이 잘 생각하셔서 아, 한 생을 살아나가는 데에 아주 값진 내 보배를 내 보배로 활용해서 살아가시면서 발전하고 또는 체험하시고, 장래의 이세들한테도 그 모든 묘법이 미치게끔 하고 부모에게도 손색이 없이 밝아지게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그렇게 그것이 귀중하다는 거를 얘기해드리는 겁니다.

내가 지금 뭔 얘기들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내가 지금 뭔 말을 어떻게 했는지 그거 지금 생각지도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그저 거기서 조금 조금 챙겨서 자기가 잘 생각해보면 알 바가 있습니다. 대충 그냥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질문 있으면 몇 분….

질문자1(남): 큰스님의 법문을 아주 잘 들었습니다. 마음으로 관(觀)하고 그리고 삼라만상이 무량무변이요, 뜻하는 바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음이라고 하신 말씀을 아주 깊이 새기겠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 자형께서 지금 육신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간암 3기인데요, 말기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현대 불치병이라고 하는 암도 마음에 관하고 신심을 돈독히 하고 그리고 그와 같은 믿음이 공덕이 되어서 쾌유가 될 수가 있는지 큰스님께 여쭙겠습니다.

큰스님: 우리가 한마디로 말해서 대신해 줄 수 없는 게 다섯 가지가 있죠. 밥 먹어줄 수 없고, 자줄 수 없고, 죽어줄 수 없고 또는 아파줄 수 없고, 똥눠줄 수 없고 이 다섯 가지요. 그 반면에 말입니다, 자기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설이 돼야 받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관법(觀法)을 꼭 하시라고 그러는 겁니다. 물론 부처님께서는 원하는 바대로 다 응신이 돼서 해주셨지만 그렇게 해주신다고 해서 내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면 부처님한테 한 됫박 한 됫박 얻어먹는 거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없으면,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행동하고 싶으면 행동하고, 뭐든지 할 수 있게끔 체험하면서 그 도리를 자기 스스로서 깨달아야 하니깐요.

그러니까 아픈 것도 그것도 공부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나가는 것도 전부 공부할 수 있는 재료니깐요. 나로 인해서 상대가 생겼고 상대가 생겼음으로써 아픔도 오고 부닥침도 오고 모두가 생기는 거죠, 죽음도 오고. 그러니까 그렇게 된 분들에게 광주에서 나온 책자 조그만 거 그런 거라도 갖다가 드리면서 그거를 보고 체득하라고 하고 관법을 가르쳐드리세요. 그러면 이 불과 (천정의 전등을 가리키시며) 같이 가설이 돼 있으면은 그저 이게 올리기만 하면, 마음만 내면 불이 들어오게끔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알아서 그렇게 하시도록 하세요. 이 관법이라는 것이 누가 만들어놓은 것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서 주어진 거고, 갖고 있는 거고 또 스스로서 해야 하는 거고….

질문자1(남): 그런데 지금 의식이 불명입니다. 그러고 깨어있는 시간이 하루 중에 몇 분이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큰스님: 그럼 제삼자가 해주세요.
질문자1(남): 예.
큰스님: 우리가 옷을 입는 것도, 탄생하는 것도 어렵지만 죽는 것도 어렵습니다. 아프지 않고 가는 사이 없이 가는 것도 큰 홍복입니다. 그것도 얼마만큼 공부를 해야 하고, 착하게 살고 그래야 되는지, 그것도 어렵습니다.

질문자2(남): 오늘 이렇게 또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선원에 나와서 마음공부한 지 한 2년이 이제 막 넘어서는데요, 오늘은 질문에 앞서서 제 공부한 얘기를 잠깐 하고서 질문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마음공부를 하면서 마음을 매일 이렇게 살피다보면 큰스님 말씀마따나 팥죽 솥에 팥죽 방울이 일듯이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가라앉고 합니다. 물론 큰스님이 가르쳐주신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것은 되돌려놔야 그게 녹는다고 말씀하신 거를 하나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떠오르는 생각 중에서 첫째, 애욕에 대해서 하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중에서도 애욕이라는 거는 가장 질기고 또 자주 때때로 떠올라가지고 이 마음공부를 하는 데 상당히 지장을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아니면 그림, 영화, 어떤 거는 생각에서부터 또는 바깥으로 보이는 것에서부터 일어나서, 예를 들기는 좀 송구스런 말씀입니다마는 전에 절에 와서 비구니 스님을 뵐 때는 ‘아, 이렇게 청정하신 스님들도 계시구나.’라고 생각을 했다가 어떤 때는 ‘아, 이렇게 청순한 여자도 있구나. 이런 사람과 살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아, 이거 주인공! 이거 이거 배가 넘어지려고 그러는 것 같다.’는 관도 하고 또 이거 내가 너무 공부가 짧아서 그런 것도 아닌가 이런 것도 느껴집니다.

