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과천에서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2통의 편지.
추사가 섣달이 가까워지는 어느 날인가 초의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 편지의 말미에 과도인(果道人)이란 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과천 시절에 보낸 편지임이 분명하다. 섣달이 되면 늘 새로 나온 책력을 챙겨 초의에게 보냈던 추사였다. 한동안 이들의 편지를 내왕해 주는 인편이 없었던 지, 추사는 ‘아직 섣달이 된 것도 아닌데 일체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식을 전하지 않는 초의의 변화된 마음은 ‘산으로 들어가 더욱 깊어져서 인간세상과는 함께하지 않고 자연과만 소통하려는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이는 추사의 심사를 반영한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대흥사의 깊숙한 암자에서 선삼매에 몰두하고 있는 벗, 초의를 이리 표현한 것이리라. 이 무렵 과천초당에서 어렵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그는 실로 불경과 차를 통해 정토의 세계를 구현하려했던 것은 아닐까. 과천초당에서 초의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보낸 그의 편지는 다음과 같다.

아직 섣달이 된 것도 아닌데 일체 소식이 없으니 산사람은 산으로 들어가 더욱 깊어져서 인간세상과는 함께하지 않고 자연과만 소통하려는 것인가요. 인간 세상이 곧 별세계는 아니다. 정토세계가 바로 이(인간) 세계이고, 연화장 세계의 바다가 또한 곧 이 (인간)세계입니다. 매번 그대들은 보면 정토에 살기를 원하고, 연화장세계의 바다에 살기를 원하여 다만 이 세계로 향하지 않으니 이는 십만 알고 (십이)다섯의 쌍이 된다는 것은 모르는 것인가요. 요즘 추워지는데 수행은 편안하고 편리한지요. 늙어지면 더욱 건강해야합니다. 마치 수컷 소와 같은 성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요즘 날로 괴로움이 닥치니 이에 껄껄 웃지요. 벼루가 얼어서 대략 알립니다. 섣달 6일 과도인. 책력 2개를 부칩니다. 또 책력 하나는 견향(見香)에게 전해주세요(非將臘而一切無聞 山人入山更深 不與人世通人烟耶 人世卽非別世界 淨土卽此界 華藏海亦卽此界 每見師輩 願生淨土 願生華藏海 而獨不向此界來 是知十而不知雙五者耶 邇寒禪安方便 老而益健如牛王否 俗狀日以及艱 此呵 凍硯略申 臘六 果道人 二曆付從 又一曆轉付見香)

‘벼루물이 얼어 대략 알린다’고 하였으니 분명 한 겨울에 보낸 편지일 것이다. 어지간한 추위에는 벼루의 먹물이 얼지 않는다. 먹물이 얼어 버릴 정도로 추운 겨울, 초의의 소식이 못내 그리웠다. 특히 그의 불교적 담론은 ‘인간 세상이 곧 다른 세계는 아니다’ 바로 ‘정토 세계가 이 세계이고, 연화장 세계의 바다가 또한 곧 이 (인간)세계, 라고 한 점이 주목된다. 이는 분명 인간 세상이야 말로 가장 소중하며, 정토나 연화장의 세계로 구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바로 추사의 현세관(現世觀)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초의를 향한 추사의 질타는 이어진다. 초의가 속한 불교계에서는 정토나 연화장 세계만을 동경할 뿐 인간 세상이 정토이며, 연화장 세상인 것을 모른다. 바로 십이란 십(十)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섯이 둘이면 열이 된다는 이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 불교계가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편협성과 획일성을 지적한 듯하다. 바로 표면에 드러난 것만 알뿐 속내의 깊은 이치를 모르는 현실을 점잖게 힐난하였다. 한편 늙어가는 이들의 현실은 피할 수 없었던가 보다. 자신과 동년배인 초의의 늙어짐을 못내 걱정하여 ’늙어지면 더욱 건강해야합니다. 마치 수컷 소와 같은 성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우왕(牛王)은 수컷 소처럼 튼튼하고 기세 좋은 성인, 혹은 신선을 의미한다. 혹 부처님을 인중우왕(人中牛王)이라 하니 우왕은 부처님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도 초의도 이미 늙어가지만 모두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추사의 마음은 이처럼 간절하고도 애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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