제가 오늘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그 애욕이 왜 나오고 어떻게 녹여야 되느냐는 질문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요, 그 내면에는 반드시 숨은 도리가 있을 것 같아요. 누가 저한테 일러주기를 마음공부할 적에 자칫 잘못하면 공든 탑이 찰나에 무너질 수도 있어 다시 쌓아야 되는 일도 있는 거니까 그걸 항상 경계하라고 일러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경계가 두렵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애욕이 들끓는다면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이것을 좋은 쪽으로다가 인도할 수도 있는 무슨 숨은 도리가 있을 것 같아서, 혹시 있다면 큰스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석가세존(釋迦世尊)께서도 이르시기를 애욕보다 더 광대한 건 없다고 이르셨고요, 다시 이르시기를 애욕이 이 세상에 하나만 더 있어도 성불할 자는 아무도 없다고 그러셨거든요. 그러니까 그 애욕의 숨은 도리를 말씀해주실 수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큰스님: 그래요. 만약에 애욕이 있는 당신이 없는데 어떻게 애욕이 있겠소? 당신 자체가 없는데, 응? 당신이 지금 앉았는 게 당신이 앉아 있는 거야? 더불어 같이 앉아 있는 거지. 그런데 어떻게 상대가 있어? 자기가 없잖아. 자기가 내세울 게 없는데 어떻게 애욕이 있을 수가 있어? 그런 생각이 난다 하더라도 그거는 피어난 꽃들의 움죽거림에 연관을 시키면 그거와 똑같은 거야. 그러니까 항상 함이 없이 했고 가고 옴이 없고.

그래서 가고 옴이 없이 여기도 올라오는데, 누가 올라왔어요? 발자취도 짊어진 게 없고 또 몸속에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같이 했기 때문에 올라온 거지, 댁이 껍데기가 어디서 생겨서 올라왔어요? 알고 본다면 더불어 같이 돌아가는 거지 자기 혼자 한 게 하나도 없어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듣는 것도 보는 것도 다 자기 혼자만이 보는 게 없고. 그래서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더불어 같이 자기가 심부름을 해서 더불어 같이 돈을 번 거지 내거라고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것은 모두가 같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 그게 더불어 한 거지, 왜 자기 혼자만 한 겁니까? 그러니까 돈 나갈 때 안 나갈 때 다 나가버리고 말지.

하여튼요, 천주교 자리든 만주교 자리든, 하하하, 불교 도량 자리든 한 도량이고, 한 지구의 생물들이에요. 그러니까 원천적인 근본을 우리가 보고 마음을, 지혜를 내야지 소소한 거, 이 다섯 손가락이 있으면 이 손가락 하나를 보고 손가락이라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죠. 그런데 지금 얘기한 것대로 여러분이 그게 무슨 희한한 기적이다 이런 게 아니라 인간이란 다 자동 컴퓨터와 자동적인 능력이 주어져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다 주어져 있는데 자기가 쓸 줄을 몰라서 못 쓰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바람도 그렇게 비도 그렇게 모두 마음으로 쓰는 건 그렇게 쉬운데, 그러게, 내 아까 얘기하지 않았어? 모두 직결이 돼 있고 우주하고도 직결이 돼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이 수레바퀴하고도 더불어 같이 가설이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만 내면은 즉시 빛보다 더 빨리 전달이 된다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그냥 모든 걸 묘법이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이 그대로 정상이에요, 그게. 우리가 마음으로는 이 구정물을 깨끗한 물로 바꿀 수가 있지만 이 물체로는 (법상 위의 물컵을 가리키시며) 그렇게 우리가 그냥 바꾸어놓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물이라 하면은 물하고도 통하니까 마음으로는 얼른 그게 바꿔지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마음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깐 제대로 모든 거를 거기다가 맡길 수도 없고, 맡기지 못하니깐 방황하게 되고 방황하니깐 일이 잘 안되고 이런 거뿐이죠. 그러니까 알아서들 하세요. 하하하.

야, 그래도 잘하고 나가는데요? 하하하. 그래서 그 마음낸 게 함이 없이 했기 때문에 자기가 한 것도 아니고 남이 해준 것도 아니고 그대로 그냥 부처님이 하신 거예요. 자부처, 자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체가 다 한 부처니깐요. 멋지죠? 아주 멋져요! 멋있어요, 정말! 이 정말 멋있는 이 도리를 정말 진짜로 여러분이 아신다면 진짜 하늘을 보고 한탄을 하고 땅을 치고 울어도 시원치 않을 정도죠. 정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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